내 고향 수은주가 37도를 넘어갔단다.
전국에서 가장 더운 내 고향 경주.
어쩌다가 경주가 가장 더운 도시가 되었을까?
전에는 대구가 그 오명을 안고 살더니 이젠 경주라니...
도시도 작고 중간중간에 공원도 많고 잔디나 나무도 많은데~~
빌딩보다는 키 낮은 기와집이 더 많고 공장도 별로없는데 이상하다.
지구촌에 온통 이상기온이라더니 경주도 그런가 보다.
경주만 가면 늘 노후는 경주에서 보내야겠다고 다짐하는 우리 부부다.
집만 나서면 공원이고 자전거도로며 인도가 잘 다듬어 진 도시 경주.
무슨무슨 공연도 자주 있고 도로변에는 야생화며 연꽃 밭이 환상적이게 아름다운 내고향 경주.
시끄럽지 않고 복잡하지 않고 30~40분이면 경주 끝에서 끝까지 관통할 거리.
객지 생활을 오래하다보니 늘 경주가 그립다.
낮고 안온한 도시.
구경할 거리도 많지만 운동하거나 산책하기에 너무 좋은 도시다.
상업적이거나말거나 잘 다듬어진 공원이 많아서 .....
갑자기 경주 엄마집에 전화를 넣고 다 평안하시냐고~`
안 그래도 너무 더운날씨에 이 여동생이 고생하겠다 싶어
전화를 넣으려던 참이라며 반갑게 전화를 받아주시던 막내오빠.
엄마의 안부를 여쭙고 이런저런 집안 사정을 다 듣고는
엄마가 해 주셨던 하나 뿐인 창녕 사위 모시 옷이 생각났다.
수고스럽더라도 여름에 풀 빳빳하게 먹여서 시원하게 입히라시던 모시옷 한벌.
새하얀 모시바지저고리를 해 주시면서 나 본 듯이 입혀라~
엄마는 그렇게 일러 주셨건만 난 내가 바쁘다는 핑계로 장롱 깊숙히 감춰두고 말았다.
모시옷 만지기가 어디 그리 쉬운가?
세탁기 빨래 안되지요....손빨래 해야하고
한번 씻어서 폭폭 삶아야지요...대충 하면 안한만 못하지
세탁해서 말려 풀 해야지요~흰밥을 팔팔 끓이다가 주물러서 곱게 내려야지
시중에 파는 스프레이 풀은 쉽고 금방은 빳빳한데 풀기가 너무 빨리 없어진다.
전분으로도 풀을 먹인다고들 하던데 너무 빠닥빠닥해서 부러지려고 해서 덜 좋다.
두번째는 풀 해서 말리다가 중간에 걷어서 밟아야지요...다 말리면 다림질 하기 엄청 힘들다.
히유~~
수련회도 바빠 동동거리는데 모시옷이 뭐 대수냐~
아예 남편 눈에 안 띄는 장롱 깊숙한데 숨겨 두고 없다고..
못 찾아서 못해 준다고 시침 뚝~~떼고 있다가
엄마한테 전화를 넣고는 아차차...싶어서 장롱을 발칵 뒤집어서 찾아 내고야 말았다.
땀 삐질삐질 흘리면서 손세탁하고 삶아서 말리다가 풀해서 널고
중간에 걷어 세번 뒤적이며 밟다가 말려 놓으니 아~~참~곱다~~ㅎㅎㅎ
까실까실하고 새하연 모시 옷 한벌과 덤으로 새하얀 마 소재 한벌까지.
햇살 고운 하늘 아래 새하얀 모시 옷 한벌과 마 한벌이 곱게도 말랐다.
잠자리는 낮게 날고 매미는 목청껏 울어대는데
풀 먹인 옷들을 손질하는 뒷목덜미가 뜨끈뜨근하다.
풀하고 밟아서 말리는 일까지는 어찌어찌 했는데 다림질은 너무 더워서
차일피일 미루어 뒀더니 드디어~남편이 에어컨을 틀어 놓고 다리기 시작했다.
모시옷이나 마 옷은 다림질도 일반 다른 옷들에 비해 까다롭고 힘도 줘야 하는 일이라
어지간하면 여름에도 안꺼냈는데 엄마가 정성껏 맞춰 주신 사위 옷인데 싶어
땀바가지를 흘리며 남편한테 여름을 이기는 선물인양 그런 기분으로 꺼냈다.
다 다려 놓고 걸어두니 꼭 바람둥이 옷 같다.ㅋㅋㅋ
하루에도 서너벌씩은 벗어내는 옷들인데 까다로운 그 옷을 내 어찌 감당할꺼나~
모시옷을 내 주면서 단단히 일러주는 걸 잊지 않았다.
\"이 옷은 일할 때는 절대로 입지 말고 어디 외출 할 때 땀 덜 나는 날 입어~
옷에 뭐 묻히지도 말고 앉을 때 주름 덜 가게 너무 쪼그리고 앉지 말 것~!
목을 꼭 깨끗하게 비누로 씻고 입을 것~!!\"
내 주문이 주절주절 많자 남편이 그런다.
\"그럼 도대체 입으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그냥 전시용으로 에어컨 앞에 걸어두고 여름 다 날까?ㅎㅎ\"
옷을 하도 험하게 입으니까 그렇지 이 양반아~~ㅋㅋㅋㅋ
전에 94세로 돌아가신 할머니가 살아 계실 때에는 내 손으로 모시 옷 손질은 안해봤다.
여름만 되면 우리집 모시옷(내 모시 치마저고리에 남편 것 까지)을 다 가져 오라셨다.
바쁜 내가 남편의 모시 옷을 안 해 입히고 있으면 식사시간에 몇번이고 가져다 달라고 하셨다.
자기는 가만히 앉아서 놀고 먹는 밥충인데 그런 일이라도 해야 한다시며....
잔주름 하나 없이 명경같이 곱게 손질하셔서 차곡차곡 갠 옷 보따리를 받아 들 때면
그 할머니가 흘렸을 땀이며 그 사랑에 목이 메일 지경이었다.
언제든지 더러워지면 자기한테 가져다 달라고 하셨고
내가 바빠서 내 모시 옷도 손질 못하고 주일에 그냥 양장을 하고 찬양인도를 하면
꼭 그 다음주엔 모시 옷 가져 오라고 하셨다.
더운데 수련회 하느라 손질 못한 걸 아시고는 여름 잠깐 입는 옷을 아끼지 말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한복집 하는 할머니 친정 질녀한테 이야기 해서 내 몸 칫수를 대충 일러주시곤
여름 치마저고리를 국산모시로 맞춰 주시곤 하셨다.
지금도 옷을 갖다 주라고 하시는 분이 계시지만 그 수고가 부담스러워 그만 두시라고 했다.
내가 안 입으면 되지 그 수고롭고 힘든 일을 연세 높으신 할머니들한테 끼치고 싶지 않다.
옷이 새하얀 색이니 속옷도 잘 챙겨둬야겠다.
색짙은 속옷 입고 새하얀 모시옷이나 마 옷을 입고 나서면 입고 다니는 사람을 욕하는게 아니라
그렇게 입혀서 내 보내는 그 집 안사람을 흉보지 않을까?
남편 속옷하나 제대로 안 챙겨서 내 보낸다고...
칠칠맞은 여편네 같으니라구...
우리부부야 각자가 알아서 옷 챙겨입고 나서는데 속옷 봐 줄 시간도 그런데
모시옷 입을 때만은 간섭을 단단히 해야겠다.
그런데 이 여름에 두번은 풀 안 먹이고 싶은데 어쩌지?
남편 입성은 아내 얼굴이라나 뭐라나...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