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둘째 오빠네 세째딸 결혼식이 서울 경동역부근 결혼식장에서 있었다.
위로 두 조카들은 이미 경주에서 결혼식을 했어도 우리집 수련회 관계로
하나뿐인 고모가 불참하는 아쉬움이 있었기에 이번 막내딸 결혼식에는
행사끝에 누적된 피로감으로 몸은 천근만근 무거웠지만 금요일에 친정으로 날아갔다.
처음에는 행사 후에 정리나 다음 행사준비로 바빠서 못 갈 것 같다고 전화로 미안함을
전했지만 , 올케언니는 우리집의 행사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라
내가 그 어떤 이유 아닌 사실을 이야기해도 서운했을 것이다.
날씬해지다 못해 핼쓱해진 얼굴로 일을 마치고 밤 버스를 타고 경주 친정에
도착한 시간은 거의 밤 10 시가 다 되어 있었다.
남편은 행사준비로 참석하지 못하기에 혼자 버스를 타고 비 내리는 경주 친정 집에
도착하니 친정엄마는 하나뿐인 이 딸도 잘 알아보지 못하시고 누구세요????............
한참을 들여다 보시더니 아~~~숙이네~~~
엄마의 건강이 나날이 악화되고 치매는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둘째오빠네 세째가 결혼한다고 몇번이나 말씀드려도 우리 둘째의 이름을 대시면서
둘째 사위는 뭐하는 사람인지....몇살인지....어디에 사는지......???
내가 모른다고 하면 그것도 모르고 사위를 보는 장모가 어딨냐신다.
늦은 저녁을 챙겨 먹고 엄마방에서 곯아 떨어져 자고 있는데 막내올케랑 오빠가 오셨고
못 온다고 미리 연락했던 터라 반갑기도 하고 놀라기도 하는 눈치.
두어마디 주고 받는 대화에서 둘째 올케가 청첩장을 엄마네로 보내지 않았고
막내 오빠가 둘째 오빠네 가서 한장 들고 온게 다라고 그랬다.
물론 우리 집에도 오지 않았고.
막내 오빠의 전화로 알게 된 결혼식.
시댁쪽에는 아무 집에도 청첩장을 안 보낸게 알려지니 참 ........
둘째 올케는 내가 시누이값을 하자치면 끝도 없이 걸리는게 많은 사람이다.
엄마가 그렇게 아파서 병원에 입원해 계셨어도 병문안 한번 안 갔고
어버이날?.......감감무소식.
엄마생신??.....물론 감감무소식
명절이나 집안 큰 일에는 얼굴이 가장 늦게 등장하고
음식을 손으로 집어 먹으면서 짜네...싱겁네...세련됐네..후지네.....
음식을 한 막내 올케 속을 있는데로 발칵 뒤집에 놓는 사람이다.
막내올케는 차라리 형님이 안 왔으면 좋겠다고 할 정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다 듣고 있었지만 한번도 올케 왜 그러냐고 말하지 않았다.
어른을 섬기는데 너무나 무심하고 소홀했어도 오빠가 무능해서 안사람 단속 못해
그런걸 누굴 원망하겠느냐며 눈 감고 넘어갔고 귀 막고 넘어갔다.
부부싸움을 하는 날에는 우리집에 밤 12시가 넘어서 전화를 하고 두어시간씩
떠들어대며 저 혼자만 잘났다고 악을 쓰고 오빠를 욕하고 헐뜯어도
오죽 못난 오빠가 안사람 단속을 못했으면 저리도 시댁 식구 무서운 줄 모르랴 싶어
달래고 달래고 또 달래며 가정을 지키도록 안주시켰었다.
오빠의 이혼이 서류까지 다 준비되고 법원까지 들락거릴 때 두 부부 사이를 오며가며
남편 눈칠 봐 가면서 화해 시키느라 나이가 한참 어린 내가 이혼조종관이 되었었다.
누구말이 진심이고 누구말이 거짓인지 불륜 ...그 자리에 없었던 나는 어느 누구의 편도 들지 않았고 오빠한테는 오죽했으면 그런 오해를 낳게 올케한테 잘못했냐고 야단을 쳤고
올케한테는 심정이 가더라도 오빠가 아직 올케랑 헤어질 마음이 없고 가정을 지키길 원하니 올케도 가정을 깨고 이혼녀가 되고 싶으면 이혼을 하고 그렇지 않고 좀 야속하고
밉고 배신감이 들더라도 한번만 용서해 주고 이해를 해 주면 어떻겠느냐고 달랬다.
아내가 오해할만큼 일이 커졌으면 무조건 남편이 잘못하고 있는 일인 것이고
짐심으로 사과하고 용서를 빌리고 다그치면 오빠는 아니라고 펄~펄~뛰고.
중간 입장인 나는 누구 말이 맞는 말인지 그 상황을 겼어보지 못해서 난감했다.
예민한 여자입장에 서서 오빠를 더 많이 혼냈고 내가 올케입장이라면 어땠을까 ??
생각하니 끔찍했던 것이다.
잠도 오지 않을 것 같았고 남편이 곁에 오는 것도 끔찍하게 싫을 것 같았다.
그래...오빠가 나쁜 거다.
사실이 어떠하든 아내를 화나게 했고 오해하게 했으니 나쁜 남편이다.
그 기간이 너무 길었었다.
수시로 야심한 시간에 오는 전화로 남편한테 적잖은 눈치를 봐야했고
그런 일로 친정전화를 받는다는게 솔직히 자존심이 크게 상했다.
조용하고 아무일 없는 날에는 단 한통의 전화도 일절 없다가 꼭 화나거나 속 상하면
밤이고 낮이고 남의 가정사는 아랑곳없이 전화를 해댔다.
그럴 때 마다 조카들과 오빠를 생각하며 내 기분이나 내 감정은 싸~악~덮어두고
올케의 말만 들어줬고 달랬었다.
시객 가족 중 어느 한 사람만큼은 그런 속 터지는 올케의 분화구가 되어 줘야겠어서.
그런 날 에는 꼭 오빠한테 내가 전화해서 올케한테 그러면 안된다고....
여자 특히 아내를 화나게 하면 못난 남편 못난 남자라고 야단을 쳤고 조심하라고...
돈 많이 안 벌어다 준다고도 난리였고
올케가 밖에 자주 나다니는데 그런걸 단속한다고도 난리...
다정다감하게 말을 안해 준다고도 난리고 불만이었다.
밖에서는 잘 웃고 말수도 그리 적지 않은 오빤데 왜 그런지.
올케가 듣는 데서는 절대로 오빠편을 들지 않는게 맞다고 본다.
오빠로 인해 화가 난 올케한테 내 핏줄이라고 오빠편을 들어준다면 올케는???
결혼초부터 삐그덕거리더니 큰딸이 서른이 넘고 손자가 넷이나 생긴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서도 싸움은 끊이질 않았다.
올케한테 가장 서운하고 야속했던 점은 공부도 꽤 하고 이쁜 큰 조카가 번듯한 대학에
합격하고 한학년만 다니고 휴학하게 만든 점이다.
아이를 그렇게 휴학하게 만들고도 아줌마가 얼굴에 주름살이나 펴는 수술을 받고
돌아다닐 때 내 친언니 같았으면 당장에 뛰어 올라가 화를 내고 야단을 쳤을 거였지만
고모된 내가 아이 등록금을 대납해 줄 여건이 못되니 그것도 참고 지나갔는데
옷이나 가방 구두까지 명품일색으로 도배를 하고 친정집에 나타나 자랑만 늘어지게 하고
단 한켤레의 양말도 스타킹도 시부모님 모시고 사는 막내 올케한테는 인색한 점.
이루 말로 다 하지 못하는 야속한 올케였지만 단 한번도 그것 때문에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자기 새끼 자기가 단속하고 기르겠지...
그 엄마밑에서 자라는 세 딸들이 제발 배우지나 말아 줬으면 하는 바램만 마음 가득했다.
그런 올케였지만 세 딸들은 신랑들을 잘 만나 이쁜 가정들을 꾸리는데 얼마나 대견하던지.
이쁘게 신부화장을 하고 앉았던 조카가 못 올거라 알고 있었던 고모가 나타나니 너무 반갑게 맞아줬다.
나도 두 조카들의 결혼식 때 못했던 축하를 마음껏 해 줬다.
위로 두 조카들도 아들딸들을 안고 걸리고 와 주었다.
큰 조카사위는 프로골프선수며 강사라고 그랬고
둘째 조카사위는 이태리 조리산데 홍콩으로 출장을 가서 못 왔단다.
오랫만에 보는 조카들이 아줌마들이 다 되었고 애가 딸린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
신랑되는 사람은 서울에서 작은 디자인사무실을 경영하는 사장님이시라나??.
세 딸들 다 연애결혼인데 조카들이 이뻐서 그런지 시집도 잘들 간다.
신혼부부를 생산하는 공장처럼 너무나 빠르게 진행되는 결혼식이 아쉬웠지만
그 짧은 순간을 위해 두 젊은이가 부담을 많이 느낀 듯 피곤해 보였다.
결혼식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 오는 버스 안.
친정식구들이 거의 대부분이고 (올케의 시댁쪽) 올케 아파트 부녀회원들이랑
둘째 조카의 시부모님도 동석한 버스에서 음주가무가 이어졌다.
세 딸들 다 무사히 결혼시키고 내려가는 올케와 오빠는 너무나 홀가분 해 보였고
또 행복해 보였다.
그래서 하객들마다 한잔씩 권했던 술에 두 부부는 제법 불콰~해 졌고.
\"고모야~내 오늘 너무 기분 아서 한잔했다.ㅎㅎㅎㅎ
흉보지 마래이~~아~앙~네~네~~~감사합니다~ㅎㅎㅎㅎㅎㅎㅎ\"
그랬다.
위기설이 몇번이나 오갔던 올케는 이혼녀가 아닌 정상적인 부부사이에서
세 딸들을 결혼 시킨게 마음속으로도 참 안정돼 보였고 행복한 거였다.
중간중간에 하나뿐인 시누이라고 소개한 것 때문에 나더러도 노래 한곡 하라고
일으켜세웠지만 허리에 무리를 준 행사관계로 그럴 기분은 아니었던지라
그 대신 돌아 온 마이크를 잡고 버스 통로에 당당히 나가 섰다.
그리곤 흥분한 하객들을 조용히 시키고 진정이 된 뒤에 즉흥적인 연설 한마디.
난 아무래도 마이크 체질인가벼~`ㅋㅋㅋㅋㅋ
\"아~아~(마이크 테스트 좀 하고...ㅎㅎ)
오늘 비가 오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멀고 먼 먼 서울까지 우리 조카의 결혼식에
참석해 주신 하객 여러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어느 부부인들 위기며 갈등이 없었겠습니까만 지혜롭게 잘 극복하고 오늘 세째
공주까지 무사히 결혼시킨 오빠 부부한테 아낌없는 박수~~~ 부탁드립니다.
(이 부분에서 우~와~짝짝짝.......고모최고다~~우뢰와 같은 박수소리 터지다.ㅋㅋ)
오늘만큼은 오빠의 이름 앞에 올케언니의 이름을 먼저 부르겠습니다.
김 00와 최 00 부부 그동안 수고가 많았습니다.
앞으로 남은 생애 동안에 더욱 더 많이 사랑하시고 행복하시고
오늘 새로운 출발을 한 내 조카 부부도 행복하고 사랑넘치는 가정을 이루고
이 버스에 올라 계신 모든 분들의 가정가정마다에 넘치는 기쁨과 행복이
가득 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뿐인 시누이가 이만 인삿말 줄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자 ~~~~~다시 돌리고 돌리고~~큐~~~\"
쏟아지는 박수소리를 뒤로 하고 중간 휴게소 칠곡에서 나는 내렸다.
경주까지 가서 대구로 해서 창녕에 올 생각을 하니 까마득했는데 남편이
전화를 해서 칠곡까지 마중 나갈테니 기사아저씨한테 중간에 내려 달라고
부탁을 하라고 했다.
기사분이 흔쾌히 차를 돌려줬고 칠곡 비오는 휴게실에서 랑데뷰 무사히 집으로....
마음의 짐을 다 내려 놓은 기분이다.
내가 하는 일이 어떤건지도 이해하지 못하는 올케를 이해시키느니 내가 피곤하고
힘들어도 서울까지 강행군을 하고나니 밀린 숙제를 한 기분이다.
부디 다시는 이혼문제로 내게 전화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고
새롭게 출발하는 조카가 잘 살아주길 바란다.
앞으로도 올케의 야속한 기행은 이어지겠지만 한 눈 감고 한 귀 막으면 될 터.
올케의 가정만 잘 지키고 아이들 외롭지만 않게 하고 산다면 그게 다행이지 않을까?
부녀회 일은 돌아다니는 일이라 잘 하고 다니는 모양이라 손님들이 많았다.
승용차는 올케 몫이고 오토바이는 오빠 몫인 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