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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동의 밤


BY 그대향기 2010-05-12

 

 

새벽부터 부산하게 준비하고 떠났던 서울 나들잇 길.

점심약속이 남산타워였기에 할머니들 모시고 간 첫 서울나들이가 바쁘기만 했다.

가까운 거리도 아니고 너댓시간을 내리 달려야 하는 장거리 여행이라

준비를 단단히 하고 떠났다.

연세도 많으신 할머니들이라 도중에 지치실까도 걱정이었는데 웬걸???

96세 할머니는 우리보다 더 쌩쌩 하시질않나?ㅋㅋㅋㅋ

 

새벽에 떠나는데도 분단장 뽀얗게 다 하시고 고운 꽃무늬 블라우스에 조끼까지 척~~맞춰입으시고

제일먼저 차에 올라 타고 계셨다.

다른 할머니들도 가방을 둘씩이나 준비하시고 덜 뜬 표정으로 출발을 기다리셨다.

전 날 밤에 찰밥과 미역국을 넉넉하게 준비해 뒀다가 이른 아침을  부담없이 해결하고

멀미가 심한 젊은 할머니 한분만 남겨 두고 떠났다.

이 할머니는 연세도 가장 젊으시고 혼자서 식사가 가능하신 분이라 마음이 덜 불편했다.

굳이 혼자 남아서 회관을 지키겠다며 멀미보다는 남는 걸 원하셨다.

매번 멀미 때문에  장거리 여행이 어려우신 할머니시다.

 

서울까지의 여행이 할머니들한테는 결코 쉬운 나들이는 아니지만 다들 좋아하시니

수학여행 떠나는 어린 학생들처럼 마음들이 둥~둥~하시다.ㅎㅎㅎ

중간에 두개의 휴게소에서 위생적인 볼일을 해결하고는 남산까지 직행,.

미리 와 대기하고 있던 초청하신 분들과 만나서 주차장에 차를 두고 미니버스로 정상까지 올라가는데

도보로 좀 걸어야 하는 길에서는 오르막이라 관절이 좋지 않은 할머니들한테는 무리가 좀 ?따랐다.

둘이서 겨드랑이 부분을 부축해 드리면서 타워까지 가는데도 초장부터 힘들어 하시니 어쩔까???

 

전망대로 가려면 엘리베이터 있는 곳까진 가야했기에 거의 업다시피해서 오르막길을 가려니 좀 그랬지만

정작 엘리베이터를 타고 단 30초만에 남산꼭대기까지 올라가니 우리나라 좋은나라~~~ㅎㅎ

발 아래 서울이 한 눈에 다 들어오는데 햐~~~~

전날 비 소식이 있어서 실망했던 마음은 온데간데 없고 서울의 모든 거리가 다 보인질 않나~`

평소에는 뿌옇게 매연이며 황사로 가려진 서울의 모습들이 아주 맑게 잘 보였다.

촌아줌마가 할머니들 모시고 모처럼 서울 온다고 이리도 맑은 날로 축복해 주시다니.....감사합니다~~`ㅎㅎㅎ

어질어질한 느낌으로 한바퀴 휘~둘러보는데 건물들이 미니블록만하고 차들은 그냥 작은 유리조각이

햇빛에 반짝이는 듯하고 유유히 흐르는 한강은 여기가 서울이라는 듯 한 눈에도 서울의 핏줄처럼 느껴졌다.

남편은 전망대 꼭대기에서 소변을 보는데 유리창 너머로 청와대가 보이고 그 청와대를 보면서

소변을 보는 느낌이 아주 묘~~~~~하더라고 했다.

 

 

부페식으로 차려진 점심을 먹었고

점심값은 음식에 비해 무지하게 비쌌다는 느낌이었다.

전망대 관람료까지 포함된 가격이라기에 수긍은 갔지만...ㅎㅎㅎㅎ

점심 후에는 외국인 선교사묘지에서 참배하고 경복궁으로 자리를 옮겼다.

보수 수리 중이라 좀 어수선했고 수학여행 온 학생들까지 합세하니 그 넓은 경복궁이 왁자지끌....재잘재잘...

나도 중학교 수학여행을 서울로 왔었는데 ..싶으니 절로 웃음이 났었다.

풋풋하고 씩씩하고 즐겁기만 한 학생들 틈에 끼어 휠체어를 밀면서 경복궁 구경하랴~아이들 재잘대는 소리 들으랴~

정작 궁은 별로 안 봤던 거 같고 사람 구경은 더 많이 했던 기억이 난다.

시골에서는 못 보는 사람들인데...ㅋㅋㅋ

 

솔직히 할머니들한테는 경복궁 관람이 크게 즐거운 구경은 아닌 듯 했다.

그 넓은 궁을 돌고 돌고 또 돌고....

휠체어에 앉은 할머니들은 뒤에서 미느라 힘들고 다리가 좀 낫다는 할머니들은 그래도 오래 걸으니 힘들다 하셨다.

경복궁을 돌아 보는데 96세 할머니의 말씀.

\"머할라꼬 집만 크게 지어서 대문 찾기도 힘들게 해서는......\"

그래도 한 나라의 임금님 집인데 커야 외적이 쳐 들어와도 임금님 못 찾지요..했더니

\"방만 많고 후궁들만 많이 거느리느라꼬 나랏일 못하다가 오랑캐한테 나라나 빼앗깃지럴....\"

일반 가정집 생각하시다가 경복궁 안의 크고 많은 방들을 둘러 보시더니 끌끌끌...혀만 차신다.

경복궁관람이 그 할머니 정서에는 안 맞았나 보다.ㅋㅋㅋ

 

저녁은 서초동 바로 옆 동네 한정식집이었는데 음..서울음식은 깍쟁이 같았다.

음식이 조금씩만 나오는데 버리지 않게 나온 거는 좋은데 배 큰 우리 할머니 한분.

\"이게 애들 소꿉놀이지 사람 밥 반찬이야?\"ㅋㅋㅋㅋ

그래도 가짓수가 많으니 그냥 드시라고 해도 영..맘에 안 드시는 눈치.

손님이 얼마나 많던지 우리나라 불경기는 그 곳에는 찾아 볼수 없었다.

자리가 비기 무섭게 다른 손님들이 들어 차고 또 들어 차 앉고...

그 비싼 땅에다가 그만한 식당 문 열려면 돈이 얼마나 들까???ㅋㅋㅋ

쓸데없는 돈 걱정만 하다가 내 반찬 다 어디갔어?

 

숙소는 세상에나~~~

서울하고도 서초동 한 복판 콘도식 호텔이란다~~

할머니들 서울나들이를 위해 스폰서 몇분이서 준비하셨다는데 우리나라에서 땅값이 비싸기로 유명하다는

서초동 한복판에 우릴 데려 가시는데 촌 아줌마 비싼 땅에서 잠이나 잘 올라는지 모르겠다니까 다들 웃으셨다.

콘도식으로 일반 아파트처럼 너른 거실과 큰 방 하나 중간 방 하나에 깔끔한 주방과 드럼 세탁기까지....

욕실도 샤워부스가 사우나까지 되게 아크릴로 완전 차단까지 되게 해 둔 아주 훌륭한 숙소였다.

냉장고도 미니가 아니라 빌트인 스타일이라 그러던가?

가구처럼 보이고 문을 열면 냉장고요 닫으면 그냥 평평한....

창문 너머로는 우리나라의 내로라하는 큰 건물들은 다 보이고 바쁜 차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서울의 야경을 만들어 가고 빌딩숲의 거대한 움직임은 낮보다는 밤이 더 멋지다.

할머니들하고 8명이 올라갔는데 숙소를 둘씩이나 잡아두셨다.

우리 부부를 따로 잡아 두셨다가 극구 사양하는 바람에 취소를 하셨지만 우린 모두 모여서 한 집에

다 자도 될만큼 큰 숙소였는데도 굳이 둘씩이나 잡아 주셨다.

편하게 자야 이튿날 여행에도 피곤하지 않으시다면서.

 

그 밤에 그냥 잠만 자고 이튿날을 맞이 하려니 너무 아까워 서초동의 밤거리라도 보러 나가고 싶었지만

나이 많은 할머니들만 남겨 두고 우리 부부만 살짜기 빠져 나가려니 미안해서 그 간절한 유혹을 뿌리치고

비싼 땅 위에서 코...........................................손도 안 잡고 잠만 잤다.

도우미 한분은 우리 둘이서 심야 영화라도 한편 보고 멋진 카페에 들러 차라도 한잔 마시고 들어 오라고

낭만 운운하시며 엘리베이터 앞으로 걸음을 이끌었지만 차마.......

솔직한 마음으로는 아고~~~~아까버라.....ㅎㅎㅎ

한방에 두분이 주무셨고 너른 거실은 텅~텅~비웠뒀고.

이튿날 아침은 호텔에서 준비한 간단한 식사로 해결했다.

양식과 한식이 준비되어 있었고 각자의 입맛에 따라 해결하는데 오우~투숙객들이 꽤 많은 모양이야~

동서양의 사람들이 쏼라쏼라~~아침 식탁이 꼭 국제세미나 분위기???

우리 일행 할머니한분은 끝까지 자기는 한식만 먹었으니 안 먹은 빵은 싸 가지고 가야 하겠다신다.

여긴 그러면 안되는 장소라고 해도 돈내고 먹는건데 왜 안되냐고 부득부득 우기시고 기어히 관철.

못말리는 고집불통 할머니에 노탐이시리라.ㅎㅎㅎ

 

식사가 끝날 무렵 둘쨋날 도우미분들이 속속 나타나시고 국립박물관에 도착.

여긴 어제 경복궁보다 더하네 그랴~

온통 걸어야 하는 장소고 그리스 전시관은 설명만 길고 할머니들은 졸기만 하시고..ㅋㅋㅋㅋ

온통 발가벗겨 놓은 남자들만 있다고 하시고 한국역사관은 아이들로 북세통이라 더 혼잡했다.

날짜를 기가 막히게 잘 잡아서 아이들 수학여행철에 우리도 합세 하는 형국이라 절로 웃음이 났다.

할머니수학여행단~~!!!

청계천이며 이태원 서울랜드, 아쿠아리움 등....

구경할 곳을 많이 정해뒀는데도 걷기가 불편하시고 바람까지 불어대니 취소에 취소가 이어지다보니

결국에는 박물관 구경도 도중에 작파하고 점심먹으러가 되고 말았다.

먹는 일에는 취소가 없지 암...ㅋㅋㅋ

 

분자조리법이라는 희안한 조리법으로 유명하다는 한정식집.

맛으로 먹기 전에 눈으로 먼저 색감이며 분위기를 먹었던 거 같다.

아주 예쁜 집기에 너무 앙증스럽고 이쁜 음식들이 코스 요리로 나오는데 한가지 한가지

작고 이쁜 보석들을 만지는 기분이랄지?

맛은 기품있다라기 보다는 새로운 맛에 대한 기대라고 해야하나?

음..이런 맛이야?

으흠..이런거였구나~~하는 정도?

깔끔하고 정성스런 맛이긴 했는데 토속적인 음식을 좋아하시는 할머니들한테는 좀 ......

젊은 우리들은 살도 별로 안 찔 것 같고 음식들이 하도 이뻐서 좋았던 거 같았다.

할머니 한분은 빨리 김치하고 밥 달라고 조를 정도였으니 상상이 가시는지??ㅋㅋㅋ

밥값은 상상초월~~`

 

점심 먹고는 용인의 샘물호스피스 병원으로 갔다.

우리 할머니 두분도 그 곳에서 돌아가셨고 우리 기관에서 다달이 적으나마 후원하는 병원이다.

그 곳 책임을 맡고 계시는 분을 우리도 오래 전부터 잘 알고 계시고 우리 기관에도 많은 도움을 주신다.

말기암환자들의 편안한 임종을 지켜 드리는 그 병원과 그 곳의 많은 봉사자들은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시는 분들이 아니신가 싶어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맞이 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마는 최대한 그 두려움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와 간호 그리고 유가족들을 위로 해 드리는 그 책임자분과

봉사자들의 숭고한 사랑은 내가 우리 할머니들을 돌봐 드리면서 받아왔던

많은 칭찬이나 과분한 대접을 오히려 부끄럽게 했다.

우리 할머니들이 하루 산에 올라가서 쑥을 캐서 정성스럽게 쑥덕을 해 준비해 갔고

그곳의 많은 분들이 골고루 잘 나눠 드셨다며 좋아하시며 반겨 주셨다.

서울에서 먹어보는 쑥덕 맛보다 향이 너무 좋아서 아주 감사하시다니 오히려 손이 부끄럽고 황송했다.

 

할머니 한분이 여행 도중에 방광염이 심해지셔서 그 병원에서 안정을 취하시는 동안

인근에 있는 건강나라라는 세계 최대라 자랑해 둔 찜질방을 갈 기회가 생겼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운전하는 남편도  쉴겸 찜질방 구경에 꽃구경도 할겸.

정말 이 정도면 그런 프랭카드를 내 걸어도 좋지 않을까 싶었다.

부지가 거의 5만평 규모라 그랬고 목욕시설이나 찜질방 그리고 거대한 수목원을 방불케 하는 곳곳의 정원들

한창 피기 시작한 온갖 꽃들로 여기가 찜질방인지 외국의 대부호 저택의 정원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였다.

돌아봐도 돌아봐도 방들은 무수한데 미로찾기에 번번히 실패.

나중에는 할머니들 찾으러 왔던 길을 몇번이나 뺑뺑이를 돌아쳤던지 지쳐서 꽃만 구경하고 있었더니

할머니들이 오히려 날 찾아 오셨다.ㅋㅋㅋ

자수성가하신 분이시라는데 그 대단한 규모에 놀랐고 그 자금 동원력에 더욱 놀랐다.

서울인근에 그만한 부지와 그만한 건축물이라면 천문학적인 금액이 있어야 할 터.

우린 그냥 단돈 얼마로 그걸 몇시간 소유하는 걸로 만족하고 행복하면 돼.ㅋㅋㅋㅋ

 

나가서 근사한 곳에서 저녁을 사 주시겠다는 걸 돌아다니기에 지친 할머니들 손사래를 치시고

찜질방의 미역국 정식과 냉면으로 저녁을 해결하고 드디어 서울나들이를 마감.

돌아오는 차 안에서 드시라며 찹쌀모찌(이 이름은 표준말를 모르겠더라구요~ㅎㅎ)며 현미빵

이뻐지라며 챙겨주시는 화장품 그리고 사랑으로 챙겨주시는 여러가지 선물을 안고

이틀을 길거리에서 살아 낸 할머니들 기쁜 마음으로 고..홈....

여행이 좋긴한데 걸음이 말을 안 듣고 허리가 마음잡순데로 꼿꼿해 지지 않으시니....

살아생전에 이런 여행이 두번은 더 있을까 싶어 나서셨단다.

이틀 꼬박 장거리 여행에 지친 남편이었지만 훌륭한 기사노릇을 수행 해 줘서  고맙고

작은 사고도 없이  무사하게 잘 마치게 되어 감사했다.

할머니들 덕분에 우리가 늘 과분한 대접을 받아 송구하다.

걷기조차 더 힘들어 지시면 이번처럼 떠나는 여행은 두번 다시는 없을 것 같아 안타깝지만

할머니들이 건강하게만 늙어가시면 여행이야 못 떠나면 어떠랴?

이만한 건강에도 감사하지 않으실런지...

 

 

좀 길었지요?ㅎㅎㅎ

두번으로 나누어 올리려니 재미없을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