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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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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마무리


BY 그대향기 2010-03-08

 

 

오늘도 할머니는 두꺼운 코트에 털목도리까지 하고도 모자라 숄까지 두르셨다.

얼굴에 핏기까지 가셔져 가는 모습은 차마 곁에서 뵙기 민망하다.

밥은 거의 못 드시고 멀건 죽으로만 끼니를 해결하시려 한다.

영양이 조금이라도 진한 음식은 소화력이 떨어져 계시니 설사를 하시는 통에 드리지도 못하고.

누룽지나 흰죽으로만 연명하시려하니 매끼니가 할머니한테는 고역이시다.

그래도 쓰러지시는 일은 하지 않으시니 병원 입원도 안하려하시고....

 

병원에서 간암판단이 내리시고 6개월 시한부 인생을 사형선고처럼 받으시고

지금껏 건강한 모습을 잃지 않으시려고 무진 노력 중이신데 그 6개월이 훨씬 지난 요즘

하루가 다르게 건강이 악화되어 가시는 모습에 안타깝기만 하다.

새벽기도회와 저녁기도시간에도 꼭꼭 참석하시지만 오래 앉아계시는 자세가 힘드신가 보다.

이미 오래 전부터 주변을 정리하셨고 살아오신 발자취를 기록으로 남겨두셨다.

 

북에 두고 온 어린 딸을 그리워하시면서 언젠가 통일이되면 선물한다고 옷이며 반지를 모으시더니

어느 날부턴가는 하나 둘...정리를 하셨다.

통일이 잘 안될거라 판단하셨고 부질없는 일이라 여기셨던가 보다.

업고 월남한 아들은 제주도에서 명퇴를 당하고 이런 저런 일로 부업을 하다가 이젠 백수로 방콕.

아들이 그 상태니 아들한테 누가 될까 봐 그 몸으로도 혼자서 이기려 하신다.

우리 집에서는 병원에 오가는 일은 도와 드리지만 치료는 되지 못한다는 걸 아신다.

 

그걸 아시면서도 선뜻 병원에 입원을 못하시고 견디시는건 지금 병원에 입원하시게 되면

천국가시는 날까지 이어지실 걸 너무나 잘 아시기 때문이다.

병원이 어떤 곳인가?

하루 온 종일 침대에서 소독냄새와 싸워야 하고 팔이며 엉덩이에 주사바늘이 쉼없이 찔러대고

일인실이 아닌 이상엔 옆 병상의 환우들 병문안 오시는 손님들의 소음을 고스란히 함께해야하고

언제일지 모르는 마지막을 준비하면서 견뎌야 하는 하루하루가 얼마나 힘들고 어려우실까?

 

주무시다가 천국에 가시길 희망하신다.

연세가 드신 분들의 공통된 희망사항이지만 죽음의 시간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

지금보다 더 악화되고 힘들어 하시면 병원에 입원을 하셔야겠지만 아직은 본인이 가시는 걸 원치 않는다.

다른 할머니들하고 교제도 하시고 기도시간에도 참석하시면서  최대한 평상심을 유지하시려 한다.

내가 해 드릴 수 있는 일은 따끈하고 묽은 죽을 끓여 드리는 일 밖에는 없다는게 안타깝게 한다.

추위를 몹시 타시길레 털 조끼를 하나 드렸고 점점 청력도 희미해지셔서 고함을 지르다시피 대화를 해야한다.

여든 여덟이시면 그리 애석한 연세는 아니시지만 북에 두고 온 딸과 남편을 그리워 하시는 모습이

풀지 못한 숙제를 안고 가시는 듯 해 보이셨다.

 

저 북쪽 사람들은 도대체가 이해불가...

우리집에만도 월남한 할머니들이 세분이신데 다들 북에 가족이 있다고 그러셨다.

남편과 부모님들 그리고 어린 딸.

이젠 이 세상의 사람들이 아닐거라 단정지으시면서도 그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짙게 느껴지셨다.

좋은 음식만 드셔도 생각날거고 따뜻하고 보드랍고 따스한 내의만  입으셔도 생각날거고.....

하루 하루 죽음을 향해 발걸음이 옮겨지시면서 더 그립고 가고싶은 고향이시리라.

 

이제 할머니의 선택은 두가지.

일반 요양병원으로 가실지..아니면 호스피스병원으로 가실지.

아들이 있는 제주도에는 아예 가실 뜻이 없으시댔다.

아들의 형편도 여의치 못한데 엄마가 또 짐이 되기 싫으시다고....

이미 본인의 수의도 손수 다 만들어 두셨고 장례비까지 다 마련해 두셨다.

여러 해 전부터 상조보험을 드셨고 병원비까지 스스로 알뜰히 준비해 두신 철저한 성격이시다.

험한 모습을 안 보이시려고 최대한의 인내심을 발휘하고 계시는 할머니.

마지막 순간까지 내 손으로 따뜻한 식사로 대접해 드리고 싶지만

건강이 어떻게 버틸 힘을 얻을 수 있으실지.....

 

임종을 지켜 볼 때마다 난 너무 아팠고 서투른 이별에 눈물바람이었다.

잘 해 드린 기억보다는 잘 못 해 드린 것만 생각나 더 미안했고 죄송했다.

내 직업이고 당연히 해야 할 일이어서 볼 봐 드린 것 밖에 없는데 우리 가족들을 위해 기도해 주셨고

바쁜 일손을 도와 주셨던 할머니들이 돌아 가시는 것은 너무 큰 상실감으로 한 동안은 너무 힘들었다.

또 다른 할머니들이 그 빈자리를 채우시겠지만 늘 이별은 내게 너무 버겁기만 하다.

언제쯤 내게 이별은 힘들지 않을까?

꽃샘 추위라도 지나고 나면 봄동산의 이쁜 꽃들이라도 구경하고 돌아가셨으면....

벚꽃 가로수길에 허드러지게 피는 벚꽃들의 하얀 손인사라도 받으시며 가셨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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