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 땐 이렇게 미끌거리고 징그럽게 생긴 것을 먹는다는 것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보신탕이나 몸보신을 위해라기 보다 어떻게 먹을 수 있나 먹는 사람들이 야만인처럼 보였다
결혼 후에 첫아이를 임신하고 입덧이 하도 심하니 남편이 어디서 애길 들었나
개고기를 먹으면 입덧이 뚝 그친다고 하면서 나를 데리고 간 식당에 앉아 있으려니
진짜 이걸 먹어야 되나 말아야 되나 많은 번민을 하고 결국 남편이 만약에 개고기를 안 먹으면 이혼하자고 협박까지 당하고 난 후 할 수없이 한 점 한 숟갈 먹기 시작했다.
처음엔 입 안에 전혀 다른 이물질이 투입 되는 느낌이고, 먹다보니 구수하고. 처음엔 못 먹는다고 설레발치던 내가 첫아이 낳고 몸보신으로 염소 대신 개고기를 삶아 먹었다.
그 후 산후조리를 못해서 얻는 휴유증은 없었다.
둘째 아이는 입덧이 순해서 그렇게 고생하지 않았는데도 그 보신탕을 나 혼자 먹으러 가는 것도 민망하고 남편은 뒤따라 따라오고 내가 앞장서서 다니다 보니 그 식당에 단골손님이 되었다. 그렇게 보신탕으로 시작한 나의 몸보신을 위해서 다음 메뉴는 바로 미꾸라지와 우렁이다. 처음엔 서울에서 신혼 살림을 하다가 시골에 내려와보니, 도시엔 없는 논과 밭이 우리집을 빙둘러 온통이였다. 남편은 논농사만 주로 지어 겨울엔 한가하고 여름에만 좀 바쁜편이라 논에 늘 있는 우렁과 미꾸라지를 수시로 잡아들였다.
미꾸라지를 보니 대충 머리나 꼬리나 별 차이 없이 뱀처럼 길지는 않지만 내 집게 손가락 굵기부터 제법 튼실하게 살찐 것들이 배쪽으로 누런 색에 등엔 진한 회갈색이 영낙없이 자연산이었다. 남편은 내가 뭘 한다고 하면 일단 걱정부터 한다. 특히 요리를 한다고 하면 먼저 하는 말은 간 볼 때 꼭 나를 불러라? 이러는데. 내가 이 간을 아무리 잘 본다고 해도 짜도 그렇게 짤까 싶게 하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래서 남편은 나 대신 이 추어탕을 끓여 주곤 했는데, 그 덕분에 여태 별 병이 없이 살도 안찌고 건강하다.
짐 근처에 저수지와 작은 샛강이 흐른다. 애들 어릴때 강으로 들로 나가 우렁잡고 쌀처럼 작다고 해서 쌀조개를 잡아 된장풀어 한 번 푸르륵 끓이면 그 국내음에 흙냄새가 난다. 처음엔 이 냄새가 싫어 어떻게 먹냐고 하니 나중에 그 맛이 진짜 맛이라고 나도 그 때 알았다. 우렁도 마찬가지다. 하도 우렁을 좋아해서 나보고 우렁각시냐고 한 적도 있었다. 우렁껍데기 통째로 된장찌게에 넣어 끓이면 은은한 흙냄새가 구수한 된장과 잘 어울린다.
또 한 해가 가고 온다. 새로운 각오도 해야하고 마무리도 해야 할 때, 그동안 나를 위해서 먹혀주고 잡혀주고 한 온갖 생물에 새삼 고맙다고 새해 인사를 드리고 싶다. 이미 내몸속에 들어와 살이 되고 피가 된 한 포기의 배추나 마늘 한 쪽이라도 모두 생명이 있었던 존재들이었슴에도 나에게 오기까지의 그 수고로움부터 감사를 드리고 싶다.
또 얼마나 앞으로 많은 것을 먹어야 하고 잡아야 하고 거둬들여야 할 지 모르지만, 그들도 이미 나에게 오기 위해서 살아야 하는 것이리라. 새삼 고개를 숙여 이 세상의 모든 삶에 정중하게 단상을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