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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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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보


BY 그대향기 2010-02-10

 

 

한 동안 뜸했던 고향선배한테 전화를 하던 남편이 갑자기 말이 없었다.

전화수화기만 들고 할 말을 잃고 넋나간 사람처럼 멍~~한 표정으로 동작 그만이었다.

거실에서 구멍 난 양말을 꿰매던 나는 갑자기 조용해진 남편을 올려다 볼 뿐.

말을 잃은 남편이 되돌아 올 때 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무슨 일인데 전화를 하다가 말어?\"

.............................................

\"전화가 끊어졌어? 아니면 그 번호 아니래?\"

............................................

\"무슨 화나는 일이라도 생겼어? 왜 그래?\"

............................................

 

거듭 묻고 또 물어도 묵묵부담이었다.

잠시 숨고르기를 하던 남편 입에서는 어처구니 없는 이름이 쏟아졌다.

\"부산 선배있잖아~~? 대학을 서너개씩이나 하신?....

 그 선배....작년 가을에 식도암으로 돌아가셨대.\"

너무나 놀란 나도 한 동안 뻥~쪄진 표정으로  할 말을 못 찾았다.

그 선배는 우리 부부를 참 많이도 사랑해 주셨고 특히 남편이 학교를 그만두고

집안 일을 거들어 준다고 했을 때 끝까지 대학교를 추천하던 선배였는데....

그런 자신도 대학을 몇개나 다니시면서 배움의 허기를 채우시던 분이셨는데....

 

늘 청바지에 간단한 남방이나 면 티셔츠를 즐겨입으시며

소년처럼 미소가 해맑았던 언제나 청춘같으셨던 젊은 오빠였는데

갑자기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나고 안 계시다니 남편의 상실감은 너무나도 큰 모양이다.

가끔씩 안부전화를 하실 때 꼭 내 안부와 아이들 안부도 빼 놓지 않았던 자상하시던 선배.

오랜만에 반가운 목소리나 들으려고 한 전화에서 부고를 전해 들은 남편은

본인도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가  한 안부전화에서 선배같은 소식의 주인공이 될 까 봐

충격이 큰 모양이었다.

산다는게 뭐지?....... 들릴 듯 말 듯 하는 혼잣말.

 

난 아무런 대꾸도 못 해 주고 슬금슬금 남편 눈치만 살폈다.

선배를 잃은 상실감도 컸겠지만 남편은 그 순간 자신을 읽어가고 있었다.

나도 암환잔데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버릴것 같아....

누가 찾지 않으면 사망소식도 알리지 못할 친구들이 얼마나 많을까?

이룩해 놓은 것 없고 모아 둔 재산이 없는데 저 어리버리한 마누라는 어떻게 살아갈건지...

조금 뜸하긴 했어도 소식은 가끔 들었는데 그 동안 안 했다고 돌아가시다니

나도 나중에 일부러 안부전화 안 한다면 아주 오랫동안 잊혀진 사람이겠구나.

 

이런저런 허탈감이 드는지 남편은 거실 쇼파에 앉았다가 그저 멍~하게 서 있다가

서재며 안방까지를 들락날락하기만 했지 그 어떤 말도 행동도 자제했다.

한숨을 길게 쉬었다가 뱉을 뿐이었고.

늘상 죽음을 가까이에 두고 사는 직업이지만 고향선배의 죽음은 또 다른 충격이었다.

너무나 앞날이 창창하던 선배였었고 똑똑했었고 다정다감했었고 남편을 사랑해줬던 선배.

이웃마을의  노인분들 사망소식하고는 너무나 다른 타인이지만 타인 같지 않은 부고.

누구나 다 한번은 가야할 길이지만 준비없이 들은  선배의 비보는 분명 큰 충격이었다.

 

악착같이 하시던 공부가 아깝고

너털웃음 지으시며 너른 마당을 걸어오시던 그 환한 미소가 그립고

안부전화를 하실 때 마다 꼭 나를 바꾸라셔서 남편을 잘 부탁한다시던 톤이 편안하던 그 음성이 그립다.

아직은 이 땅에서 하고자 하셨던 많은 일들이 있으셨을건데

젊은 나이에 아깝고도 아까운 나이에 그렇게 훌쩍 가시다니요?

가시기 전에 한번쯤 보고싶다고  연락이라도 하시지 .....

 

선배님 기억나십니까?

10 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영도 밤바다에서 선배님의 꿈이야기를 하시던 날을요?

멋진 음향기기를 들여 놓고 좋은 음악을  맘껏 들으면서 일 하고 싶다시던 꿈이야기요.

행사장 음향기기나 큰 업소 음향기기가 주 업무였지만 형편이 되면 그냥 혼자만의

음악실을 갖고 좋아하는 음악 실컷 들으시면서 글을 쓰고 싶으시다고 그러셨지요?

꿈을 꾸는 소년처럼 행복하게 그 말씀을 하실 때 밤바다에선 작은 파도들이 뱃전을 때리고 있었더랬지요.

그 소박하고 아름다운 꿈을 다 펼쳐 보시지도 못하고 그리 급하게 가셔야만 했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