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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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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왜 꼭 너여야만 하니?


BY *콜라* 2010-01-27

\"왜 그게 꼭 너여야만 하니?\"

글쎄....

왜 꼭 나여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걸까. 

 

지난 일요일

결혼 12년만에 자연임신으로 2월15일 출산을 앞두고 있는 후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곧 태어날 아이가 뛰어 놀 공간이 있는 주택으로 이사를 가기 위해 집을 팔았다고 했다.  

마흔을 앞 둔 고령 초산의 임산부가 왜 이 시점에 이사를 하려는지 염려스러웠지만

아이를 위한 일이라니 할 말을 접고 용건을 물었다.

 

구입한 집은 1월29일 잔금일이고, 매도한 집의 잔금일은 2월23일.

받을 잔금일과 지불해야 할 잔금일 사이 약 24일 정도 공백이 생긴 것이다.

그 기간에는 출산예정일이 끼어 있어 어떻게든 2월 초 이사를 해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 공백기간 동안만 돈을 좀 빌려 달라는 것이었다.

 

만삭의 몸으로 얼마나 마음이 다급할까 ... 

빌려서라도 무조건 해주고 싶은데 

대답 대신, 돈거래를 끔찍하게 싫어하는 남편 눈치를 먼저 살폈다.

스피커 폰으로 통화내용을 모두 들은 그의 인상이 벌써 구겨져 있다.

 

차마 거절의 말을 하기 어려워 마른 침을 꿀꺽 삼킨 다음 거짓말을 했다.

\"진희야.... 우리가 지금 돈이 없는데 어떡하지? 혹시 여유가 있는 지 남편과 의논 해보께...\"

전화를 끊는 순간 내 말문을 막아서는 그의 한 마디.

\"우린 없다.\"

 

묻지도 않았는데, 자존심 상하고 기분 나쁘고 화가 났지만 용기를 내어 머리를 굽혔다.

\"자기... 우리가 빌려 주면 안돼? 얼마나 급하겠어.. 나이도 많은데 초산이라 마음이 안정되어야 하잖아...\"

\"우린 없다.\"

 

대화의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무작정 빌려달란 것도 아니고, 이사일의 잔금과 잔금 사이 잠시 융통해 주면

후배 성격상 분명 이자를 주면 주지 약속 어길 애도 아닌데 인정사정도 없는 그가 야속했다. 

\"자기.... 그럼 내 개인 계좌에 마이너스 쓸 수 있잖아... 그거라도 빌려주자. 우리한테 이자부담 시킬 애가 아니잖아\"

그 이야기라면, 이제부터 상대도 하지 않겟다는 듯

아예 눈길도 주지 않는 그에게 계속 사정 했다.

 

\"자기...한 번만 생각해 봐...  일가 친척 하나 없는 먼 캐나다 땅에서 어디서 단 돈 100불이라도 빌릴 수 있겠어... 알잖아. 우리도 가게 인수할 때 빌려 달란 말조차 할 곳이 없던 거...게다가 진희는 지금 아이 낳을 때가 내일 모레인데 마음이 얼마나 초조하고 불안하겠어...그 심정 한 번 헤아려 봐 .....  \"

 

그의 마음과 양심과 감성, 애국심... 그렇게 한 참을 설득했지만 돌부처처럼 신문만 보던 그가 ...

가만히 나를 돌아 봤다. 아니 돌아 봐 주셨다. 

나는 말을 멈추고, 왕의 처분을 기다리는 내시처럼 몸과 마음을 또아리 틀듯 작게 만들며 

그의 윤허를 기다렸다. 

 

\"그래... 알아. 그런데 사람들이 어려울 때마다, 그 대안이 왜 꼭 너여야만 하냐고...\"  

촌철살인이라 했던가. 한 마디가 급소를 찔렀다.

호흡이 일시 정지 된 듯 멍해 졌다.

 

글.... 쎄.......

왜 ...... 왜 나였지?

마음여린 내 약점을 이용해 휴지로도 사용할 수 없게 되어 버린 차용증이 몇 장, 그나마 없는 경우도 있었고,..

내가 오래 사랑했고, 또 죽을 때까지 사랑하고 싶었던 그들 모두를 전부......거짓말 처럼.... 모두 잃었던 아픈 기억이 영화처럼 휘리릭 스쳐 지나 간다.  

 

시간이 흐르며 잃어버린 돈은 잊혀 졌다.

그러나 시간이 갈 수록 그들을 떠나게 한 나약한 내 마음이 죽이고 싶도록 미웠다.

그들 가운데는 끔찍하게 아끼던 후배, 20년 지기 선배,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중고등학교 동창생도 있었다. 

차용증 없는 친구로부터는 \"너가 언제 나한테 돈 빌려줬어?\" 하는 말을 들을 때까지도

우리들의 관계는 돈으로 비교할 수 없는 가치와 의리라고 굳게 믿어 의심치 않던 사람들이다.

 

왜 나였을까?

의사 부인에 사업가에 대학가에서 악세사리 매장을 운영하며 머리 핀 하나도 명품만 꽂던 그들이었는데 

주변에 나보다 돈 많고 유능한 다른 친구나 후배도 있었을텐데

왜 하필 내게 힘들다고... 어렵다고..., 유학 보낸 두 아들에게 돌아 올 비행기 티켓 비용을 보내지 못해서

불법체류자 처지에 놓였다며, 할 수만 있다면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죽고 싶다는 말로

내 마음을 뒤흔들어 친정엄마의 쌈지 돈 까지 빌려다 주게 만들었을까...

 

내가 제일 친하니까. 그만큼 나를 믿으니까, 그 친구에게 나만큼 좋아하는 다른 친구가 없으니까........

어려운 그 모든 일들을 털어 놓고, 부탁 할만하니까 부탁하는 거라 믿었었다.

 

왜 하필 너여야만 하니.....

그 한마디는 오늘 하루 내내 해답 없는 화두였다.

 

왜 나여야만 했을까.

내가 가장 바보같아 보여서...

내가 가장 속이기 쉬워서...

그건 아니었을 거라고 믿고 싶다.

 

아마도

그들 친구들 가운데

내가 그들을 가장 사랑하는 친구, 언니, 동생이 아니었을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