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다오가 고장나니 집안이 적막하다.
가끔가다 순님이가 지나가는 차 한번 지날 갈 때마다 캥캥 짖고
밤늦게 울 집 지붕위에서 동네 다른 고양이랑 정말 영역싸움을 피터지게 싸운 것 빼고는
진짜 별 일이 없는 오후였다.
라디오를 사러 가야 한다고 남편에게 애길 했더니
가던지 말던지 그냥 내 말을 지나친다.
대답은 원하지 않았지만, 최소한 십 년 이상 사용한 라디오가
안 나온다고 해도 눈만 테레비에 고정되어 돌아보지 않는다.
퇴물이나 고물이나 모두 관심이 없다.
방학중인 울 아들 그런다.
\" 거 맨날 목소리 없는 것만 틀어서 안 나오는 거여?\"
목소리가 왜 안나오냐? 상냥하고 살가운 아나운서들이 목소리 하나 쥑인다? 이 놈아?
쌀이 떨어졌다고 하면 얼른 쳐다볼텐데. 아들 마누라 굶을까봐 그렇기도 하겠지만
이 적막한 시골에 개나 고양이가 한 번 짖고 말면 소리를 들을 일 없는 귀가 고프다고 하면
남편 별 걸 다 한다고 지청구 줄 것이 틀림없다.
하도 심심해서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누구한테 전화해서 수다나 떨까
어떻게 버튼을 눌렀는데 핸드폰 단말기 바꾼지 두 달이 다 되가는데 화면 밑에
라디오라는 기능이 딱 눈에 띄였다.
\" 어라라..그럼 라디오도 된다는 건가?\"
혼자 생각에 그 버튼을 누르니 화면이 채널이 숫자로 뜨고 FM이라는 글자가 보이고 그 걸 누르니
익숙한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야 야! 아들! 나 라디오 발견했다아?\"
\" 어? 엄마 이거 원래 라디오가 기본으로 있는 건디?\"
전화는 잘 걸고 잘 받으면 된다고, 화면 크고 글자 큰 효도폰은 라디오가 원래 있었단다.
울 아들 언젠가 학교에서 버렸다고 주워 온 스피커에 이어폰을 꽂으니
서라운드 오케스트라가 진짜 생생하게 들린다.
야! 이거 진짜 라디오네!
울 아들 옆에서 소리를 크게 키우니 오디오 툴어 놓은 것처럼 집안이 울린다.
그 때 마침 들리는 겄
슈만의 세레나데가 비올라의 중후한 연주가 흘러 나왔다.
옆에서 지켜보던 울 남편
\" 거 어디서 디게 많이 들은 건디?\"
많이 듣긴 들었을 것이다. 트로트며 가요를 더 좋아하는 통에 이 수준높은 클래식이 문외한이라고 했지만.
고장난 라디오 덕에 오로지 몇 년을 클래식만 나오니 어쩔 수없이 들었을 것이다.
조금 있으니 울 아들 채널을 바꿨나보다.
\"황지니 지니 지니~~~..너를 두고 뭐 어쩌구 저쩌구?\"
\"야? 이건 또 뭐여?\"
남편이 큰소리로 그런다.
\" 거기다 놔라? 엉? 그거 내가 좋아하는거다?\"
아니 이거 내 라디오라고 막 주장하고 싶은데. 황진이와 슈만은 너무 먼 사인가?
노래 끝나고 다른데 돌리는거여? 이러고 싶은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