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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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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금 자장면


BY 봉자 2009-11-29

 

봉자는 한 달 전부터 먹고 싶은 자장면이 있다.

시 외곽에 있는 중국집인데, 손자장이 완전 별미다. 평소 자장면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 집 자장면은 뭔가 달콤하고, 고소한 것이 향기부터 입맛을 사로잡아 버린다.


그런데, 자장면을 먹기 위해서는 몇 가지 넘어야할 산이 있다.

첫째는 가게를 대신 봐줘야할 사람을 물색 하는 것이다.


올해도 수능 개죽을 쑤고 남달리 빈둥거리는 큰아이,

눈치 볼 것도 없이 지금 딱 부탁하기 좋은 형편이라 오케이....

 

가 되겠지만 이 원수는 재수로 수능을 치고 난 뒤부터

(한국 시각보다 7시간 쯤 늦은) 북유럽,

핀란드 어디쯤에 살고 있는 줄 착각하고 산다.


대한민국의 기상 시간은 대개 오전 7시지만

저 혼자 오후 2시가 지나야 일어난다.

봉자와의 약속에서 미지수란 말이 언제나 유효한 아이다.


두 번째로 봉자를 태워갈 기사를 구하는 것이다.

“딴 곳 보다 1.5배 비싼 자장면 값에다 가까운 데도 많은 데

쓸데없이 차 기름 때가며 쏼라쏼라....”오만상을 찌푸리는 李기사 남편.

 

그려? “오늘 유류대, 자장면값 봉자가 책임진다.” 

공짜 음식 앞에선 명쾌하게 단순무식해지는 아저씨

말 떨어지기 무섭게 오케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신경 써 넘어야할 산,

며칠 전부터 눙쳐놓은 봉자의 계획이 제대로 성사가 되어야 한다.


요즘들어 달러가 하락세를 면치 못하니 금값이 파죽지세라는

뉴스가 자꾸 솔깃해진다. 머리 나쁜 봉자도 이땐 뭔가

싸악 스치는 게 있다. 흐흐

 

봉자는 집안의 금맥을 캐듯

서랍에서 굴러다니는 합금 조각을 주워 모았다.

아, 그런데

IMF 때 돈 되는 금딱지는 다 팔아 먹고, 남은 게 영 신통치가 않다.



두세 개, 하도 조그만 것이라 빈 약봉지에 넣어

손바닥에 올려 보아도 무게감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엥! 이걸로?’ 하지만 기왕 맘먹었으니 실행은 해봐야지.


막상 금은방에 도착하자, 이것이 과연 돈이 될까 싶기도 하고,

면박만 받고 쫓겨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고개만 살짝 내밀고 점포 안을 엿보니

부부로 보이는 두 사람과 젊은 남자주인이 마주 서있는 게 보였다.


오래된 반지를 꺼내놓고 말을 주고받는 것으로 봐

금을 팔러온 손님인 듯 하여, 봉자도 용기를 내 문을 열고 들어갔다.


금은방 주인은 봉자를 힐끔 보더니

요샌 금을 사러오는 사람은 없고

전부 팔러 오는 사람뿐이라며 묘한 웃음을 지었다.

 

척 봐도 금을 사러 온 손님은 아니란 짐작일터,

호주머니 속 약봉지를 쥐고 있던 봉자는 저절로 움찔,

공벌레처럼 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금은방 주인이 먼저 온 부부에게 오십만 원 정도를 건넸다.

봉자가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니,


“이건 아무 것도 아닙니다. 며칠 전에는 어떤 아주머니 한 분이

금 100돈을 가져왔지요. 시세 4만원 할 때 금계를 해서 모아뒀던 것인데

팔아서 가져간 돈이 1400만원이었어요.”


금덩어리 100돈?

아, 이쯤해서 그만 나갈까? 순금도 아니고 합금에 불과한

이 금부스러기를 어찌 내 놓는단 말이야. 자장면을 포기해?

우물쭈물 주춤주춤하는 사이 금은방 주인은

일단 가지고 온 물건부터 보자고 하였다.


무게감 기대감 전혀 없는 개봉박두

약봉지를 헐었다.


호주머니에 넣은 줄 모르고 세탁기 돌리다 줄이 터진 18K 목걸이,

 

머리감다 잃어버려 한 쪽만 남은 14K 귀걸이,

 

올 여름 가게로 걸어오다 길거리에서 주운 14K 실반지.


“아, 이런 건 예전만해도 받지 않았는데.....”

금은방 주인은 실망스런 어투로 말끝을 흐리지만

금시세가 워낙 좋아 사준다는 뒷말은 봉자 맘대로 해석해버리고


“기왕 가지고 나왔으니 금액이 적더라도 계산해줘요.”

그냥은 가지 않겠노라 오금을 박았다.


그렇게 주인장 손에서 계산기 톡톡 두드려 나온 값어치가

18k 1.4돈     : 133,000원

14k 두 개 7푼 :  52,000원, 도합 185,000원 이란다.

 

인터넷에서 미리 팔 때의 금시세를 알고 왔지만

실제 손에 쥘 액수는 어쩌면 주인 맘대로일지 모른다는

염려도 있었다.

처음 걱정과는 달리 금은방 주인이 쳐준 185,000원은

시세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고 봉자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금액이었다. 

 

돈을 받아 쥔 채 고맙다는 인사를 연거푸하고 금은방을 나선 봉자는

의기양양 남편이 기다리는 차에 올라탔다.

 

“이 기사 뭐해? 출발~!”

남편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차를 평소보다 요란스럽게 출발 시켰다.

역시나 오래된 고물 봉고차를 타면

봉자는 사모님처럼 말해도 몸은 짐짝처럼 몹시 흔들거린다는 것을. 


드디어 식당에 도착했다.

자리를 잡고 물 한 잔을 들이킨 후 지갑의 돈을 꺼내 남편에게 자랑했다.

이만 저만하여 십 수만 원이 공돈처럼 생겼다고 하니

남편도 덩달아 자신 있게 ‘자장곱빼기!’를 외쳤다.


둘이는 한마디 말도 없이 맛있게 자장면 한 그릇씩 비웠다.

가게 지키는 딸을 위해 포장까지 부탁해 계산대에

서니 합이 19,000원, 19,000원어치 금붙이가 떨어져 나갔다.

이른바 18금 자장면 값이다.


손자장면은 기계면 보다 빨리 불어 얼른 먹어야 한다는 중국집의

조언을 기억하고 남편은 딸을 위해 가속 페달을 밟았다.

하지만 자장이 좀 불더라도 봉자에겐 할 일이 남아 있다.

오는 길 중간, 농협에 들러 통장에 남은 돈을 입금시켜야 한다.

통장에는 잔액이 거의 없다.

가게 살림이 빠듯해 다달이 들어가던 시민단체 기부금이 9월부터 못 들어갔다.

빨리 채우지 않으면 이달도 구멍이 나버린다.


이 돈이면 한 일 년 잊고 있어도 자동으로 빠져나갈 것이다.

삐갱이 눈물만큼 적어 손발이 오그라들긴 해도,

이 기부야말로

구멍가게 봉자가 세상과 소통하는 작은 희망이자 끈이 된다.


마침내 먹고 싶었던 18금 자장면과 함께

남편과 딸이 동원된 금 팔기 프로젝트가 완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