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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할머니의 사랑(7)--이별


BY 동요 2009-10-09

사람과 사람의 만남도 이유없이 이루어지는 게 아니듯

집과 사람의 만남도 그런가보다 하는 생각을 합니다.

 

부끄럽게도 부부가 둘 다 맞벌이를 하면서도 그 때까지 집이 없었습니다.

남들보다 애 하나 더 있는 거에 아내쪽이 씀씀이가 좀 헤픈 거 말곤 그냥 앞만보고 열심히 살았는데

전세살이를 면하지 못한 걸 나는 나름의 철학을 들먹이며 위로하고 있었지요.

 

\"집을 소유한 사람이나 빌려쓰는 사람이나 죽을 때 버리고 가긴 마찬가지지 뭐.

두 칸짜리 내 집보다 네 칸짜리 전세서 편하게 사는 게 좋은 거야.\"

 

그러면 남편은 같이 맞장구를 쳤습니다.

\"맞어 맞어, 집 주인 그거 진짜 힘든거야. 비온다고 고쳐달라 그러지 하수구 막혔다고 수리 해달라 그러지..아이고.

전세가 얼마나 속편한지 알아?\"

 

거지 아버지가 불난 집 보며 아들에게 \"넌 애비를 잘 만나 불날일 없으니 좋겠다\" 했다는데

딱 부부의 이야기가 그 수준입니다.

 

집에 크게 연연해 하지는 않았는데 마음속에 살고싶은 집의 그림은 있었습니다.

거실에서 남의집 담벼락 안보이고 자연만 보이는 집,

그게 마음 속으로 내가 그린, 살고싶은 집 그림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운명처럼 그런 집이 나타났습니다.

문화센타 부모교육 강의를 갔다가 만난 동네, 산이 그림처럼 둘러싸인 예쁜 마을을 보고

내가 살 곳임을 운명처럼 느끼고 가족 모두를 졸라 이사를 했습니다.

처음으로 집을 사게 된 것입니다.

 

집을 사게 되었다는 말에 아주머니는 누구보다 기뻐하셨지요.

집을 계약하고 너무 멀리 이사를 가서 어쩌면 아주머니가 이젠 그만 오신다고 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기우였습니다. 같이 가신다고 하셨습니다.

 

이별은 뜻하지 않은 이유로 왔습니다.

집을 사고 대출금도 많은데 남편이....명퇴를 결정하고 20년 넘게 다니던 회사를 나왔습니다.

더 나이들기 전에 뭔가 자기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남편은 명퇴를 결정했고

가장의 명퇴는 알수없는 무게로 내게 다가와

경제관념 없는 나를 하나 둘 지출을 줄이고 가계부를 체크해보는 주부로 변하게 했습니다.

 

아주머니와도 헤어져야 하는 게 맞다는 결론은 어렵지 않게 지어졌습니다.

집에 남편이 있어 귀공이의 보호자 역할을 할 사람이 있는데 아주머니가 오실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생각지도 않은 이유로 아주머니와 슬픈 이별을 했습니다.

아주머니 덕분에 책도 쓰게 되었고 강사도 되었고 그리고 집도 살 수 있었다고 감사인사 드리는 나에게

아주머니는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걸 믿어주고 마음으로 아껴주는 우리가족이 정말 감사했다고..

 

봄에 집을 사고 초여름에 이사를 하고 그림같이 예쁜 거실밖의 산에 단풍이 물들어갈 때쯤

지인이 포도 농사를 지어 포도 두 박스를 보내왔습니다.

달콤한 맛의 포도를 들고 나에게 물었습니다.

나는 누구에게 마음으로 가장 고마워 하고 있는가..

엄마 다음 아주머니라고 마음이 말했습니다.

 

포도 한 상자를 들고 아주머니 집 앞으로 가

언제나 건강 유의하시라는 말과 함께 드렸더니 너무도 고마워 하셨습니다.

작은 것에도 크게 고마워할 줄 아는 사람에게 사람은 무엇이든 또 나눠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 같습니다.

 

이사오고 잘 살라고 한 번 다녀가시고 귀공이 목소리 듣고 싶다고 가끔 전화하시고 나도 생각나면 전화하고

친척 아주머니처럼 그렇게 일 년이 지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