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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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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그리운 엄마.


BY 그대향기 2009-10-09

 

 

남들이 다 쉬는 연휴도 우린 직업의 특성상 일박만 가능하다.

할머니들의 식사를 준비해 드려야 하기에 늘 일박씩만 쉬었다.

연휴가 일주일이든...오일이든 상관없이.

명절만 되면 늘 바쁘고 힘든 일정이다.

시댁으로 친정으로 번개처럼 돌아 인사드릴려면.

 

올해는 시댁엔 남편의 병원 검사를 핑계로 미리 인사드리고

친정에만 추석 다음날 다니러 갔었다.

그것도 늦은 오후시간대에.

다행히 막내가 월요일까지 쉬는 날이라서 같이 인사 드릴 수 있어서 좋았다.

안 그래도 엄마는 두 딸들을 멀리 보내고 쓸쓸해서 어째 사느냐시는데

아들까지 동행하지 못했다면 날 보고 얼마나 안타까우셨을까 싶다.

 

친정에 들어서자 마자 엄마는 먹을 것을 챙기시기 바쁘다.

올케는 추석연휴에도 고깃집 식당일이 바빠서 불려 나가고

오빠하고 엄마는 우리 가족의 저녁상을 차린다고 분주하셨다.

친정에 갈 때 마다 느끼는거지만 올케는 살림솜씨가 깔끔하다.

냉장고도 그렇고 방방마다 정리도 그렇고....

 

대충대충 정리해 놓고 사는 내 살림을 비교하면 부끄러울 지경이다.ㅎㅎㅎㅎ

아무리 늦은 시간에 퇴근을 해도 정리를 하고 잠을 자는 올케는

과감하게 버릴 건 버리는데 난 그렇지를 못하고 끼고 살다보니 늘 널부러진 상태고.

먹다남은 음식도 아까워서 냉장고 구석구석 넣어두는 나에 비해

올케는 깨끗하게 미련두지 않으니 언제나 냉장고도 널~~널~~하다.

닮고 싶은데 잘 안된다.

 

냉장고에 있는 추석음식을 다 내 놓았는데도 엄마는 더 못 내 놓아서 안달이시고

오빠까지 어디에 뒀는지 찾아다니시고 상 차림이 분주하시다.

그만하시라고 말리고서야 상차림은 끝이 났고 우리 가족은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딸이 좋아하는 상어고기 산적은 노릇하게 잘 구어져 있었고

나물도 심심하게 잘 무쳐져 있었다.

아직은 엄마가 명절 나물음식은 하신다니......

며느리한테 다 넘겨줘도 되련만.

 

저녁상을 물리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일 나갔던 올케가 늦은 퇴근을 했다.

경주에서도 알아주는 고깃집이라 명절에도 바쁘단다.

쉬고 싶어도 주인이 통 사정을 하니 안 나갈 수도 없고

특별수당을 준다니 욕심에 몸은 힘들어도 나간다는 올케.

몸이 빠르고 일처리가 깔끔하니 주인의 사랑을 많이 받는다.

수고했다는 인사를 하고 거실에 모여서 살아가는 이야길하며 늦은 시간을 보내는데

초저녁잠이 많으셔서 주무시던 엄마가 일어나셔서 이야기에 동참하신다.

 

귀보청기는 잡음이 많다고 빼 놓으시니 늘 큰소리로 이야기를 해 드려야 하니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어렵긴하다.

꽥~~꽥~~~

목에 핏대가 설 정도는 아니지만 큰 소리를 쳐야 겨우 들으시는 엄마.

보청기는 먼지만 뒤집어 쓰고 무용지물이고 텔레비젼은 확성기를 대 놓은 마을방송 같다.

왕왕왕....

온통 시끄러운 대화가 이어지고 오빠랑 올케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중간에

엄마가 가만히 내 곁으로 오시더니 엄마 이야기를 하신다.

 

그것도 엄마의 어린시절이야기를.

열살도 되기 전 여덟..아홉살 때의 이야기를 꿈 꾸듯이 하시는 엄마.

내 외할아버지 이야기며 엄마의 할아버지 이갸기.

어린시절 뛰어 놀았던 동산 이야기며 어린나이에 칭찬을 받았던 이야기들.

오빠는 하던 이야기를 멈추었고 올케는 그냥 엄마를 쳐다보고

엄마는 내 곁에서 아주 아주 행복한 목소리로 어린 날을 회상하신다.

가끔씩 웃으시면서.....

 

난 고개를 끄덕거려 주었어야했고 엄마가 웃으면 나도 같이 웃어 드려야했다.

올케는 어무이가 우리한테는 한번도 저런 이야기 안 하시던데..그러면서 듣는다.

엄마는 이런 이야기를 들어 줄 이야기 친구가 필요했는데

오빠는 늘상 산으로 운동하러 간다고 집에 잘 안 있고 올케는 일하러 가고

조카 둘은 군대로 대학교로 나가고 없으니 관절이 아픈 엄마는 집에서 온 종일 붙박이 신세.

친구라고는 텔레비젼이 전부고 흰 진돗개 한마리.

올망졸망 키우시는 화초가 엄마의 친구들이다.

 

그러시니 내가 몇달만에 한번씩 가면 엄마는 이 이야기..저 이야기....

하고 싶으시고 들려 주고 싶으시고 .....

외동딸하고의 하룻밤이 엄마한테는 찰나처럼  짧기만 하시다.

\"민지에미야~~! 내가 사람이 그립다....\"

끝내 엄마는 내 가슴에 눈물젖은 말씀으로 멍이 들게 하신다.

사람이 그립다........

전에 다리가 덜 아팠을 때는 집 근처 텃밭에서 농사도 지으시고\'

경로당으로 친구네 집으로 놀러도 나가셨는데

이젠 집 안에서만 기거를 하시니 오죽 하시랴?

 

엄마가 그런 말씀을 나직하게 하실 때 숨이 막힐 듯한 갑갑증이 났고

당장에라도 엄마를 내가 모시고도 싶었지만 오빠는 내 일이 일인지라

현실적으로 불가능 하리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고 엄마가 요양병원에 갈 정도로 악화된 것도 아니시고

그렇다고 집에서 어떤 다른 조치를 해 드리지 못하시니 답답하시다고 그랬다.

병원비도 만만찮게 들어가고 바르는 파스에 붙히는 파스값이 한달에 엄청나다고 그랬다.

수술은 연세가 있으시니 이젠 어렵고 단지 약물에만 의지 하시려니 그 아픔이야 오죽하시랴???

쑤시고 알리고 바람든다는 그 느낌의 고통을 뉘라서 다 헤아릴까?

 

아무리 뺄려고 해도 체중은 요지부동이고.

체중을 조절하신다고 음식을 줄였더니 현기증에 더 못할 노릇이시다고 그만두셨단다.

고혈압에 당뇨에 심장까지 안 좋으신 엄마.

한달 병원비며 약값이 엄마의 지출내역 전부시다.

용돈을 드리면 이 돈으로 파스부터 사야된다시니.

좋은 음식도 엄마는 안 부럽고 좋은 옷도 안 부럽다신다.

그저 안 아프고 조용히 세상을 마무리하고 싶다신다.

얼마나 고통스러우시면....

 

오빠나 올케한테는 핀잔을 받을까 봐 못 하신 옛날이야기를 하시던 엄마의 얼굴엔

천진스런 미소가 번지는 평화로움이 깃들기까지 하셨다.

우리들의 대화가 잠시 끊어지면 또 하시고 또 하시고.....

엄마는 대화할 상대가 그리우셨고 엄마의 말씀을 들어 줄 사람이 필요했는데

이 못난 딸은 하룻밤만 엄마 곁에 머물러 드리고는 다시 직장이 있는 창녕으로 돌아왔으니.

다시 또 명절이 되거나 휴가 때가 되어야 가 뵐 수 있는데

엄마는 또 얼마나 사람이 그리우실꼬??

엄마는 딸 하나를 막내로 낳아서 안 좋더라시며 나더러는 참 좋겠다고 그러셨는데.....

내가 딸 둘을 위로 낳으니 엄마는 넌 좋겠구나 딸이 위로 둘이나 있어서..그러셨는데....

 

사람이 그리운 엄마는 오늘도 텔레비젼을 친구처럼 안고 사시겠지.

온 몸을 파스로 도배를 하시고 그것도 모자라서 수시로 바르는 물파스를 또 덧 바르시는 엄마.

무슨 약으로 엄마의 고통을 덜어 드릴 수 있으려나?

먹는 약으로도 바르는 약로도 안 되는 저 고통을.

90 이 다 되어가는 연세라 감히 수술을 권해 드리지도 못하겠고.

엄마~~~

제가 갈 때 마다 엄마의 이야기를 다 들려 주세요.

내가 모르는 엄마의 어린시절을 다 들려 주세요.

엄마랑 같이 명절을 몇번이나 더 보낼 수 있을까요?

부디 오래오래 사시고 파스값은 제가 더 드릴께요.

그것으로라도 아픔을 줄일 수 있다면요.

더 악화되지만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