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말은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신비한 능력을 지녔다.
쉰을 앞둔 나이에 책을 쓰고 강의를 하는 근사한 직업을 나에게 선물해준 딸이 감사해
강의시간 5분 정도 남겨놓고 핸드폰을 끄면서
나는 가끔 딸에게 문자메세지를 한다.
\"사랑하는 우리 딸. 대전 강의장이야. 행복한 직업 선물해줘서 고맙다.\"
딸은 핸드폰 끄기 1분 전인 걸 아는지 바로 답을 한다.
\"사랑하는 마미~ 제가 선물한 게 아니라 엄마의 노력이 가져온 결과인걸요~ 화이팅입니다\"
기분이 좋아진 나는 부모가 되는 벅찬 기쁨을 모두 느껴보게 하고 싶은 열망으로
최선을 다해 강의를 한다.
엄마에게만 예쁜 말을 하는 게 아니다.
가족 누구에게도 친구에게도 아이는 그 신비한 능력을 아끼지 않는다.
귀공이가 실수로 한 문제를 틀려 95점을 받아와 속이 상해 있자
딸은 한껏 부러워하는 얼굴 만들며 말했다.
\"어머~ 귀공아~ 너 진짜 잘했다~ 언니는 너 만할 때 94점을 받았는데~\"
언니말에 뾰로통 하던 입이 미소로 바뀌는 귀공이를 보며 가슴에 감동이 일었었다.
일기책을 만들고 출판사에서 저자를 공저로 할까 내 이름만으로 할까 질문을 해 왔다.
아이의 일기 원문을 싣고 나의 댓글과 지도지침글 등으로 구성된 거니
책 속에 아이글이 상당부분 들어있어 나도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 지 헷갈렸다.
이 참에 책 표지에 이름이 나오는 영광된(?) 기회를 갖게 해주는 것도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들어
딸에게 의견을 물었다.
그러자 딸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엄마~ 전 엄마가 6년 동안 일기써!! 그러셔서 그냥 썼을 뿐이예요~
모든 원칙은 엄마가 갖고 계셨고 지도요령도 엄마 생각인데 제 이름이 나올 이유가 없어요.
제 일기는 엄마가 쓰시려는 글의 자료일 뿐인걸요~
그리고.......더 중요한 건.......전 제 이름이 나오는 첫 번째 책이 누구와 공저는 싫다고요!!!! 호호호...\"
마지막 말에 기분이 좋아졌다.
난 좀 미안했는데 내 이름 혼자 쓰는게 저를 도와주는 거라니 뭐.
딸의 소중한 사생활을 세상에 펼쳐놓은 게 미안해서 이름이라도 실어주고 싶었는데
딸이 원하지 않는다 하니 편안한 마음으로 내 이름만 적어 세상에 내 보냈다.
지난 번 과수석에 전액 장학금을 받고 외할머니가 기뻐서 전화하시자 딸은
얼굴가득 미소를 띄며 말했었다.
\"할머니~ 저한테 5살 때 시계 가르쳐 주신 분이 누구시죠? 할머니시쟎아요~
이번 기말고사에~ 시계보는 문제가 나왔더라고요~~그래서 제가 시험을 잘 쳤쟎아요
경제학에서 시간의 개념은 중요한 거거든요~~~~제가 시험을 잘 친건 모두~할머니 덕분이예요~\"
내 엄마의 행복한 웃음소리가 수화기 저편에서 또렷이 들렸다.
옆에서 듣는 사람도 즐거워지는 행복한 거짓말,
딸의 재치있는 말을 듣는데 갑자기 얼굴이 붉어졌다.
무엇이든 다른 사람의 공으로 돌리는 아이와 달리 난 늘 내가 잘났다고 떠든다.
이번 책의 맺음말을 쓸 때도 그랬다.
\"이 책을 쓰면서 혼자 잘난 척 했던 제가 부끄러웠습니다. 남편 부모님 친척들 그리고 학교선생님 모두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까지는 좋았다.
근데 마지막에 그 구절을 넣을 게 뭐람..
\"그리고 마지막으로 또 고맙다고 말하고 싶은 사람이 남아 있네요...훗날 자기를 향해 박수치고 싶은 세상의 엄마들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라니..
내가 생각해도 낯 뜨겁다.
주워온 아이 아니니 부모 어느 한 쪽은 닮았다고 한다면
무엇이든 다른 사람에에 공을 돌리는 겸손한 딸은
아마도 나처럼 잘났다고 떠들어 대기 싫어하고 즐거운 일 있어도 묵묵히 입다물고 있는 걸 좋아하는
남편 닮았나 보다.
그런데 문제는 알고도 못고치고 여전히 잘났다고 떠들어 대는데 있다.
난 겸손한 사람들을 내숭쟁이라고 몰아부치고
차라리 나 같이 저 잘났다 생각하면 잘했으니 칭찬해달라고 조르는 사람을
솔직하다고 좋게 평가하는 못말릴 여자다.
난 딸이 아니고 나니 그냥 내 식대로 사는 게 편할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