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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그거 별거 아녀~! (제21회) 주여, 살리셨나이까


BY 만석 2009-08-22

 

1부 제21회


주여. 살리셨나이까


  “정신 좀 차리세요.”

  나는 얼마 동안이나 이렇게 누워 있었던 것일까. 눈을 들어 보니 내 머리 위에는 명의가 웃고 있다. 아~! 살았구나. 나는 지금 살아 있구나. 적어도 수술을 하다가 죽지는 않았구나. 3~4%의 사망률 속에서는 빠졌다는 말씀이야.

  “보이는 암은 모두 제거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그 와중에서도 상황이 판단된 걸까. 눈물이 난다. 그리곤 다시 잠에 빠졌었나 보다. 또 누군가가 나의 팔을 친다. 명의다.

  “이젠 정신 차리셔야지. 암은 모두 제거 됐습니다.”

  “고맙습니다.”

  명의는 아주 기분 좋은 웃음을 지어보이며 내 어깨를 두들긴다. 그 뒤로는 간호사가 지켜 서서 눈을 감지 못하게 한다. 졸려서 죽을 지경인데 어쩌라고. 입을 벌리라더니 칫솔질을 해 준다. 그런 거 좀 안 하면 안 되나? 시방 졸려서 죽겠는데…….


  머리를 돌려 사방을 보니 하얀 시트에 덮힌 시체들이 즐비하다. 눈을 크게 떠서 다시 보니 아, 여기는 틀림없는 회복실이겠다. 시체가 아니라 수술을 끝낸 환자들이다. 말로만 듣기로는 끔찍한 대수술이었을 터인데, 내 몸에선 아무런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다. 신기하다. 아~. 그런데 이건 뭐람. 코에 가느다란 관이 연결 돼 있다. 그 외에도 주렁주렁 여러 개의 관이 내 몸으로부터 뻗어 있다. 영화 ‘에어리언’이 생각난다. 몸에서 기다란 관이 뻗어 나와  꿈틀거리던 괴물……. 더는 아무 것도 모르겠다. 다만 어서 식구들이 보고 싶다. 저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겠지. 아니,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려서 모두 집으로 돌아갔을까. 나만 남겨두고? 혹시 잘 못 되어서 시방 중환자실에 뉘어 놓은 건 아닐까? 그런가?


  아마 몇 분의 면회가 주어졌나 보다. 아이들이 우루루 들어온다. 그이가 안 보여서,

  “아빠는?”하고 묻는다. 그이가 들어온다. 아무 소리도 없이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새 얼굴이 많이 수척해져 있다. 에구~. 불쌍한 양반. 그래도 할 건 다 한다. 그이를 올려보며,

  “아파!\"한다. 알아달라는 애원일까. 아니다. 이건 분명히 어리광이다. 나는 나를 잘 안다. 나는 남편에게 곧잘 어리광을 부리곤 한다. 늘 그이는 기분 좋게 웃어보였으니까.

  아이들이 수술은 근치수술로 성공적이라고, 이구동성 속삭이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오랫동안은 몰라도 우선은 살기는 살 모양이다. 막내 딸아이가 어린아이 달래듯 말한다.

  “왜 그리 겁을 먹어요. 눈에 겁이 잔뜩……. 수술이 아주 성공적이래요. 성공했어요.”

  아이들은 만세라도 부를 기세다. 막내아들이 멀찌감치 서서 내 발을 주무르는 것 같다.


  2시가 조금 지나서 수술은 끝이 나고 바로 중환자실로 옮겨진 모양이다. 수술은 예정대로 6시간가량이 걸린 셈이다. 그러니까 돌발 상황이나 예상외의 난제(難題)는 없었던 모양이다. 옆의 침대에 나보다는 연상인 듯한 점잖은 아주머니가 말을 건넨다.

  “잘 아는 의사요?”

  “…….”

  어~라. 대답을 해야 할 터인데 말이 나오질 않는다. 아니. 살려놓은 값으로 말을 뺏은 겨?  그런 겨? 안 되지. 아니지. 살려놓은 값이라면 안 될 것도 없겠다.

  “아녜요.”

  아~! 수술 전에 명의는 말했었다. 한쪽 성대의 신경을 건드리게 될 것이고, 그러면 쉰 목소리가 날 것이라고. 그때는, ‘살려만 준다면 까짓 쉰 목소리쯤이야’ 했는데…….


  명의의 배려로 식구들은 정신이 든 나를 구경만이라도 하고 사라진다. 작은 볼이 세 개 담긴 운동기구를 아이들이 내 손에 쥐어 줬는데, 그걸 자꾸만 입으로 불라고 한다. 아니 입에다 관의 입구를 대고 흡입을 해서, 세 개의 공을 공중에 띄우라 한다. 젠~장. 그냥도 죽을 맛인데……. 눕지도 못하고 앉은 채인데. 눕혀나 주지……. 세 개의 공은 죽어도 오르지를 않는다. 아~구~. 공기를 입으로 빨아들일 때마다, 머릿속의 골이 산산이 부서져서 하늘로 치솟는 듯. 눈은 빠져 나가는 듯. 손에 든 볼기구와 턱이 숨을 들이킬 때마다 오히려 공보다 더 높이 오른다. 배에 꽂힌 대, 여섯 개의 관이 몸으로부터 한참을 빠져나왔다가 제자리를 찾는 듯하다. 못 하겠다. 죽어도 못하겠다. 죽인다 해도 못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