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신마취로 아이 둘을 낳고 난 후부터 건망증이 생겼는데 날이 갈수록 더 심해지고 있다.
동생은 \"언니는 아이를 낳은 게 아니고 뇌를 낳았나봐.\"
이렇게 심한 말을 하기도 한다.
경기가 풀리기 시작하는지 가게를 넘기기로 한 후부터 가게매상이 점차 다시 좋아지고 있다.
주변 사람들이 가게 그만두는 거 후회되겠다고 할 정도다.
그렇지만 난 단호하다. 요즘 들어 건망증이 중증으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잊지 않기 위해 적은 메모지조차 어디 뒀는지 모를 정도다.
내가 뭔 짓을 할지 나도 모르게 되었다.
오늘은 멀쩡히 집으로 와서 티비를 보다 깜빡 잠이 들었다 깼는데
탁자 위에 카드수첩이 놓여 있는 게 보였다.
그걸 다시 넣으려고 핸드백을 찾으니 도무지 눈에 띄지를 않는다.
예전 같으면 뭐 어디 있으려니 할 텐데 순간적으로 가슴이 서늘해졌다.
집에까지 핸드백을 들고 오기는 한 건가 싶을 정도로 아무 기억이 안 났다.
결국 집전화로 내 핸드폰에 전화를 했다.
안방 구석에서 벨소리가 난다.
순간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나마 핸드폰을 진동으로 해 놓지 않아 쉽게 찾았다.
다 만든 음식을 포장하기 위해 용기에 여러 개 담아 놓고
뭐 가지러 주방에 들어가면 거기에서 눈에 띄는 다른 일 열심히 하다가
나오면 포장을 기다리는 음식들이 보이기도 한다.
오늘도 밤호박과 자주감자 찌려고 불에 올려 놓고 딴짓하다가
냄비하나 또 보낼 뻔 했다.
이제 두부조림은 기피음식이 될 정도다.
두부조림을 하다 손님이 오면 불을 줄이거나 끄고 나가야 하는데 그냥 나가기 일수라
두번에 한번 꼴로 태운다.
그 조림냄비가 아무리 심하게 태워도 복원이 가능하기 망정이지...
그래도 태운 냄비 닦을 때마다 서글퍼져서 한동안 두부조림 안 했다.
집에서는 불에 뭐 올리면 다 될 때까지 불 앞에 앉아 있곤 한다.
우리집 굴비는 필요없는 전기 스위치 켜 있는 꼴을 못 보는데
난 수시로 걸려서 잔소리를 듣곤 한다.
가게 접고 하던 일 확 줄이고 나면 건망증이 좀 나아지지 않을까 기대를 해 본다.
우리 애들은 자기들의 모든 건망증은 엄마 닮아서 그렇다고 한다.
그럼 난 되받아친다.
\"내가 니들 낳기 전까지는 수첩도 필요없는 사람이었다\" 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