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사망 시 디지털 기록을 어떻게 처리 했으면 좋겠는지 말씀해 주세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1,165

병원 일지 (3)


BY 새봄 2009-07-20

 

 이곳에서 일한지 일 년째, 여름은 다시 내 곁에 머물러 있다.

양우산을 사서 햇볕이 정수리에 꽂힐 때 펴들면 연 주황색 한련화 같고

비가 오면 빗물 맺힌 한련화가 된다.

우산겸 양산으로 쓸 수 있는 일인이역을 하는 양우산은 이제는 내 가방 속 필수품이 되었다.

 

작년 여름은 걸음마에 도전을 하는 애기라서 비가 오면 양말이 젖는 줄도 모르고 뛰어다니기 바쁘다가

올 여름은 양말을 벗고 바지를 걷어붙이고 일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아스팔트에 섬처럼 떠 있는 병원은 특별난 사람들만 사는 곳이라 여겼는데

이곳에는 세끼 밥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있고 먹은 것을 잘 소화해서는

시원하게 볼일을 보시라고 층층마다 화장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생과일주스를 파는 매점도 음료가 색색으로 진열돼 있는 자판기도 있다.

병원을 창조하신 이사장님도 계시고

박사학위를 거머쥐신 기념으로 피자를 사주신 의사선생님도

일하는 틈틈이 책을 읽으라고 책을 사주신 원장님도 계시고,

주사기를 들고 사는 간호사를 비롯해

병원 앞 작은 화단에 무슨 꽃을 심을까 고민하는 관리과 차장님도 살고 있었다.

그리고 바닥에 기름을 바른 듯 매일매일 청소를 해주시는 청소여사님들도 계신다.

 

이 모든 병원 식구들과 얼굴을 익히고 인사를 하고 미소를 지은 지 일 년째.

많은 환자들이 오고가는 병원은 눈물이 마를 날이 없어 나도 그들을 보며 눈시울이 붉어지곤 한다.

나이가 많을수록 눈물 흘리는 환자는 거의 없고 사오십 된 환자들이 많이 우신다.

아프셔서 우시냐고 물어보면 서러워서 운다고 한다.

나이 먹어감에 대한 서러움?

늙어 감을 실감하는 서러움? 아플 나이는 아닌데 하는 서러움?

나이가 많을수록 눈물을 보이지 않고 무표정한 얼굴을 하게 되는 것은

삶의 포기일수도 있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을 알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

 

 

주사바늘을 정리하고 시술 뒤에 나오는 알콜 솜이나 거즈를 분리하고 닦고 소독하고

환자들을 안내하고 푸념도 들어주다 보니 하루가 갔다.

외딴섬처럼 떠 있는 병원으로 출근하다 멀리 벚꽃나무 한 그루 발견하고 또 다시 여름이 찾아온 이 곳.

꽃잎 떨어지고 두 달쯤 지나 멀리서만 바라보던 나무를 찾아가니

꽃 진자리에 버찌가 붉게 익어가고 있었다.

 

가끔은 일하기가 힘겨울 때나 삶이 무거워질 때면 아픈 환자들을 생각한다.

환자들 입장에서 보면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내 삶이 부러운 삶이 되는 것이다.  

 

꽃이 피었냐 싶으면  열매를 매달고 열매는 다시 땅으로 돌아가고

서럽게 서 있던 빈가지엔 흰 눈이 풍성하게 덮어준다.

그렇게 계절이 흘러 일 년, 기념으로 떡을 사가지고 간호사들과 나누어 먹었다. 

일 년 되던 날 밖은 장맛비가 앞이 안보일정도로 내렸다.

이 비 그치면 가시거리가 넓어지겠지.

앞이 안보일정도로 앞날이 어둡던 내게 오늘은 앞이 뚜렷하다.

그렇게 또 다시 병원안팎 계절은 오고 가는 것.

강물 흘러가듯 차례차례 흘러가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