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이민 와서 처음살던 아파트 는 지은지 삼십년이 넘은 1960년대 지어진 낡은 삼층 나무 아파트 였습니다.
처음엔 정말 말할수 없는 실망감을 느꼈죠.말 설고,낯 설고,다 설은 남의나라에 있는것도 서러운데,형편없는 초라한 아파트 라니...게다가 아는사람이 아들하나,딸 하나 있는 우리집 을 딸 만 둘 이라 속여 방 둘 짜리 를 얻어놨으니 참,정말 울고 싶어졌습니다.
아마 그런 낡은 아파트 에도 사우나,실내 수영장,테니스장 이 갖춰져 있는것 보니,그 아파트를 지을 당시 엔 호화 아파트 였나 싶었죠.그 당시 생각엔.나중에 그야말로 서민 타운하우스,아파트도 클럽 하우스 라 해서 수영장,체력장,게스트 하우스 를 거의 다 포함해서 짓는다는걸 알았지만 말입니다.
하여튼 난 속으로 \'무슨선진국이 이래,한국보다 못하군.한국은 이런 낡은 아파트 면 벌써 다 부수고 새로 지었을 텐데\'란 생각을 참 많이 했었죠.물론 신도시 우리가 살던 그 아파트를 그리워 했었고 말이죠.참 별별 사람 다 살고 있었습니다.주로 경제적 으로 어려운 사람들이 살았지만,희한하게 그들한테서 생활에 찌든 모습을 절대 보지 못했다는 겁니다.
금요일 부터 시작되는 주말 여름 오후 는 베란다 에서 고기들을 구우며 파티를 하느라 아주 정신없이 시끌 거리고,평일의 오후는 애들 농구 하느라 시끄러웠습니다.그 아파트 분위기는 늘 언제나 명랑,시끄러움.
작년에 그 동네,한국으로 치면,거의 도심지 지요,그 아파트 그대로 있더군요.거의 오십년 된 모습,새로 말짱하게 보수 된 모습 이였습니다.주변의 모습도 그대로더군요.그때 그 시절,이민 초기 가 그러워졌습니다.
이곳에사니,때때로 한국이 그립습니다.(한국에 살땐 내가 옛날 살던 동네 ,이런거 절대 그립지 않았는데 말이죠)물론 나이 들어가니 그럴수도 있겠고,...
맘먹고,한국 갔을때 찾아간 동네,상도동,더러의 흔적은 있었지만,정말 상도동 에서 흑석동 넘어가는 길 은 모르겠더라구요.아파트가 숲을 이루었더군요.옛 추억을 떠울리며 그래 맞다 맞어 이게 그대로 있구나 싶었는데....
이민와서 처음엔 무조건 캐나다 라는 나라가 싫었습니다.다시 돌아가려고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남편이 직장 들어가고나서는 세금 정말 장난 아니게 많이 냈습니다.이주 에 한번 (여긴 한달에 한번 월급이 아니라 이주에 한번 입니다)세금을 내고도 세금 신고 하는 4월에 삼천불을 더 내야 했습니다.집을 샀는데 이 작은 집에 재산세가 이천 육백불 이였습니다. 내는 것만 가지고 불평을 했습니다.오래된 낡은 아파트 에서 사는 사람들을 속으로 경멸 했습니다.다른 한국 사람들 처럼 말입니다.(열심히 일 할 필요 없어 여기서는 저것들 먹여 살려 주는거야 세금 많이 내서)뭐 이런 식 으로 말하는 한국 분도 계셨으니 말입니다.
이민 와 사는 동안,우리집도 참 많은 일 들을 겪었습니다.남편 해고 ,실업자 생활,밥장사,결국 제가 낸 세금 남편 실업 자 일때 돌려 받은거와 다름 없습니다.아이 우유값 매달 나오는거 250불 받았고,세금 환불급(저소득층 한테 주는것 세달에 한번 이지만)도 받았고,의료보험도 면제 되었고,약값,.물론 실업자 수당..(에고 자랑은 아닌데)
사회는 더불어 같이 살아가는거라는걸 알았습니다.물질로 가진게 없는 사람도,정부 보조금이 여유있는건 아니지만,먹고 사는데는 지장이 없어 이런저런 궂은일을 하면서도 생활에 쪄들지 않고,비록 오래된 아파트 이지만,늘 항상 보수는 잘 되어있고,차 없어도 교통시설 좋은 도심지 에서 그들의 삶을 큰 불만없이 이어 갈수 있는건 더불어 같이 사는 사회시스템 때문이란걸 걸 알았습니다.
강자 보다는 약자를 배려하는 사회가 선진국이란것도 알았습니다.,겉으로 보이는 번드르한 것들보다.
어쨋든 내 딸아이 칠학년 일때니 삼년전 이던가요? 한국이 경제대국 세계11위 라는걸 딸아이가 학교 끝나고 나한테 사회시간에 배웠다고 하면서 말해주었을때 참 많이 기뻤습니다.어쩔수 없는 한국인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