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노인 기준 연령을 75세로 상향 조정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484

마르지 않는 샘물


BY 그대향기 2009-05-18

아래 글은 어버이 날에 마을 주민 초청 때 제가 읽은 글입니다.

이 동네에서 제가 가장 젊다는 이유로 낙점을 받았거든요~`ㅎㅎ

해마다 그 어르신이 그 어르신인데 특별할 이야기도 없고

농사를 지으시는 분들이 대 부분이다보니 늘 농사이야기네요.

 

안녕하십니까?.

올해도 여전히 건강한 모습으로 이 자리에서 어르신들을 만나게 됨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아카시아꽃이 필 무렵이면 온 마을을 향기마을로 만들지만

꽃향기에 취할 시간도 잠시...

곧 닥쳐 올 농번기 걱정으로 몸도 마음도 바쁘실 어르신들을 오늘 하루만이라도

모든 일상의 번거롭고 힘든 농사일에서 휴식을 취하시며 즐거운 시간을 갖고자

어버일 날은 지나갔지만 오늘 어버이 날을 기념하는 행사에 모셨습니다.

지난 해에 이어 올해도 변함없이 어버이 날은 찾아왔고

객지에 나가 사는 자녀손들의 축하의 선물보따리며 전화를 받으셨을 부모님들.

고장도 없이 아프지도 않고 꾸준히 제 갈 길을 가는 세월 앞에서

이제는 허리도 예전 같지 않고 오매불망 사랑하는 자식들 전화번호도 가물거리시지만

잊혀진 것은 세월 뿐 만이 아니라 어르신들의 고통까지도 잊혀졌겠지요?

 

적게는 사오남매 많게는 팔구남매의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손톱이 닳아서

깍을 일도 없거나 지문이 다 없어지도록

논과 밭을 낮과 밤을 잊은 채 감자며 양파..마늘을 심고 고추를 수확하시던

어르신들의 그 수고와 희생을 먹고 자식들은 자랐고

그 자식들은 이 나라의 요소요소에서 부모님들이 주신 생명의 끈으로

당연한 일인 양 홀로서기를 감행합니다.

하늘에서 뚝..떨어진 것처럼

땅에서 불쑥 솟아나기라도 한 것처럼 혼자 잘 나서 그리 된 줄로만 아는 자식들.

부모님들이 주신 사랑은 깊이도 알지 못하고

넓이도 가늠하지 못하는 무한한 사랑이신데

속 좁고 내일 일을 모르는 자식들은 부모님들이 언제까지나 함께 하실 줄로만 알고

부모님들을 기다리게 하시고 섭섭하게 해 드리는 선수들입니다.

자식들이 하나 둘 씩 늘어날 때 마다 부모님들의 온 몸은 그만큼 삭아들고

비어간다는 사실을 알기나 했던지요?

저도 몰랐습니다.

제가 자식을 낳고 기르면서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으니까요.

어릴 때는 부모님들의 그늘이 이 세상의 전부였다가

상급학교에 진학하면서 세상이라는 너른 세계로 나가면서부터

부모님을 서운하게도..부모님을 나쁜 어머니 아버지로 만들기 시작했지요.

 

뭘 해 주셨느냐?

왜 이리도 못 생기게 낳아주셨나?

왜 난 키가 남들보다 작으냐?

왜 어머니 아버지는 부자가 아니시냐?

......................

그 말 한마디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양 날 가진 칼이 되어

부모님의 가슴을 후벼팠고 난도질을 해서 아물지 않는 상처가 되게 했는지는

감히 상상도 못하고서 몇치 안되는 혀로 우린 부모님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고

홀로 우시는 참담한 밤을 선물해 드렸지요.

부모자식간은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최고의 선물이라고 하셨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부지 자식들은 부모님들을 세상에서 가장 초라하게 만들기를

서슴치 않았습니다.

부모님들은 자식이 아프다면 밤을 하얗게 세우시며 차라리 대신 아프기를 기도하시지만

자식들은 부모님이 중한 병으로 앓으시더라고 일 핑계로..집안 사정 핑계로

차일피일 찾아드리는 일을 미루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당장 저부터라도 부모님이 제게 해 주시던 그 정성의 털끝만큼도

다 하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참 애 태우는 자식들이지요?

그런 말을 들으실 때 마다 자식이지만 무척 속 상하셨지요?

저도 우리 아버지 살아 생전에 애 많이 태우는 외동딸이었답니다.

남들처럼 부자도 아니었고 제 친구들의 아버지처럼 신사도 아니었거든요.

그런 아버지였지만 외동딸 사랑은 끔찍하셨는데 저는 외면했답니다.

아버지가 언제까지나 살아 계실 줄 알고...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아마 생전에 계신다면 철없던 날에 못 다한

효도를 다 해 드릴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시간은 이 철부지를 기다려 주질 않았고

아버지는 가셨지만 어머니는 살아 계시니 못 다한 효도를 다 드리고 싶건만

말만 앞서고 늘 현실은 제 발길을 붙들고 부족함 투성입니다.

막내이면서 외동딸인 저를 많이 그리워하시지만 저는 번번히 엄마를

서운하게만 만드는 몹쓸 딸입니다.

엄마...큰 애가 멀리 간대서 바빠요~·

엄마..행사가 너무 많이 잡혀서 몸 빼기가 힘들어요~·

담에 좀 한가해지면 갈께요~~

언제나 한가해질지..늘 그런 핑계대기가 일쑤인 나쁜 딸이랍니다.

 

어르신들.

며칠 전에 옥천엘 가 보았습니다.

옥천 가는 길에 큰 저수지가 바닥을 드러내고 말랐더군요.

산 그림자를 물 위에 드리우고 전설처럼 멋지게 있던 저수지물이

허~~연 바닥을 드러내고 피곤한 듯하게 누워있는 그 모습이

어쩌면 부모님들을 닮았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제나 마르지 않을 샘물처럼 그렇게 푸르게 푸르게 세월을 안고

역사를 품은 듯이 계곡을 지키던 그 저수지를 바라봤는데

어느 날부턴가 하늘에서 비가 안 오고 가뭄이 계속되면서는

저수지는 말라들기 시작했고 어디서건 작은 실개천이라도 들어오지 않는 한은

저수지는 영...영...말라들겠지요.

부모님들은 자식들을 위해서 퍼내고..또 퍼내서 가슴 저...밑바닥까지 다 드러나도록

희생 위에 또 희생을 당연하다 하셨지만 자식들이란 다 떠나고 돌아서버린

아득한 옛사랑 같은 그림자이겠지요.

저수지 가장자리에 베어지고 남은 그루터기가 부모님들의

지난 날 영화 같은 것이라 여겼습니다.

작은 새들의 지저귐도 있었고 시원한 그늘도 있어 지나는 나그네들의 발길도

쉼을 얻었지만 이제는 물도 말랐고 나뭇가지도 없어져 버린 모든 것이 빈털터리네요.

 

어르신.

자식들이야 어차피 둥지를 떠나야하지만

이젠 빈 둥지에 늦은 봄바람이 불겠지요?

그 빈 둥지에 비록 허허로운 바람이 불더라도

절기마다라도 찾아드는 철새들처럼 자식들이 드문드문 찾아 오더라도

눈가가 짖무르도록 우시지 마세요.

제가 딸 둘에 아들 하나를 낳아 키우고 또 아시다시피 큰 딸을 시집보내고 먼 나라로

공부하러 내 보내보니 부모들이 생각하는 자식의 마음하고

자식이 생각하는 부모님의 생각은 애시당초에 다른거 였습니다.

부모님의 가슴에는 보석상자 같은게 들어 있어 뭐든 다 자식위해

아무리 값진 것이라도 내 줄 수 있고 목숨까지도 아낌없이 주실 수 있지만

자식이란...부모님들의 높으신 사랑을 천만분의 일도 헤아리지 못하는

나약하고 오만하고 불만투성이 사고뭉치더라구요.

 

용서는 부모님이라면 당연히 해야 하시는 거라며 떼를 썼고

뭐든 다고~다고 하는 거지가 가슴 가득 우글거리던 악동들이

이제는 자식 때문에 속 썩이는 그런 위치에 서 있답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자식의 위치에 있었던 철부지 시절에

부모님께 좀 더 잘 해 드릴걸...

비수를 꽂는 일은 하지말걸...

자식 낳아 기르는 지금에사 부모님들의 어쩌지 못하셨던 어려웠던 시절에

그 마음이 피 흘리는 고통이었음을 감히 느끼며 제 가슴에는 시~·퍼런 멍이 듭니다.

두렵고 또 두렵지만 걸어가지 않을 수 없는 부모의 길이기에

우리 부모님들이 해 오셨고 걸으셨던 그 길을 이제는 저희도 걷게 됐습니다.

많이 가르쳐 주시고 이끌어 주세요.

 

부모님들.

겨울 가뭄에 봄 가뭄까지 심해서 올 감자나 마늘작황은 좀 어떠하신지요?

해마다 봄 수확철이 되면 긴장의 연속이시지요?

마늘이며 감자값이 좋아야 하는데..

양파값이 안정되어서 사는 사람이나 파는 사람이 다 보호받았으면..

그래서 큰 아들네 아파트 살 때 융자 받은 돈 좀 보태주고

둘째 딸네 외손주 대학등록금이라도 좀 보태줘야 할텐데..

할미된 도리라도 좀 해얄건데 어찌될런지...비 올 하늘처럼

가슴에 먹장구름이 일어나셨을 것 같아요.

흡족하지는 않지만 어제 그제 금가루같이 내린 단비로 감자알이 투실투실 굵어졌으면..

양파며 마늘 알들이 튼실해졌기를 바래봅니다.

 

어르신.

저희들이 이곳에 온지도 벌써 16 년째가 되어 가네요.

어린 삼남매를 데리고 처음 이곳에 왔을 때부터

그 때까지 시골생활에 익숙치 못한 저희 가족을 한 가족같이 생각하시며

많은 도움 주심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더욱 좋은 이웃으로 남겠습니다.

어버이 날을 맞아 두서없이 몆자 적었습니다만 어르신들의 노고와 사랑에는

닿지 못할 부족한 글이었습니다.

내년에도 이 자리에서 건강하고 반갑게 만날 것을 기약하면서 이만 줄입니다.

건강하시고... 사랑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오신 모든 어르신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09년 5월 17 일

어르신들의 이웃이며 막내 며느리 같은 000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