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친 발가락 때문에 아직도 정상으로 걷기 힘들다.
어제 저녁 식사 후 약을 먹으면서 한마디 중얼거렸다.
“내가 지금까지 이렇게 착실하게 한 번도 빼지 않고 약을 먹어 본 역사가 없다.”
내 뒤에 서 있었는지 남편이 한마디 거들었다.
“빨리 밖에 나가고 싶어 급했구만. 다른데 아플 때는 약을 먹다 말고 다 버리드만.”
하여 웃음이 나왔다.
남편은 내친 김에 쌓여 있는 약봉지들을 들추어 보더니 결정타를 날렸다.
“자네 안 아픈 곳이 어딘가?”
“......?”
갑자기 물으니 내 머리 속이 멍해졌다.
‘안 아픈 데가 어딜까?’ 생각하다 웃음이 터졌다.
“하하하하. 입? 못 먹는 건 없으니까. 히히.”
내가 나를 보아도 어처구니없었다.
그래서 내가 한 달 동안 몇 가지의 약을 먹었는지 세어 보았다.
갱년기에 먹어야 된다고 해서 * 오메가 3와 * 글루코사민. * 폐경호르몬제. * 혈액순환제.
그리고 병원 처방제로 팔꿈치 * 아킬레스건치료약. 현재도 복용중.
4주 전쯤 갑자기 가슴에 통증이 와서 혹시 심장병이나 유방암이 아닌가. 의심되어 병원 진찰결과
가슴에 연골이 약간 이상이 왔다며 * 처방해준 약 이틀 먹고 괜찮아져서 남겼다.
그 며칠 후 화분 분갈이 하다 눈에 흙이 몽땅 들어가 안과 병원 진료 받고 * 안약과 처방 받은 약 이틀 먹고
괜찮아져 남겼다.
그리고 3주 전에 발가락을 다쳐 지금까지 깁스하고 * 처방약을 먹고 있다.
총 여덟 가지의 약에다 허리와 무릎에 가끔 하는 찜질팩 두 개. 이거 뭐 웃음도 안 나올 지경이다. 기가 막히다.
이제 쉰 두 살인데. 몸은 완전 종합병원이다.
지난겨울이 되면서부터 운동을 아예 멀리 한 탓도 있다.
엊그제 주말이었다.
발가락아파 시장도 꽃구경도 못 다니겠다고 짜증을 냈다.
착한 남편, 아침 재래시장에 가서 평소 내가 사던 갖가지의 야채들을 기억하고 모두 사왔다.
그것도 다 다듬어져 있는 걸로.
그리고 고철 같은 나를 차에 싣고 봄꽃을 찾아 나섰다.
아직 여기 저기 듬성듬성 피어 있는 개나리며 매화 목련 등을 차 안에서 보게 해주었다.
공원도 가고 해변도 가고 꽃이 보이는 곳마다 데려다 주었다.
그래서 오랜만에 시원한 바람을 맞이하고 꽃구경하고 나니 온 몸이 보약을 먹은 듯 가뿐해졌다.
발가락도 생각 같아서는 며칠 안에 다 나을 것 같이 통증이 안 느껴졌다.
지겨운 팔꿈치 아픈 곳도 좀 편해졌다.
역시 약 보다는 마음의 건강이 최고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안 아픈 곳은 바로 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