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에 몹시 언잖은 일이 두어가지 있었다.
말을하기가 싫었다.
그래서 입을 꽉 다물었다.
남편이 물었다.
\"당신 무슨일 있어.\"
.....
그 다음 날에 또 물었다.
\"왜 그래 말을 해야 알지.\"
.............
그렇게 사나흘이 지났다.
그래도 기분이 풀리지 않았다.
남편 마저 입을 함구했다.
그리고 또 며칠이 지났다.
이같은 봄날에 마음이 울쩍하다 못해 쓸쓸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화창한 햇살이 나를 보고 야유를 퍼붓는 듯 .....기분은 더 가라앉아 수렁으로 빠지는 느낌까지 들었다.
그런데......그런데 아주 기가 막힌일은 그렇게 시간이 지나는 동안
도대체가 내가 뭣때문에 기분이 그리 상했는지
한가지는 기억하겠는데 또 한가지는 도저히 기억이 안난다는 사실.
하루 종일 생각해 보았다.
도대채 내가 뭣때문에 그리 기분이 상했는가?
그래~ 그랬어. 한가지 기분 상했던 것은
올해 대학을 들어간 딸냄씨 때문이다.
아니 여보 때문이었다.
글쎄 나 모르게 우리 남편이 딸냄씨에게 뒷돈을 대주고 있다는 사실.
그러니 요것이 엄마에게 비밀이 생기게 마련이고 죄책감이 들었는지 자꾸만 멀리 한다는 사실.
한편으로 생각하면 남에집 딸냄씨한테 용돈을 준것도 아니고
내딸한테 아비가 용돈좀 주었기로 그리 기분 나쁠것도 없으려니마는 자꾸만 기분이 나쁘다는 사실.
그리고 또 한가지 마음이 언잖았던 일이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또 하루 낮을 생각해보았다.
도대체 뭣때문에 그리 언잖았는가.
내가 평소에 자주 삐치는 성격도 아니련만
그리고 부부싸움으로 냉전을 해본지가 언제인지 10년도 넘었는데
자주 하는것도 아닌것을 하면서 그 이유를 모르겠다는 것은 있을수가 없는 일이다.
그런데 분명히 생겨난 일을 어찌하겠는가.
나이 탓.
그래 나이 탓인가 보다.
내 나이가 벌써 이런 나이가 되었음에 서글퍼진다.
분명히 엄청나게 기분나쁜일이 생겨나서 그곳에 덧붙쳐 남편이 딸냄씨한테 뒷돈 대준것을
보태어 화가 났었는데 그 엄청나게 기분 나빴던일이 무엇인가 생각이 나지 않는다.
화~ 어떤 그녀는 참 좋겠다.
남편몰래 으슥한 공원에 차를 몰고가서 데이트를 하던중
자동차 트렁크가 활짝 열리면서 그 곳에서 그녀의 남편이 튀쳐 나왔다 했다.
와~ 그녀는 참 좋겠다.
그런 정열이 있으니 얼마나 좋으랴.
내가 짐작컨데 그녀의 남편이 자동차 트렁크에 숨어서까지 뒤를 밟을때까지는 상당한 기간과
그럴만한 의심이 갔기에 그렇게까지 하였거늘.
와~ 그녀는 참 좋겠다.
남편이 그렇게 숨죽이며 뒤를 밟아도 모를만큼의 열정으로 데이트를 했을테니까
와 ~ 그녀는 참 좋겠다.
나는 그녀와 나이가 그렇게 차이 나는 것도 아니건만 그런 정열은 고사하고
피가 끓을만큼 부아가 났던일 까지도 아리송하게 되었으니 비참.
비참 비참 또 비참.
이러다가 내일 아침에는 내가 화가 났다는 사실까지 잃어버리는것 아닌지.
헤헤헤.....맨날 나사빠진 여시처럼 실속없이 깔깔대니 우리 남편이 나를 우숩게 볼수밖에.
그러나 오늘밤에 벽에다 써 붙여 놓으리다.
\"나 몹시 화가 났다. 절대 풀지 않을 것이다.\"
\"웃지 않을 것이다.\"
\"말도 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