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다지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다.
정신적으로는 완벽주의를 추구하나 육체적인 노력은 별개로 움직이는 경향이 농후해
살림도 적당히 대충하는 편이고, 게다가 음식은 거의 외식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화장이며 머리 손질은 늘 완벽하게 치장해야하는, 일종의 결벽증이 있었다.
화장 안 한 얼굴로 집밖에 나가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머리는 학교 다닐 때부터 이미 미장원 다녀 왔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드라이를 잘했다.
남편은 외모를 열심히 가꾸는 나와, 세수도 안 한 얼굴로 상관 없이 돌아다니는 내 여동생을 보고
어떻게 자매가 이리 다를 수 있느냐며 신기해하곤 했다.
그랬던 내가 지난 가을, 파산에 앞서 통장 정리며 동사무소 일이며 정신 없이 뛰어 다닐때
화장은 커녕 세수도 안 하고 머리도 안 감은 상태로 나다니곤 했다.
내가 이럴 수도 있구나,
이런 모습으로 세상 밖을 나다니기도 하는구나,
나 자신의 변화에 가슴이 먹먹해지며 그것이 또다른 설움이 되어 쌓였었다.
이제는 세수도 안 하고 지내는 날들이 허다하다.
자기 전에 한번하는 것이 전부인 날이 대부분이고
미장원 간 것은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머리에도 무감각하다.
이런 상태이니 친구들을 만나는 일은 거의 없었고 간간히 전화 통화가 전부였다.
그러나 더 이상은 미루지 말자는 오랜 친구의 성화에 오늘은 오랫만에 외출을 하였다.
이미 전화상으로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친구들이었지만
역시 내 얘기가 화제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고
나로서는 아픈 상처가 다시 표면화 되는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봐왔던 친구들이다.
30년이 넘는 세월동안 서로의 많은 부분을 공유했던 친구들.
서로가 지닌 상처도 알고 있고, 서로의 장점이며 한계 역시 낱낱히 알고 있는 우리.
젊은 한 시절에는 자존심 겨루기도 없지 않았고
각자의 개성과 자의식의 과잉 때문에 삐끄덕 거렸던 순간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국화꽃 같은 우리.
가릴 것도 없고, 부끄러울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아픔을 잘 덮어둔 채 평상심을 유지하는 게 미덕이라 생각했던 시절,
모든 부분에 감성보다는 이성이 앞서야한다고 믿었던 젊은 날의 나는
친구들에게 한번도 힘들다거나 괴롭다는 말을 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오십이 다 된 국화꽃은 괴롭다고, 두렵다고, 너무 너무 힘들다고 나를 내놓았다.
처참하게 무너진 나를 그대로 다 보여 주었다......
집으로 돌아오는데 친구가 문자를 보냈다.
걱정 많이 했는데 평온해 보여 다행이라고, 놀랄 정도로 안정적이었다고.....
내 마음은 이렇게 지옥인데 평온해 보인다니 어리둥절할 지경이다.
워낙 상황이 어마어마하니까 펑펑 울 줄 알았다가 그러지 않아서 그런가.....
상처를 내 보이는 것,
아프다고 말하고 그것을 끄집어 내는 것,
그것이 치유의 시작이라고 한다.
젊은 시절 미리 알았으면 좋았을 그 얘기를 나이가 많이 들어서야 알게 되었다.
그래서 요즘은 나를 많이 내 보인다.
나는 지금 치료 받고 위로 받아야 할 단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친구들의 위로가 고맙고, 격려가 힘이 되고, 그래서 절망적인 마음을 희망 모드로 바꾸려고 노력하는데...
이렇게 복잡한 마음의 정체는 무엇일까.
후회도 아닌 것이, 자존심의 손상으로 인한 자괴감도 아닌,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나를 침체 시킨다.....
이런 마음 상태가 너무 싫다.....
미로 속에 갇혀 있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