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도시를 탈출했다.
뒤에서 성난 파도로 덮칠 것 같은 위협을 느끼며
서둘러서 여유시간도 반납한 체
끼룩대는 갈매들의 한가한 손짓도 거부하고
간간히 들려오던 뱃고동 소리도
내 팽개치고 진눈깨비 오던 길을 되짚어 돌아오고야 말았다.
하얀빌딩도 우릴 삼킬 듯 했다.
붕붕대며 앞으로만 내달리던 자동차들의 무리들도
아차하면 우릴 낯선 곳으로 데려라도 갈 듯
거친 숨을 헐떡이며 스치며 지나갔다.
가자.
우리의 청정구역으로.
떠나자 서둘러서.
상처와 눈물과 피뿌림만이 기억되는
이 회색도시를 떠나는 거다.
허기진 배를 단돈 4500원의
자갈치 뒷골목 밥집에서 채우곤
비린내 질퍽대던 그 시장바닥을 거슬러
주차타워에서 내려다 본 부산 앞바다.
호객행위를 하는 쉰 목청의 자갈치아지매
우산 아래 행인들의 얼굴을 손님인가? 행인인가?
찍기에 바쁜 꼼장어집 문신아지매
이미 대가리는 잘려지고 온 몸의 껍질이
다 벗겨진 피투성이 알 몸으로
생명선은 끊어진 꼼장어
마지막 신경이 본능적으로 꿈틀대며
고통의 한계를 넘어선 몸부림
토해 낸 진액은 끈적끈적한 피복이 되었고
대가리 없는 길다란 ~몸뚱아리는 새로운 생명
죽음이 깃든 시한부 최후의 발악.
수입생선은 땅바닥에 패대기 쳐 두고
만원이요~`한지게가 만원이요~`
누구를 향한 외침인지 모두가 돌아본다.
빗방울인지..땀방울인지....
삶의 현장이 아니라 전투장인게지 사생결단.
고동은 주인의 허락없이 그릇을 넘어 도망 나가고
문어란 놈도 눈치만 보다가 바다로..바다로
내 고향 바다로 나 떠나련다.
나 돌아가리라.....
흐물텅한 다리로 얕게만 기어서 도망가지만
어딜~~이 놈이 이리 왔~~!!
신기에 가깝게 빨리 달아나도 역부족.
냉큼 잡아 넣는 검은 얼굴빛의 탁한 목소리.
남편의 피를 뽑히고 허겁지겁 찾아 든 자갈치마당.
남포동 아구찜은 오늘은 쉬자.
뒷골목 연탄불 위에서 굽힌
국산조기로 된장뚝배기가 먹고싶다.
전통한정식 큰집도 오늘은 가지말자.
그냥 사람냄새 찐하게 나고
생선 굽는 냄새가 그리운 뒷골목에 가자.
숭늉도 푸짐하고 푸성귀도 푸짐한
겉절이까지도 풍성한 뒷골목으로 가자.
그 곳에서 생명력을 얻고 또 일어서자.
거친 바다의 냄새도 비릿한 사람 냄새도
남편의 추억이요 고향인 것을.
식탁은 다섯개.
손님은 비를 맞고도 기다려준다.
단돈 4500의 포만감을 기다리며.
연탄불 위의 조기는 벌써 눈알이 익었네.
손님 상에 내 갈 반찬들이 줄을 서 있고
물수건은 난로 위에서 나갈 채비를 한다.
뜨겁게 온 몸으로 정성을 품고.
무슨 약으로 표백했는지 새 하얗다 못해 눈이 부시다.
날 더럽히고 그대만 깨끗해진다면...
그렇게 비오는 자갈치에서
우리는 탈출을 했고 아무도 안 잡더라.
좀 잡아주지...
그랬다면 지갑을 풀었을건데...
좋은 일로만 오고 싶다.
이 도시에는.
우리의 낭만이 있고 사랑이 피어난 도신데
이젠 아픔을 씻어내는 일로만 온다.
아니..아픔을 확인하러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