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적정 노인 기준 연령 높이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1,363

17년만에 외출.


BY 솔바람소리 2009-02-09

빠듯한 살림에 가족들만 챙기며 살다가 서울 촌녀가 되어버린 나.

총명과 멀어지는 머리가 흔한 영화관의 표 값조차 반찬값에 비유하는

산수만은 인이 베긴 듯 녹슬지 않고 뇌리 속을 차지하고 있다.

 

큰 아이 저학년 때 학교에서 임원활동을 하며 어울리던 엄마들과

세월 좋게 어울려 다닌 적이 있었지만 보통 아이들이 집에 없던

낮 동안만을 활용했다.

나이트클럽을 가자며 들떠서 떠들어대던 여자들은 퇴근할 남편에게

아이들을 벌써 부탁했다며 흥이 나서 떠들어댔지만 내겐 열흘 삶은

호박에 이도 안 들어갈 얘기였다. 아니 꿈엔들 등장할 수 없는 소재였다.

주부가 늦은 밤 어린아이들을 떨쳐놓고 나이트를 간다는 것은 나조차도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녀들의 자유만은 부러웠다.

부인을 배려해주는 남편들과 살아가는 그녀들의 복이 부러웠다.

내게도 그런 날이 오게 될까 감히 꿈도 꿀 수 없는 자유였다.

불만으로 품었던 마음일 때는 싸웠지만 기대감을 낮추고 낮추다 보니

어느새 남편에게 향했던 희망과 기대감이 자취조차 감추었다.

 

난 아이들에게 묶여 사는 인생이다.

아이들은 내가 없으면 안되는 가엾은 존재들이다.

남들과 비교하지 말자.

지난 내 삶과도 비교하지 말자.

차라리 생각조차 하지 말자.

 

나를 개조시키기 위해 많은 시간이 필요했고 아픔까지 동반된 어제까지의

과거였고 아직도 진행 중인 현재의 마음이다.

아직도 내겐 개조돼야 할 것들이 비일비재함을 안다. 그리고 면역성을 키워야

할 시련들이 첩첩상중 놓여있을 것이다.

성숙되어가는 나인지 열정과 정열이 시들어버린 포기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나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알고 싶지도 않다.

 

버리면 채워지는 것이 있다던 누군가의 말씀처럼 흘러 온 지난날을

거슬러 비교해보면 쇠퇴한 것만 있는 것은 아닌 듯도 싶다.

평생 악연으로 바라볼 것 같던 부모님이 사위를 바라보는 마음이 한결

부드러워졌고 남편 역시 처부모님 대하는 마음이 살가워졌다.

감사한 일이다.

 

설 연휴가 끝난 이틀 후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문자메시지가 떴다.

이벤트에 당첨됐다는 기쁜 소식이었다.

어쩌다 한번 아줌마 닷컴의 이벤트 코너를 방문하는데 우연찮게

강 부자씨가 연기한다는 <친정엄마와 2박3일> 연극을 알게 되었고 엄마와

보면 좋겠다는 생각에 글 몇 자 남겼는데 감사하게도 당첨됐다니

바로 엄마에게 연락을 드렸다. 하지만 집안에 행사가 많았던 탓에 직장을

부득이하게 빠진 날이 많았다며 눈치가 보여서 더는 빠질 수가 없다고

미안하다셨다.

 

평일 날 밤 8시에 동대입구 이혜랑 예술극장에서 공연이 이뤄진다니

나도 고민을 해야 했다.

찜질방조차 아이들 없이 혼자 간다는 것을 걸고 넘어가는 남편과

해결점을 찾을 수 있을까... 싸우기 싫어서 될 수 있으면 고민되는

것들은 내 쪽에서 알아서 포기했던 것들이 많았다. 하지만 놓치기

싫은 연극이었다. 2월4일 일주일가량 남은 공연관람이 졸지에 어려운

과제로 내게 주어졌다.

아이들에게 허락을 먼저 구하니 흔쾌히 다녀오란다.

남편에게 운을 떼보니 장모님이 안 오신다는데 뭐 하러 가냔다.

짐작했던 반응에 덤덤히, 하지만 친구와 다녀오겠다고 결의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갈 사람이 그렇게 없어서 늦은 시간에 친구랑 가냔다. 그것이 걱정이라면

함께 가서 보자고 했더니 이번엔 묵묵부답이다.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다고 말했다. 아이들에게도 미리 말해놓은 상태라고

했다. 그 말에 닫았던 입을 남편이 열었다.

 

“당신이 언제부터 연극을 봤다고 그래? 영화는 좋아했지만.”

 

“내가 영화를 좋아했던 것은 기억해? 그런 내가 당신이랑 살면서

영화관을 몇 번이나 갔어? 그리고 당신 만나기 전에 친구들이랑

연극을 보러 다니기도 했었어. 내가 늦은 시간에 혼자서 어딘가를

가겠다고 했던 적이 없던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평소와 다르게

내가 고집을 부리면 양보란 것 좀 해줘. 이렇게 구차하게 말하는 것이

날 비참하게 하니까.“

 

내 말에 다시 묵비권을 행사했던 남편의 반응에도 가야겠다는 마음이

굽혀들지 않았다. 나처럼 서울촌녀 되어 살아가는 친구에게 함께

가자고 하니 오히려 “괜찮겠니?”라며 걱정했다.

내가 살아 온 환경을 누구보다 잘 아는 친구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연극을 보는 당일 날까지 아이들에게 며칠 집을 비우는 사람처럼

당부사항들을 세뇌하듯 되풀이했다.

 

싸우지 마라, 해놓을 것들을 알아서 챙겨라, 밥 챙겨 먹어라,

엄마에게 연락할 것이 있다면 문자로 남겨라, 다음 날 학교 갈 것을

생각해서 엄마가 오기 전에 자고 있었으면 좋겠다, 혹여 아빠가

술에 취해 들어와서 힘들게 하더라도 동요하지 말아라...

 

걱정을 악세사리처럼 안고 살아가는 내가 안쓰러운지 아이들이 아무걱정하지 말고

재미나게 보고 오라고 했다. 30분 전에 도착하라는 주체 측의 안내문구가

있었고 초행길을 감안해서 6시쯤 집에서 나갈 참이었다.

 

며칠 일을 나가지 않던 남편이 아침9시를 넘겨서 나갈 때 오랜만에

아이들을 챙겨달라는 부탁을 했고 오후 5시쯤 연락을 했다.

그리고 벌써 술에 취해서 혀가 말린 목소리를 들어야 했다. 화가 치솟았다.

내 삶 자체를 송두리째 방해하려 작정한 듯 살아온 남편에게 전화상으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어쩜 그러니! 내가 이날을 위해서 일주일을 부탁했었잖아!

날 이렇게 비참하게 만들고 싶어?! 벌써 술에 취해있으면 어쩌려고!

애들 힘들게 볶아대려고 작정했니? 아니면 날 못 가게 할 방법이

그거였어?!“

 

“아냐... 술 안 먹었어.”

 

말린 혀로 남편이 또박또박 발음하려고 애쓰는 듯 했지만 통하기엔

역부족인 알콜 도수였을 것이다.

전화를 끊고 넋이 빠져 앉아있는데 아빈이가 평소보다 일찍 학원에서

귀가했다. 눈치 빠른 녀석이 제 방에 가방 놓기가 무섭게 내게 다가왔다.

 

“왜요, 엄마. 가실 준비 다하셨어요?”

 

“안 가야 할까보다. 아빠가 벌써 술에 취했네.”

 

“...휴우... 엄마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세요. 그럴 줄 알고 제가

오늘은 일찍 왔어요. 아영이 늦게 온다고 하면 엄마 대신 데려오려구요.

전 아빠 술 취한 것이 걱정 안돼요. 엄마가 오랜만에 바람을 쐴 수 있는

기회인데 이런 것 때문에 못 가신다면 말이 안 되지요.“

 

깊은 한숨을 쉬던 녀석이 날 위로했다. 중3이 되는 부담감으로 부쩍

고민이 많아진 녀석이 오히려...

 

그래... 가자... 모처럼 생긴 기회를 놓쳐 버릴 수 없어. 나도 숨 좀 쉬자...

 

아들의 말에 힘을 입고 마음을 굳혔을 때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친구가 데려다 준다고 했단다. 두어 번 잠깐 봤던 사람에게 마누라를

태워 보내려고 한다니 결코 감사할 수 없는 마음이었지만 술에 취한

그의 고집과 실랑이 벌이며 진을 뺄 수 없어서 맘대로 하라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남편 친구의 자가용 뒷 자석에 함께 연극을 보기로 했던

친구와 탈 수 있었다. 퇴근시간에 맞물린 시간대, 당연히 심한 정체 속에

있어야 했다.

 

운전사를 자처해준 남편의 친구와 의미 없는 말들을 주고받으며 차 창밖의

야경을 바라보았다. 지리에 약한 난 서울에 살면서도 지나치는 한강 위에

다리가 어떤 다리인지도 모른 채 별천지처럼 불을 밝힌 멋스런 풍경에

오버스럽게 감탄사를 남발했다. 멋있다.... 이쁘다... 그치?...

그런 속은 슬펐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그리고 다시 한때

잘나가던 때와 비교하려는 마음을 떨쳐버려야 했다. 떠나기 전에 보지

못했던 딸에게 전화가 와서 통화했는데도 그새 확인하지 못한 부재전화가

딸 번호로 찍혀있었다. 무시했다. 잠시 잊자... 하며...

 

1시간 일찍 도착한 시간에 친구와 눈에 띄는 식당에서 배를 채우고

공연장으로 향했다. 문자가 벌써 두 개가 와있었다. 역시 딸이었다.

어쩔 수 없이 전화번호를 눌렀다. 남편에게 아이들이 시달리고 있나,

떨쳐버릴 수 없는 걱정을 안고서...

다행이 딸의 목소리가 밝았다. 잘보고 오시라는 말씀을 꼭 나누고 싶었단다.

아빠는 잠이 들었고 오빠와 자기는 엄마가 만들어 놓은 반찬과 밥을

맛있게 먹고 설거지까지 깨끗이 끝냈다면 기특한 목소리로 말해주었다.

평일인데도 공연장에는 빈자리가 없었다.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은 많았다.

그 마음도 다시 떨쳐버렸다.

 

배우들의 집중을 위해서 핸드폰을 꺼달라는 안내방송에 따르는데

어째 마음이 불안해졌다. 연락되지 않으면 안달하고 말 남편을 알기에...

기대를 하며 갔던 연극에 아쉽게도 강 부자씨가 나오지 않았다.

실컷 눈물을 빼고 오겠다고 각오했던 마음이었는데 배우들의 열연에도

내 마음이 감응되질 않았다. 앞뒤와 양옆에서 코를 훌쩍이는데도 불구하고

멀쩡히 앉아있는 것은 나와 친구뿐이었다. 연극이 끝나기가 무섭게

꺼놓았던 핸드폰의 전원을 켜고 보니 벌써 부재중이 찍혀있었다.

 

“야! 우리 너무 메마른 인간들 아니냐? 다들 울고 있는데 나와 너만

얼굴이 너무 건조하잖아.“

 

내 말에 친구가 말했다.

 

“난 연극 보면서 네 글보다 못하다는 생각을 했어.”

 

나를 추켜세워 주는 친구의 말에 잠깐 통쾌하게 웃으니 “왜? 진짠데.”

하던 친구도 함께 따라 웃었다.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어디냔다. 끝나서 가고 있다니 빨리 오란다.

가고 있다는 사람에게 빨리 오라니 지하철 안에서 뛰어야 할 판이었다.

곁에 있던 친구가 나를 보고 말하길 좋겠단다. 남편의 사랑이 넘쳐서.

자신은 어쩜 어떤 인간 전화해주는 사람이 없냐며 투덜거렸다.

난 오히려 네가 부럽다, 지하철을 나눠 타기 전까지 아쉬운 남는

마음을 나눴다.

 

40분가량 타고 달리는 지하철 안에 밤 11시가 가까운 시간에 많은

인파들이 있다는 것조차 놀라운 촌녀로 있던 나는 그동안에도

남편에게 2번의 전화를 더 받아야 했다.

그리고 잠잠히 있어주던 아들의 전화도 받았다.

 

“엄마, 피곤하시죠? 도착하기 몇 분전에 연락주세요. 제가 모시러

갈게요.“

 

“왜 여적 안자고 있어. 어서 자. 엄마가 애냐? 데리러 오게?”

 

“숙제는 좀 전에 끝냈어요. 엄마랑 잠깐이라도 데이트하려고

기다리고 있었어요.“

 

고집스럽게 지하철 개찰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들의 손을 잡고 지하철

계단을 벗어날 때 아들이 연극은 어땠냐고 물어주었다. 현장체험을 다녀 온

저에게 내가 물었던 것처럼.

 

내가 인내하며 살아 온 지난날이 헛되지만은 않은 듯하다.

요즘 아이들과는 아직까지 사뭇 다르게 커주고 있는 분신인

내 아이들이 있기에... 17년 만에 힘겹게 나섰던 외출 때보다

더 커다란 감동을 늘 품에 안고 살았던 아들에게 받으며 술에 덜 깬

상태에서 과하게 반겨주는 남편의 마음도 받아 넘길 수 있었다.

 

내 리얼리티 삶이 무료하지 않아서 좋다고 받아들이고 싶다.

하지만, 바램과 달리 노동을 하지 않은 몸과 마음이 노동판에서

벽돌을 지고 고층을 오르내린 것처럼 지친 듯 느껴지는 것을

난 어쩔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