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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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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선물


BY 그대향기 2009-01-21

 

음력으로 성탄절.

억울하게도 닷새만에 한살을 더 먹은 나는 서운한 나이라 했다.

엄마는 소띠인 내가 다 저녁에 태어났으니 평생을 편하게도 살거라 하셨다.

일하는 낮 시간이 아닌 저녁 시간에 태어났으니 팔자가 늘어지게

잘 살거고 식복도 타고 났다고도 하셨다.

그래서 그런가?

일복은 엄마 말씀이 틀렸고  아니네... 일하는 복은 있네.

식복은 무진장 있다.

크흐....

많아도 무지하게 많다.

위로 오빠들만 내리 일곱을 낳으시는 동안 단 한명의 여아를 생산치 않으셨던

엄마가 끝으로 날 낳으시고 아버지는 하루 종일 막걸리 파티를 하셨다고....

우리 나이 땐 아들이 귀했는데 딸을 낳고도 하루 종일 막걸리를 내셨다니.

난 그렇게 축복받으며 태어났었다.

정확하게 마흔 여덟해 전에....!!

우리 나이로는 마흔 아홉.

 

뭘 하면서 지냈는지는 가물가물하지만

지금이 참 편하다는거.

힘들었고 고달팠던 지난 기억들은 애써 지우지 않았지만

어느 날부턴가 그런 기억들이 내 삶을 풍요롭게 변모시키는

중요한 활력소들로 변하여 아련한 추억들이 되어서 그립기까지하다.

다시 도돌이표가 되어 그 시절로 되돌아가라면

기분 좋게 되돌아갈지는 의문이지만 아마도 나이 빼고는

다~`아니올시다?? 가 아닐런지.ㅎㅎㅎㅎ

간혹 슬픔보다 더 아픈 기억들도 있기에

좋았던 기억들과 행복했던 순간들을 싸잡아 뭉텅거려서

모두가 지난 추억이라 여겨주고 싶다.

몸은 좀 바쁘고 고되어도 마음은 지금이 세상 누구보다도

편안하고 희망들로 꽉 차 있다.

모자라고 부족한 것도 많지만  뭐 곧 채워지겠지~~하면서

좀 느긋함을 가장하며 애써 태연을 온 몸으로 발산한다.

없는 사실에 좌절하거나 낙심하기 보다는 있는 것에 흥분하고

더 가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고서...

 

그젯밤.

고등학교 기숙사에 가 있던 막내가 일부러 나왔다.

엄마아빠생일을 챙겨 드리고 들어 가겠다며.

손에는 작은 케잌 상자도 들려 있고 무언가가 들어 있는 봉투도.

엄마아빠의 생일이 하루 차이라 참 편리하다.

순간적인 지출이야 좀 있겠지만 ...ㅎㅎㅎ

차탁 위에 생크림케잌을 올려두고 거실 등을 끄고 초를 꽂는데 오잉???

웬 초가 10 개냐고?

아들이 하는 말...\"반올림하면 50세 이시잖아요~~!!\"

초 하나에 다섯살 씩..그래서 열개란다 글쎄.

으이구...

너 엄마 아들 맞아?

반올림하면 쉰이라고?

한살을 더 잡수면 쉰이라 맘이 영~`아닌데 네가 정녕코 엄마를 기 죽일래?

남편이랑 한바탕 웃고 막내랑 촛불만 켜 둔 거실에서

축가도 부르고 폭죽도 터뜨리고 입을 모아 후..욱...촛불도 끈 다음.

드디어 선물 공개시간~~

짜자잔...

아들은 엄마와 아빠를 향해 축하드린단 인사를 하고

쑥스럽게 책 두권을 내 민다.

엄마의 침대 머리맡에, 책상에 늘 몇권의 책들이 있어서

큰 고민없이 책을 골랐노라고...

시집에 시디가 같이 있는 고운 책을 받고 가슴이 뭉클.

그냥 안 보는 척 하면서 엄마의 생활을 눈여겨 봐 뒀던 아들.

많이는 못 읽어도 밤에 잠들기 전에

단 몇장씩이라도 책장을 넘기다가 잠이 들곤 하는 엄마를 보며

책선물로 마음을 정했다는 아들이 고맙다.

전에 부산에서 \"내가 만든 꽃다발\" 이라는 시집과 시낭송 시디를 사서

잠들기 전에 오디오를 통해서 잔잔하게 들으며 잠을 청하는 엄마의

침대에 하루 일과를 일러바치고 여자친구 이야기를 하러 왔던 아들이

그런 시낭소이 참 좋게 들리더란다.

전문성우들도 있고 시인들이 직접 육성으로 자신의 자작시를

낭송하는 조용한 음악이 배경에 깔리는......

기숙사 사감선생님한테 부모님의 생일을 축하 해 드리기 위해

집에 다녀 와야 겠다고 이야기했다는 막내의 정성에

내 가슴에 울림이 강하게 왔다.

남자애라 그냥 휙..지나갈 줄 알았었는데

두 누나들이 없는 집에 막내라도 있어야 겠다는 생각에

학원엘 갔다가 늦은 시각인 밤 11시가 다 되어서 돌아 온 막내.

누나들이 있었다면 생일 이벤트를 했을거란 막내.

밤에는 가능하면 간식을 안먹는 나지만 아들이 사 온 생크림케잌인데...

셋이서 작은 케잌을 다 먹었다.....ㅎㅎㅎ

그 한밤중에.

 

그런데 남편이 아무런 반응이 없다.

\"뭘 안 줘요?\"

\"필요한 거 말 해...내일이 생일니니까 내일 주지 뭘...ㅎㅎㅎ\"

그러던 남편은 그냥 서재로 휭~`들어가 버린다.

섭섭하고 ...서운하고...야속하고...

불꺼진 초의 시들은 몸보다 더 형편없어지려는 내 마음 마음....

별나게 세수를 하고 자는데도 영~`서운.

닫힌 서재의 문으로 눈길은 자꾸 가고.

진짜 아무것도 없을까?

호~옥~시~몸으로 때울려나??

설마..

여러번 나한테 뭘 해 줄까를 물었어도 난 아무런 대답을 못했다.

여러가지로 힘든 시기에 해마다 돌아오는 생일에 뭘....

난 말로 그랬었다.

이번 생일 선물은 건강을 달라고.

그 어떤 선물보다도 우리 부부가 건강해야 애들이 편안하게

공부도 하고 결혼생활도 잘 한다고.

내가 가장 믿을 사람인 남편의 건강이 최고의 선물이라며

건강만 해달라고 그랬었다.

말이 그렇다는거지 어디 뜻이 그런가????

그래도 뭔가가 없으니 썰렁하고 섭섭한게 많이 야속하다....ㅋㅋㅋ

이 이중적이고 간사한 여자의 맘이라니...

 

섭섭한 맘을 겨우 달래고 그 넓은 옥돌침대에서 나 혼자  먼저 들어 가 잠을 청하는데.

아마 곧 뭔가를 포장한 멋진 선물을 들고 분위기 있게 들어 올거야.

멋진은 아니더라도 작고 앙증맞은 뭔가는 하나 주겠지.

하다못해 맨날 물에 손 담그고 사는 아내에게 핸드크림이라도 하나...

날 놀래켜 주려고 일부러 쇼~를 하는 걸 거야.

말은 내가 건강만 달라고 했지만 여자들이 어디 그래?

다 내숭이지.

현물이 오고가는 곳에 사랑도 꽃 피는거지...

아...

거물럭거물럭...

억지로 눈꺼풀을 들어 올리며 잠을 쫓으며 기다려도 이 남자~~~안 온다.

분위기 있게 한지로 싼 취침등도 밝히고 유혹스런 (?) 샤워코롱도 흠뻑~`뿌렸구만.

침대랑 이불이며 온 몸에도 여기~~저기~`칙칙..치이익~~~

행여나...이제나 저제나.....

거실 등이 꺼지는 스위치 소리에 온 신경이 다 가 있고

남편이 안방으로 들어오는 발자욱 소리에 귀가 당나귀처럼 커진다.

그러다가 부스럭 ..작은 소리라도 들리면 아~`지금 오는구나.

그럼 그렇지.

오호라..이제사 들어오는구만.

뭘 그리 뜸을 들이실까 그래???

우리가 남이가? 남이유???ㅎㅎㅎ

그러고도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기다리고 또 기다려도 감감~~무소식.

그러기를 몇번.

난 그만 잠이란 놈에게  당하고 말았다.

기다림을 더 즐기지 못하고서....

기다리다 지친 나는 언제인지도 모르게 깊이 잠들고 말았다.

 

새벽에 일어나 보니 남편은 거실 쇼파에서 리모컨을 잡은 모습으로

잠 들어 있었고 화면에선 바둑을 두는 기사들이 지칠줄도 모르고 바둑을 두고 있었다.

급 삐짐삐짐....ㅎㅎㅎㅎ

밤 늦게까지 서재에서 서류정리를 하다가 잠깐 쉬러 나왔다가는 그대로..zzzzzzz

이불도 없이 .....

내 겉옷을 덮어주고 안방의 화장대를 지나치는데 앗~~!!

어제는 안 보이던 하얀 봉투가~~

있다 있어~~.

내 책상  노트북 위에 흰 봉투 하나.

그런데도 금방 열고 싶지가 않았다.

그냥 봉투의 존재유무만 확인하고

새벽기도를  가기 위해 세수와 양치질을 하고  나갔다.

봉투가 내 뒤를 따라오는 듯 해도, 날 잡아 끌어도.....

그 기분을 더 연장하고 싶어서....팽팽한 긴장감과 궁금증의 증폭.

뭘까?

무슨 선물이지?

오고가는 발걸음이 온통 그 봉투에 가 있었으니.....

생각이 흩어지고 마음은 기대감에 잔뜩 부풀어 있었다.

다녀와서 천천히... 최대한 천천히...봉투를 열었다.

봉투를 열기 전에 이미 두툼한 손감각이 느껴졌다.

남편의 편지가 들어있고 빳빳한 현금도 같이 보인다.

지금처럼만  오래 살아 달라는 남편의 친필.

내가 깊이 잠든 새벽 4시에 그 편지를 적었노라고....

곤히 자는 아내의 얼굴을 조용히 바라보다가

안스러움에 눈시울이 적셔지더라는....

물론 이메일이나  쪽지로 축하 글을 줄 수 있지만 해마다 우린 친필로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에는 편지를 주고 받는다.

일년에 두번.

결혼기념일과 생일.

애들한테는 며칠 전 부터 은근슬쩍...그러나 정확하게 날짜를 각인시킨다.

정보를 흘리면서..잊지않았겠지?...ㅎㅎㅎ

큰 선물이 중요한게 아니라 부모님들의 기념일을 잊지 않아야 한다는,

일년에 딱 두번이라도 부모님들을 잊지말라는 세뇌교육을 시키는 셈이다.

아직은 다들 잘 기억하고 있다.

억지로라도 알게하니 잊을래야 잊을 수 없지.ㅋㅋㅋ

남편은 그러지 말라고...부담을 주는 일이라는데

자식들이 일년에 딱 이틀도 기억 못하면 부모 자식간에 너무 소원하지 않을까?

고맙단 말과 감사하게 생각한다는 말로 편지를 끝냈다.

수많은 파지를 만들면서 한시간을 매달려도 온통 미안함만 가득해서

무슨 말로 위로를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는 남편.

남편의 인생에서 나를 만난 것이 가장 큰 행복이었노라며

다른 어떤 말로 다 축하해 주어도 모자란다는 말로 나를 감동시킨 남편.

부족한 사람 만나서 고생만 시켜 미안하다고....

동봉한 돈으로 가족을 위한 것은 아무 것도 하지말고 나만을 위한 것에

사용하란 남편은 내가 그 돈을 어디에다 쓸 것인를 너무 잘 알 것이다.

그러기에 다른 곳에는 쓰지 말라고 거듭 강조를 했다.

과연??....ㅎㅎㅎㅎ

 

멀리 과테말라에 가 있는 큰 딸한테서 국제전화로 축하를 받았다.

사위의 목소리도 듣고.

요즘 새 일을 하는데 재미있고 열심히 한다는 딸.

엄마아빠의 성실한 모습들이 살아가면서 큰 도움이 된다니....

고생스럽더라도 조금만 참아주시란다.

자기네들이 곧 자리 잡으면 도움을 줄거라나?

니들이 잘 살아 주는게 엄마아빠한테 효도하는거라며 같이 크게 웃었다.

둘째도 서울에서 전화가 오고.

둘이 국내에 있었더라면 거실 벽이며 식탁에

뭔가를 잔뜩 오려 붙히고 풍선불고..남들하는 소름 돋는 일은 다 하고

카드도 만들고 어설픈 솜씨로 휘슬도 불었을 것이고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삼남매가 노래도 불러줬을 것을.

이젠 다들 장성해서 국내도 아니고 국외까지 흩어지다 보니 아~~옛날이여~~

일을 해 보니 엄마아빠의 수고로움이 절실히 느껴진다네.

아프지만 말고 열심히 하란 당부를 하고 계획에 차질이 없도록

스스로한테 채찍질을 하라고 일러주는걸 잊지 않았다.

힘들게 돈을 벌어봐야 돈의 소중함도 알고 아껴쓰며 노동의 신선함도 알리라.

고생이 꼭 나쁜 것 만은 아니리라.

 

낮에 흑장미 마흔 여덟 송이가 배달되어 왔다.

꽃바구니가 아니라 꽃박스.

고혹적인 흑장이에 이슬처럼 물방울이 뿌려져 있고

꽃박스를 여는 순간 진동하던 장미향~~`

금가루가 솔~솔~뿌려진 마흔 여덟 송이의 흑장미박스.

꽃대를 길~게 처리해서 우아하고 아름답기 그지없는

꽃박스를 할머니들도 구경하시며 부러워하셨다.

길다랗고 분홍의  멋진 박스에 리본장식을 해 놓았고

구슬도 방울방울 하트모양으로 박아뒀고

할머니들은 일생에 한번도 받아보지 못하셨을 흑장미꽃 선물.

참 좋은 친구가 다 있다면서 부러워하셨다.

꽃을 선물해 준 그녀는 내가 세상에 태어나 줘서 감사하단다.

남자처럼 씩씩하게 잘 살아줘서 고맙단다.

저 사는 모습이나 나 사는 모습이 너무나 닮아있다고.

그래서 내 글이 올라오면 눈물도...웃음도 더 많다는....

그래.

고맙다.

지금처럼 씩씩하고 건강하게 잘 살아줄께~~ㅎㅎ

할머니들은 아까워서 어쩌누......이러신다.

정말 아까워서 어쩔까???

얼음장미를 만들어 둘까?

 

같이 사는 할머니 한분은 일부러 읍엘 가셔서 반건시 곶감을 사 오셨다.

오래 전에 내가 곶감을 무지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지나가는 말로 했었는데

그 말을 귀담아 들으셨다가 하루에 두번씩 왕복하는 시골버스를 타고

읍내에 가셔서 꼭지를 위로 해서 말랑말랑하게 말려 놓은 곶감을 사 오셨다.

카드에 직접 적으신 글에는 보살펴 줘서 감사하다시며.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을 할 뿐인데도 고마움을 느끼신다.

또 한분은 찹쌀을 한되 사 주시면서 부부가 찰밥해서 오손도손 먹으라니..참.

늘 같이 식사를 하시면서 언제요??ㅋㅋㅋㅋ

손수 만든 곶감을 네개 주시는 할머니.

신랑각시가 두개씩 나눠 먹으란다.

아...참.

낮에 서울사신다는 학교선배님한테서 온 옷선물.

선배언니가 부쳐주신 옷도 오늘 도착했으니 멋진 생일선물이지?

그 선배님 난 아직 기억 못하고 얼굴도 잘 모르는데....

감사합니다.

선배님 잘 입고 좀 헐렁하지만서두  옷에 맞춰 몸을 불려야겠습니다.

좀 많이요...ㅋㅋㅋㅋ

 

해마다 돌아오는 생일이지만 올해도 크고 작은 감동들로 가슴 벅차게 맞이했다.

할머니들의 간절한 기도와 축하 속에서

또 한 살을 더 먹고 근무년수도 한해 더 늘었지만

늘 지금의 마음가짐으로 서 있는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기쁨으로 살아가다보면 애들도 제 몫들을 잘 할거고

우리도 서서히 중년의 틀이 점잖게(?) 잡히면서

아름다운 사람의 향기가 나도록 가다듬어지겠지.

노력하며 살아가고 때로는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일들로

세상사가 돌아가더라도 초월하는 지혜가 생기길 희망한다.

세상 그 어떤 값비싼 생일선물보다도 남편의 건강과

세 아이들의 건강이 가장 큰 선물임을 알기에

오늘도 가족을 지켜주시고 나아갈 길을 열어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하루가 되길 소원한다.

 

2009년 마흔 아홉의 생일을 보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