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의 방은 알리바마의 동굴이다.
갖가지 보물이 많이 널려 있다.
오빠의 가방, 서랍, 책장 등등.
문이 열려 있어 열려라 참깨 주문은 필요 없지만 들키면 죽음이란 점은 동굴과 같다.
하지만, 오빠의 물건을 훔치는 도둑은 아니다.
그러나 몰래보기도 분명 훔치는 행위라면 나도 도둑질했음이 틀림없다.
오히려 죄질은 더 나쁠지도 모르겠다.
나는 내가 저지르는 일의 의미도 모른채 오빠 훔쳐보기를 시도한다.
내가 노리는 것은 오빠의 편지, 일기, 사진 등을 비롯하여 각종 책자 등 주로 읽을거리, 볼거리였다.
오빠 방에는 우선 책이 많았다.
아버지께 졸라서 마련한 30권짜리 한국소설 문집을 비롯하여 단행본 소설류, 문학잡지 등 다양했다.
생각보다 어려운 책도 많았는데 나는 비교적 덜 어려운 책을 골라서 읽었다.
자연히 오빠 방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지자 생각지도 않게 오빠의 사생활에 대한 기록들도 접하게 된 것이다.
훔쳐보기는 재미있었고 별다른 죄의식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빠의 책상 옆으로는 얄개에 나오는 하이틴 스타 강 주희의 브로마이드가 길게 붙여져 있었다.
나를 불러서 진짜 예쁘지 않으냐고 물어 본 사진이다.
진짜 예뻐서 그렇다고 답해 주었다.
<강주희>
오빠의 서랍을 열어보았다.
역시나 기대했던 것들을 건질 수 있었다.
여학생 사진 두 장이 수첩 아래에 깔려 있다.
이제 사진의 주인공들이 누군지 조사해야 할 시간이다.
오빠의 일기장을 살짝 꺼내보았다.
동미.
오빠 친구 여동생이란다.
<하얀 얼굴에 나를 오빠오빠 하면서 잘 따르는 귀여운 아이>라고 씌어져 있다.
사진을 보니 동미라고 짐작되는 아이의 앳된 얼굴이 보인다.
내 나이인 것 같았다.
질투의 감정이 일어난다.
핏, 자기 동생이나 귀여워 할 일이지. 동생들한테는 폭군이면서.
하긴, 나는 오빠친구가 오면 방에 처박히기가 십상이지, 오빠오빠 하며 붙임성 있게 굴지도 않았지. 나도 맘에 드는 오빠가 오면 그렇게 살갑게 굴어볼까?
그러나 고개를 흔든다. 차마 못하겠다고 생각하면서.
계속해서 오빠의 일기장을 훑어 내려갔다.
혹시라도 갑자기 오빠가 들이닥치면 재빨리 현장을 수습하고 문을 열어야 하기 때문에 나의 훔쳐보기는 첩보작전을 방불할 정도다.
그런데 눈길을 사로잡는 사진 한장이 보였다.
동미라는 아이의 얼굴은 뭔가 강력하게 끌어당기는 흡인력은 부족해 보였는데 나보다 언니라고 생각되는 다른 사진 속의 여학생은 강렬한 매력이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체육복 차림의 전신사진이었는데 멀리서 찍은 사진이었는데도 걷는 자세가 당당한 것이 훤칠하고 아름답게 보였다.
오빠는 남녀 공학을 다녔는데 배경이 학교 교정이다.
오빠의 일기장에 서술된 정말 예쁜 여학생이란 표현의 주인공이 바로 사진의 그녀였다.
오빠에겐 도대체 정말 예쁜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러나 강 주희처럼 이 언니도 정말 예쁘긴 했다.
몇 년 뒤 미스코리아 전국대회에서 미를 입상함으로써 만인 앞에 미모가 증명된 셈이다.
나는 그 예쁜 언니와 오빠 사이에 모종의 진전이 있기를 은근히 바라는 맘이었다.
여자도 예쁜 여자를 좋아하는 법이니까.
그러나 그 후로 오빠의 일기장에 그 언니가 등장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아 그저 잠시 스쳐지나간 오빠만의 감정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 외에도 오빠의 일기장에는 여학생들 사이에서나 있는 줄 알았던 친구간의 우정에 대한 고민의 흔적들이 있었다. 또 뜻밖에도 자신에게 잘 대해주어서 고맙다며 앞으로 더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다는 동성의 오빠 친구 편지도 있었다. 남자들 간에도 그런 감정들을 주고받는다는 사실이 내겐 제법 생소하면서도 풋풋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오빠의 일기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고 내겐 그것이 차라리 다행이었다. 더 이상 몰래 엿보는 죄를 짓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오빠는 어릴 때부터 뛰어난 재능이 많았다.
손재주도 뛰어나서 그림도 그렸다 하면 큰 상을 받고 글도 썼다 하면 상을 받았다. 만화도 척척 근사하게 그렸다.
오빠의 담임선생님들이 가정방문을 오시면 아버지께 하시는 말씀이 한결같이 이렇게 훌륭한 자녀분을 두셔서 얼마나 좋으시겠습니까, 하는 내용의 것이었다.
그럴 때면 부모님 마음이 얼마나 뿌듯하시고 대견하셨을까.
아버지는 엄마가 학교 선생님들께 감사의 인사로 드릴만한 선물을 준비하는 것을 보시면 질색하셨지만 막상 선생님들을 뵌 뒤에는 무엇 하나 더 드리지 못해 안달하셨던 분이 또 아버지였다. 선물이라야 스타킹이나 담배가 고작이었지만.
오빠는 평생 해야 할 몫의 효도를 그때 학창시절 모두 다 해 버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하게 된다.
오빠는 음악에도 뛰어난 재능이 있었다.
피아노의 건반 한번 두드려 본 일이 없었는데도 음계에 대한 감각이 뛰어났다.
거의 혼자서 독본을 보고 기타를 익혔는데 마니아 수준으로 깊이 빠지더니 연주솜씨가 일취월장해 나가는 것이었다.
로망스로 시작한 것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발전하더니 나중에는 노래 책만 있으면 가요, 팝송 할 것 없이 얼마나 신나게 기타 줄을 뜯던지 우리는 내내 기타소리에 취해 살아야 했다.
하지만 취해 살아야 할 것이 기타만은 아니었다.
변성기를 지나 탁해진 목소리로 뽑아 대는 오빠의 노래까지 우리가 견디어 내야 할 몫이었던 것이다.
그냥 오빠 혼자서만 불렀다면 내가 지금 이렇게 과거를 돌아보며 쓴 웃음 지을 일도 없었으리라.
오빠에게는 관객이 필요했다.
자기 기타 솜씨와 함께 목이 터져라 불러대는 것을 들어 줄 귀가 간절했던 것이다.
당연히 그 몫은 나와 민지였다.
우리는 앞 소절만 대충 듣고 박수를 쳐 주었다.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오빠는 결코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박수로 대충 마무리하고 중간에 자리를 뜨려는 눈치를 보이면 기타를 치다 말고 잔뜩 찌푸려진 얼굴로 두 눈을 부릅뜨곤 했다. 우린 알고 있었다. 저 표정이 나온 뒤에 우리가 감당해야 할 고통이 얼마나 많은지를.
그래서 들썩거리는 엉덩이를 간신히 방바닥에 눌러 붙인채 <잘한다 울 오빠>라는 추임새를 연신 넣어주었다. 제비들의 재잘거림처럼.
사실 오빠는 목소리가 탁할망정 고음이 잘 올라가고 무엇보다 노래를 잘 요리해서 멋지게 뽑아내는 장점이 있다. 가끔은 가수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이든 지나치면 모자라는 것만 못하다고 오빠가 딱 그 모양이었다.
우리의 의무적인 칭찬에 한껏 고무되어 오빠는 몇 곡을 더 뽑아낸 뒤 마치 하사품을 지급하듯 한다는 말이
-그래, 좋다. 오늘은 오빠가 특별히 반주를 해 줄 테니 너희도 한 곡씩 뽑아 봐라.
민지는 오빠의 반주에 맞춰 애창곡 전영의 어디쯤 가고 있을까를 신나게 불러댄다.
<꽃잎은 바람결에 흩어져 강물을 따라 흘러가고 있는데 떠나간 그 사람은 지금은 어디쯤 가고 있을까...>
목소리까지 변조하면서 전영 흉내를 내는 것이 우습다.
<그렇게 쉽사리 떠날 줄은 떠날 줄 몰랐는데...>
후렴구가 나오자 오빠의 반주는 신을 냈고 나도 덩달아 옆에서 따라 불렀다.
오빠는 민지에게 노래를 잘한다고 칭찬을 한다.
그런데 겨우 뒤의 후렴구만 따라 부른 내겐 한다는 말이
-은지 넌 노래 부르는 게 왜 그러냐. 좀 천박하다.
민지가 끝나면 나의 영웅 혜은이의 감수광을 반주해 달래야지 생각하고 있던 나에게 웬 청천벽력 같은 소리.
못 부른다 라든지, 음치라든지, 듣기 싫다 라든지 하는 표현은 얼마든지 용서할 수 있다.
그러나 난데없는 천박 운운 하는 것은 용납이 되지 않았다. 하긴, 내가 용서하고 말고 해봤자 달라질 것이 무어란 말인가.
얼굴이 확 달아오르더니 금세 눈물이 후둑 떨어진다.
오빠는 자신의 말이 나의 앞날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칠 지를 알고 한 말일까.
있는 대로 무안해지고 자존심이 상한 나는 그냥 방을 나서고 민지와 오빠는 그에 아랑곳 않고 딩딩딩 반주에 맞춰 연신 노래를 불러 제친다.
자기 목소리는 자기 귀에 공명현상을 거쳐 들리기 때문에 실제보다 더 듣기 좋다더니 자기 도취에 빠진 두 사람이 꼭 그 꼴이다. 민지도 슬그머니 미워지는 맘을 안은 채 마루에 걸터앉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내 목에서는 나도 모르게 오빠의 기타반주에 맞춰 노래가 기어 나온다.
<잊지는 말아야지 만날 순 없어어어어도 잊지는 말아야지 헤어져 있어어어어도. 헤어질 땐 서어러워도 만날 땐 반 가아아아워.>
<당시 노래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