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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적뒤적


BY 동해바다 2009-01-07



     잠 안오는 밤이다.

     두어 시간 전 이곳 삼척에 내려와 차디찬 집안의 냉기를 보내버렸다,
     보일러 빵빵하게 돌리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잠시 중지해 놓았던 인터넷은 내려오기 전 복구를 시켜놓아 이렇게
     편하게 앉아 뒤적뒤적 컴 속을 뒤적거리고 있다.

     며칠 전 딸아이가 가져 온 산 잡지
     \"엄마, 용우이산 다녀왔어?\'
     \"응? 글쎄, 다녀온 지 꽤 되었는데....왜?\"
     \"엄마얼굴이 대문짝만하게 나왔네.\"

     산을 소개하는 월간지에 가끔씩 나오곤 했는데, 오지산행 다녀온 지가 
     언제인데 잡지에 나왔을까 싶어 책을 뒤적거려 보았다.
     보니 재작년 12월에 다녀온 산행기사가 이달 지의 오지산행 기사로 실려 있었다.

     아늑한 내집 보금자리, 비록 아무도 없어 썰렁한 냉기로 가득한 내 집이지만
     그 편안함은  일주일을 호되게 일하고 난 후의 휴식이 주는 즐거움때문이리라.

     뒤적뒤적~~~
     컴을 열어 오지산행을 검색해 보니 나의 편안한 또 하나의 보금자리가 툭 불거져 나온다.
     음악소리와 함께

     * * * * * * * * * * *

     태백시 동점동 용우이산 (09:30 ~ 14:00)
     07. 12. 3 / 4시간 30분


     깊고 깊은 산중, 인적 하나 없는 험한 곳이 \'오지\'인줄 알았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바로
     이웃, 쉽게 찾아갈 수 있는, 사람들의 걸음을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거침없는 곳이 \'오지\'임을
     몇년 전부터 따라나선 오지산행을 한 후 알게 되었다. 

     우리 고장 중에서도 지도에는 나와 있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을 탐험하여 잡지에 소개하고 조금더
     산악인들에게 가까워질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오지산행, \'산\'지와 \'사람과 산\'지의 태백주재 기자인 
     김부래씨와 태백과 이곳 여성산악회원 우리의 대장 등 7명이 함께 한 산행이었다.

     벌써 몇 해가 흘렀을까. 4년 전 쯤 처음 따라나선 오지산행에 그 미묘한 맛을 들이면서 열심히
     따라나섰고 가끔 잡지에 실린 우리들의 모습을 보고 반가움과 대견함이 믹스되어 초보산행에
     용기가 실리곤 했었다. 작년 6월 만항재에서 시작하여 옛 탄광지역의 그림을 고스란히 안으며 세월의 
     흔적이 담아있던 정암산, 그 산행을 마지막으로 오지행에 참석하지 못했었다.
     우리들이야 대장의 말 한마디에 움직여야 하는 병아리같은 초보산악인인지라 오랜만에 오지
     산행에 합류하자는 말을 들었을때 반가움은 색다른 일렁임을 자아내고도 충분하였다.

     아침 7시 30분, 네 명을 태운 승용차가 태백을 향했다. 날씨는 화창하고 통리를 넘어가는
     기찻길 옆 건널목에 세워져 있는 온도계는 0.3도를 알려주고 있었다. 포근한 날씨이다.
     약속되어 있는 장소에서 그곳 팀과 합류하여 구문소로 향한다.

     잘 포장되어 있는 길목 안쪽으로 차를 주차해놓고 뜨끈한 커피 한 잔과 담소로 오랜만의
     해후를 나눴다. 마른 풀 냄새가 코 끝을 벌렁이게 만든다. 쑥향과 산국향 등 건드릴수록 강해지는
     향내음에 눈이 절로 감겨진다. 9시 30분 포장길 따라 보이는 저 앞 산이 우리가 가야할 산이라고
     기자는 알려준다. 산이름은 용우이산이라고 한다. 산모롱이 돌아서니 숨어있던 찬 기운이 우리에게 
     대든다. 만만찮은 추위다. 하지만 다시 또 돌아서니 언제 추웠냐는 듯 온기가 우릴 또 반긴다. 

     물이 말라 이끼낀 바위는 갈증에 허덕이고  따뜻한 양지 오르는 우리의 등 뒤로 햇살이 비친다.
     눈부실 정도로 파아란 하늘이 메마르고 거친 산을 감싸안고 있었다.
     일반산행과 다르게 쉬엄쉬엄 거북이 산행이다. 성격상 맞지 않은 산행일 수도 있다. 
     답답할 수도 있다. 몇 발자국 걷다 기자의 요청에 멈춰 사진찍고 또 몇 발자국 걷다 그만 오라 하니
     열심히 산행하면서 땀 흘리고 스트레스를 확 날려버리려는 이들에겐 전혀 맞지 않을 산행일 수도
     있다. \'산\'이 우리에게 쉼을 요구하는 기회이다. 앞만 보고 내치던 산행을 잠시 접고 우리에게
     소풍처럼 즐기라 한다. 한 템포 쉬어가며 느림의 미학을 한번 느껴보라 알려준다. 

     더덕줄 따라 발견한 산더덕 몇 뿌리에서 향이 진동을 한다. 코를 대고 킁킁 맡으면 맡을수록
     내음에 취하고 산에 취한다. 나무를 감고 올라가는 가느다란 줄기만 봐도 더덕줄기가 아닐까
     의심해 본다. 그쪽으론 문외한이라 엉뚱한 줄기를 봐도 반가워 물어보면 역시나이다.
     포기하고 천천히 오르다 보니 낙엽으로 뒤덮힌 산 전체가 얼마나 따뜻하고 포근한지 잠시
     쉬어 심심한 입을 채울 요량으로 먹거리들을 꺼낸다. 백포도주가 나오고 매실주가 나온다.
     한잔 술에 웃음이 떠나갈 듯 적막을 깨트린다. 폭신한 자리와 온기가 한참을 머무르게 만들었다.

     산 등을 올라탈 무렵 기다리고 있던 찬바람이 옷속을 파고드니 한기가 밀려들었다. 
     산너머 마을이 보이고 차도가 보인다. 우리가 세워둔 차도 보인다. 동네 앞산에서 놀고 있는듯한
     느낌이다. 





     운지버섯이 죽은 나무를 타고 꽃을 피웠다. 오지에서의 약초는 먹을 만큼 가지고 가는 센스도
     발휘한다. 높은 나무 위 겨우살이도 공생하고 있었다. 팔만 닿으면 조금 가져가면 좋으련만
     겨우살이는 화중지병처럼 눈만 배불리고 지나쳤다. 산등성이 양옆은 깎아지른 듯한 가파른 절벽
     이다. 길없는 낙엽밭을 헤치며 조심조심 앞만 보고 걸어야 한다. 

     900여 미터 높이의 용우이산, 그 정상에 발을 딛었다. 이름도 생소한 산 지명이 갖가지 전설을 담고
     전설 속 하나를 기자에게서 듣는다. 유창하진 않지만 조목조목 아는 한도내에서 정성껏 설명하시는 
     그분의 세심함이 엿보였다. 

     옛날, 철암천의 청룡과 황지천의 백룡이 구문소 석벽을 사이에 두고 양 연못에 살았다고 한다.
     낙동강의 지배권을 두고 두마리 용은 보기만 하면 석벽 위에서 으르렁거리며 싸우기 일쑤였는데 
     좀체로 승부가 나질 않았단다. 어느날 백룡이 꾀를 내어 석벽 밑을 뚫어 기습공격을 했는데
     청룡을 물리친 백룡이 그 여세를 몰아 승천하였다. 승천할 때 지나간 산이 용우이산이고
     석벽아래 뚫린 벽은 구문소이다. 이런 전설이 있는데 그 외 두개의 전설이 또 있었다.

      12시, 정상의 매서운 바람이 불어대지만 첫발길에 산신께 예를 올리고 음복을 하였다.

     양지를 찾아 자릴펴고 7명이 둘러앉아 점심을 먹었다. 여담으로 배불리고 한바탕 웃음으로 양념을
     쳤다. 절로나오는 노랫소리에 장단이 따라오고 옆에 있던 기자의 뜬금없는 눈물이 우리를 어리둥절
     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유있는 눈물로 모두가 가슴이 뭉클해진다. 마음과 마음이 전해진다는 것,
     쉽지않은 관계이다.  해 해 지나 두터워진 정이 그 사람을 읽게 되고 또한 그것으로 마음이 동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뒤이어 진한 농담도 빠질 수 없는 양념재료라는 것을 터득한 바
     모두가 하하호호 거림으로 정오의 한낮을 채웠다. 한시간 여의 시간이 후딱 지나간다. 좀더
     있으려니 추위가 밀려온다. 


  
     올라왔던 산등성이를 거슬러 그 지점에서 더 내려가 왼쪽 마을로 하산한다. 마을을 끼고 있어
     희미한 길이 보이는 듯 했다. 길이라 느껴지는 길 위로 천천히 내려가고 아직도 더덕에 미련이 
     많은 대장은 뒤따라오며 하나 둘 캐어 특유의 강한 냄새를 풍겨준다. 
     내려오는 길목 볕 좋은 자리에 묘자리가 있어 그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멀리 태백산도 보이고
     알 수 없는 산이 겹겹으로 쌓여 구름가득한 하늘 아래 그 풍광을 더욱 멋지게 만들고 있었다. 

     거의 하산할 무렵 낙엽송 지대가 나타난다. 숲해설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기자는 무조건 낙엽송이라
     말하지 말라 한다. 일명 일본이깔나무, 열매와 잎과 종류에 대해 한참을 설명듣는다. 


                                  
                                               
마치 장미꽃송이처럼 예쁜 솔방울, 낙엽송 아래 떨어져 있는 방울을 들어 자세히 들여다 보니 너무나 예뻤다. 그냥 지나쳤던 솔방울들도 이리 생겼을까 싶어 낙엽송에서 떨어진 방울모양에 신기함을 금치 못하며 그 미모에 손을 놓을 줄 몰랐다. 마을이 보인다. 태백시 동점동.. 우리가 걸었던 산이 보였다. 오른쪽 봉우리가 정상지점, 왼편 산능선을 따라 하산하였다. 마을을 내려와 아파트를 지나고 마트에서 또한번의 휴식을 취하고 차도를 따라 구문소 소공원까지 걸어가니 오후 3시 30분이다. 구문소는 황지 및 너덜샘에서 흘러나오는 강물이 동점동에 이르러 큰 산을 뚫고 지나가며 석문을 만들고 거기에 깊은 소를 이루었는데 그곳을 구문소라 한다. 강물이 산을 뚫고 흐른다 하여 구멍소라 불리웠다가 옛말이 변하여 구무소 구문소로 변천하였단다. 소공원에 세워져 있는 표지석 아래 전설은 어떤 효자의 이야기로 그 내용을 채우고 있었다. 굴 아래 황지천이 흐르고 멈춰있는 듯 흐르는 천이 짙푸른 소를 만들고 있다. 그곳 팀과 공원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다음을 기약하며 안녕을 고했다. 미련이 남아 올해가 가기 전 한번의 산행을 더 만들어보자며 아쉬워 했다. 편안한 승용차에 올라 내고장 삼척으로 향하니 졸음이 밀려든다. 집에 도착하니 5시이다. * * * * * * * * * 가끔씩 뒤적거려 보는 내 지난 페이지에는 작은행복들이 숨어있다. 그래서 더 더 뒤져보는 나의 지난 추억들... 아주 편안한 밤의 추억되새김으로 잠을 청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