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내가 남의 집 문간방에 둥지를 틀고 서 너 달이 지났을까, 시골에서 부모님이 오신다고 하였다.
밥상에 수저를 놓으라고 하면 논으로 밭으로 달아났던 막내딸도 잘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평생 농사꾼으로 고생만 하신 부모님께 맛있는 것을 대접하고 싶기도 하였다.
돈과도 타협하지 않고, 시간하고도 타협하지 않고, 노동의 양하고도 타협하지 않고, 그저 내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최상의 요리를 만들고 싶었다.
요리책을 뒤지고 또 뒤지고, 출근해서 가정선생에게 묻기도 하고, 고민 끝에 가장 비싸보이는 갈비찜으로 정했다.
고깃간 아저씨는 살이 적게 붙은 것은 국거리이고, 살이 많이 붙은 것은 찜꺼리라고 친절하게 일러주며 살이 많이 붙은 부분으로 잘라주었다.
갈비를 손질해서 갈비가 잠길 만큼 물을 붓고 끓여 기름기를 걷어내고 건져서 양념장에 재웠다가, 찜통에 담고, 밤, 은행, 호두, 대추 잣을 넣고 다시 뭉근한 불에서 뜸을 들여 상에 내니 그럴 듯 하다.
요리책에는 없었는데 달걀도 황백으로 나누어 지단을 부쳐 마름모꼴로 잘라 올려보았다.
정말 내가 만든 요리일까 싶게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다.
야, 맛있다.
내 생전 이렇게 부드럽게 맛있는 쇠고기는 처음이다.
싱글벙글, 어머니도 아버지도 언니도 조카들도 모두모두 잘 먹는다.
양도 넉넉하다.
모두들 배 두드리고 먹고도 또 그만큼 남았다.
평생 맛있는 것은 자신의 입에 넣을 줄 모르던 어머니도 그 날은 사양하지도, 양보하지도 않고, 맛있게 드셨다.
그 후로 그렇게 맛있는 음식을 누구에게도 대접한 기억이 없다.
시어머니 시아버지가 오셨을 때도 그렇게 정성들여 대접하진 않았다.
내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그렇게 정성들인 갈비찜은 먹여 보지 못했다.
남편의 직업으로 숱하게 많은 손님을 치렀지만 어떤 갈비찜도 울엄마 아버지를 위해 만들었던 것처럼 정성들여 만들지는 않았다.
정성을 다 한다고 했지만 누구에게도 그 때 만큼의 정성이 우러나지 않았다.
돈, 시간, 노동의 양을 고려해서 메뉴를 만들었다.
갈비찜이 메뉴에 들어가도 그것은 전혀 다른 갈비찜이었다.
힘들어서 손님이 반갑지 않으면 손님 대접이 아니라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적당히 적당히 손님을 치루었다.
식당을 하는 지금도 그런 정성은 우러나지 않는다.
만들기 쉽고, 재료 값이 적게 들고, 보기 그럴 듯하고, 이런 것을 고려하지 최고의 음식을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부모님이 둘 다 돌아가시고 가끔 눈물나게 보고 싶은 순간들이 있다.
말썽부리고 속상하게 해 드린 일이 생각나 한 없이 미안한 마음이 들 때도 있다.
그래도 마음 한 켠은 자랑스럽고 뿌듯하다.
갈비찜 생각이 날 때다.
앞으로도 누구에게 그리 정성들인 갈비찜을 해 줄 것 같지 않다.
그래서 스스로가 더욱 대견하다.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부모님께 떳떳하게 말할 수 있다.
엄마, 아버지... 그 갈비찜 만들 때 내 마음 알지?
내가 얼마나 보고 싶어하는 지 알아?
엄마 아버지가 눈물나게 보고 싶은 날, 그 때 그 갈비찜을 생각하면 쬐끔 위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