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킨으로 얼굴을 닦아내며 자세히 보니 시골살이에 부쩍 늘어버린 잡티가 낙엽 내려앉듯 했다 문지른다고 없어질 잡티가 아니지만 매번 공들이기 마련. 두툼해진 몸은 계획대로 쉬 줄어들 것 같지 않다
몸을 줄이려고 죽자고 노력한 일은 없지만 그래도 반신반의하며 감행한 다이어트가 수차례다 돌아오는 요요현상을 원망하면서 서있는 내가 남 같다
시원치 않은 심장 기능을 건강하게 하려면 몸무게를 감량하라고 으름장을 놓는 의사한테 네네 대답은 잘도 했으면서 실천은 미지근하다. 내 건강에 뒤늦은 신경을 쓰고있지만 대개의 여자들은 자신을 챙기일보다 가족이 우선이니 자기관리에는 서툴다
며칠 전 터미널에서 만났던 아가씨의 백 팔십은 됨직한 늘씬한 키와 기막힌 몸매를 떠올리니 내 모습에 코웃음 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팔팔하게 젊었던 시간이 아련하게 그립고 시대적 제약으로 누리지 못했던 일들이 가끔은 몹시도 억울하다
밀려드는 젊은 문화를 타고 유행처럼 미니와 장발이 난리를 쳤던 때 호루라기를 불며 스커트를 향해 줄자를 흔들던 구시대의 법도 정말 웃겼다
낡은 정치가 문화마저 짓누르고 앉아있던 시절, 장발 청년들을 퇴폐 족으로 몰며 범죄자 취급을 했던 서슬 퍼랬던 법이 지금은 어디에 머리를 처박고 숨었을까 젊은 처자들이 배꼽과 허리, 등판과 가슴을 어지럽게 드러낸 채 뒤숭숭한 헤어스타일을 한 키다리들과 허리를 껴 앉고 뽀뽀를 해도 그건 너희들 일이라고 눈감아 주다니!......
제과점과 영화관, 사복에 대한 우리의 열망은 학교를 망해먹을 불량학생의 싸가지 없는 짓이었고 일제의 잔재인 검정 교복에 단발과 까까머리는 터지는 감성을 꽁꽁 가리게 하는 억지였다 요즘 애들은 어른으로 변신하는 일에 대해 자랑스러워하고 당당하게 드러내길 좋아하는데 우리는 어른으로 변모하는 일을 왜 그리 부끄럽게 여겨야 했을까
어쩌다 제과점 진열대의 야채 샌드위치가 식욕을 자극해서 출입을 하거나, 청소년 입장가라고 쓴 영화간판에서 참을 수 없는 유혹을 받고 관람이라도 하는 날은 벌렁대는 심장을 누르며 상영시간 내내 극장 안을 두리번거려야 했다 이거야말로 일 년마다 한 세대가 바뀐다는 요즘 아이들에게는 썰렁 개그거리도 되지 않는다
표현의 자유 앞에 맥을 못 추는 법을 보면서
누려도 괜찮았을 젊은 문화를 빼앗긴 것이 지금도 속상하고, 행동과 생각과 표현에 있어서 파격적으로 자유로운 시대를 사는 젊은 사람들이 정말 부럽다
그들이 알기나 할까
저희가 누리는 자유가, 구세대의 젊은이들이 몸부림으로 이끌어낸 문화라는 것을.
지극히 국소적인 예를 들었지만 사람의 인지가 발달해 가면서
공공의 이익을 도모하는 동시에 개인적 권리를 파격적으로 확대 해가는 추세다
필요악을 수용하며 전체적 자율이 질서를 잡기까지 우리가 감당할 부분도 많겠지만 앞으로 이십년 삼십년 뒤에 세상은 또 얼마나 변해있을까...
우리를 세뇌하며 억압하던 법이 수용이라는 얼굴로 점점 달라지듯이 우리들 머릿속을 가득 채운 것들의 가치도 우리 스스로 고쳐야만 살 수 있는 격변의 날들이다
자식에게 올 인하며 힘들게 부모님을 모시고 살아왔어도 나는 자식에게 그 무엇도 바라면 안 되는 억울한 세대. 느지막이 자식에게 폐가되지 않고 당당한 부모가 될 궁리에 전전긍긍하는 우리들이다
인생에 황혼 무렵. 억울하다는 생각으로 울지 않으려면 보다 적극적으로 사는 방법을 달리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천 팔년의 시대에서 백년 뒤의 세상을 산다면 무기수가 되거나 광인 취급을 받겠지만 적어도 인지능력이 남아 있는 한, 누릴 것을 포기한 채 노인세대에 끌려가지는 않아야겠고, 깨인 생각으로 삶을 즐겁게 포용하며 기회를 두고 스스로 물러서는 일없이 살고 싶다. 진취적인 삶에는 능동적 에너지가 필요하다
과연 나는 구습의 최면에서 얼마나 깨어 살수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