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쓰는 말을 듣고 있으면 놀라고 속이 상한다.
비어와 속어를 주로 사용하는 때문이다.
어디서 배웠을까?
아들은 우리에게 배웠다고 한다.
사실이라면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다.
하지만 남편도 나도 그 정도로 험한 말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어렸을 적엔 그렇지 않았는데 언제부터일까?
대학에 간다고 우리하고 떨어져 지나는 동안 부쩍 비어와 속어를 많이 사용하게 된 것 같다.
아마도 제 또래 한국 아이들과 어울리면서 배운 것이리라.
한국말을 사용하는 어른이 주변에 없었으니 비어와 속어만으로 한국말을 하며 살았나보다.
세 살 때부터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자란 아이는 영어와 한국말을 완벽하게 하는 듯 보이는데 사실은 두 개 언어 모두 서툰지도 모른다.
아이가 쓰는 비속어를 지적하며 그런 말을 쓰는것이 아니라고 하면 그 말을 쓰는 것이 그리 나쁜 것인 줄 몰랐다고 한다.
하지만 이미 습관이 된 것이라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요즘엔 아이가 한국말을 하는 상대는 제 아빠와 내가 전부다.
제 친구와 부모를 구분하지 못하고 비속어를 쓰는 아들과 말을 하다보면 은근히 화가 난다.
아들이 변하지 않으면 내가 변할 수 밖에 없다.
아들하고의 대화에 존댓말을 사용하기로 했다.
아들은 엄마가 존댓말을 쓰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계속 반말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계속 존댓말을 쓴다.
누가 들으면 얼마나 웃으울까?
엄마는 존댓말을 사용하고 아들은 반발을 쓰고...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아들이 가끔 경어를 쓰기도 한다.
이십 중반을 넘어도 그는 아직 내 아들임이 분명한가 보다.
불과 며칠 사이에 나를 따라 말투가 바뀌기 시작하다니...
아들을 보면서 남편과의 사이에 쓰는 언어를 돌아본다.
남편과는 초등 동창이었지만 결혼 후 경어을 사용했었다.
초등동창이라 서로 예의가 없기 쉬우니 경어를 쓰는 것이 좋겠다는 남편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인 때문이다.
남편은 내게 주로 반말을 사용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깍듯이 경어를 사용했다.
내가 사용하는 말이 내 품위를 정하는거라고 여겼기에 그리하였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남편과의 사이에 품위 같은 걸 팽개쳐버렸다.
막나가는 아내가 무서웠을까, 남편이 경어를 사용하는 빈도가 나보다 더 많아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 말은 점점 거칠어졌다.
그러고 보면 아들이 우리에게 배웠다는 말도 전혀 근거없는 말은 아닌지도 모른다.
아직도 아들이 쓰는 비속어를 나는 사용하지 않았노라고 말하고 싶은데...말이다.
암튼 반성하고 또 반성한다.
오늘부터 다시 남편에게 깍듯이 경어를 사용해야겠다.
품위가 위선과 통할 때도 있음을 알게 되었지만 위선일지라도 품위있는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 또한 아들에게 배웠다.
당분간 아들하고의 사이에도 경어를 사용할 것이다.
버릇없는 아들하고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기에 예의를 갖춘 경어를 사용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