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날 새벽에 일어나 차례 상 차리고
얘들이 못 와서 남편과 둘이서
제를 올렸다.
남편이 수고 했다고 아주 잘 차려냈다며
칭찬을 해주니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둘이서 먹고 치우고
시골에 가져 갈 음식들 챙겨 담았다.
그 사이에 남편은 아침시장에 가서
무화과를 사왔다.
그래서 인사 갈 친척집의 몫들을
나누어 담았다.
남편이 설거지를 해주며
\"아이고 허리야\"
하여 웃음이 나왔다.
나는 어깨가 시큰거려 겨우 머리를 감고 서둘렀다.
시어머님께서 둘째인 우리 집으로도 안 오시고
서울의 큰댁으로도 안 가시고 하여
우린 백부님의 제사를 모시고 어머님께
그리고 아버님의 산소에 성묘를 갔다.
가족들이 모여 점심을 먹는데
어머님이 내게 자고 가라고 하셨다.
어깨가 부엌일을 할 수 없을 것 같이 아파서
오후에 가야겠다고 말씀 드렸다.
그러자 어머님이 상을 치우시고 설거지며
내 일을 다 하시며 내게 쉬라고 하셨다.
오후에 시동생과 시누이가 얘들을 데리고 왔다.
그래서 금세 집안이 북적거렸다.
일찍 저녁을 먹고 오려고 상을 차렸다.
오후 다섯 시밖에 안 되었었다.
어머님이 밥을 먹고 있는 내 등 뒤에 다가앉으시며
내 귀에 대고
\"너 인제 못가야.\"
하시는 거였다.
순간 나는 웃음이 나서 하마터면 큰소리로 웃을 뻔 했다.
어머님은 그리도 외로우셨던 걸까.
그래서 남편에게 어머님 얘길 전하며
자고 가자고 말을 했더니 남편도 웃었다.
밤에 시동생 친구 분이 필리핀에서 온 아내와 같이 왔다.
어머님과 그 필리핀여성은
마치 친 모녀처럼 다정히 지내는 사이다.
엄마라고 따르는 그녀에게도
자고 가라고 애원을 하셨다.
우리 어머님 정말 많이 외로우셨던 것 같다.
더 늦기 전에 어머님의 오직 한 가지
소원이 이루어 지셨으면 좋겠다.
그 소원만 이루어지면 고향을 떠나
마음 가는 곳에서 사셔도 되는데.
세월이 무섭고 세상일은 또 참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