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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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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 문자는 사양하겠다고


BY 자화상 2008-09-05






열흘이 넘도록 아들이 문자도 안 보내주고

고시 준비하느라 집 떠나 제 둥지 마련한

딸 한테서도 문자도 없었다.

나는 나대로 아들 방 문 한 번 열어보고

\'없구나!\'

딸 방 슬쩍 열어보고

\'없네!\'

속으로 중얼거린다.

\"휴우~\"

길게 숨을 한 번 쉬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 두들기다가

싫증나서

TV 앞에 앉아 리모컨만 열심히 누르며 웃겨주는 프로 찾는다.

좀 보다가 별 흥미 없어 신문을 뒤적이며

세상을 누가 흔드는지 얼굴들을 구경한다.

그것도 잠시다.

밖의 햇빛이 유리창 가득히 몰려와

나를 일으킨다.

그래 오늘은 누가 새 잎을 내어 밀었나 보자.

일어나 내 사랑하는 꽃들을 바라보며

거실 창앞에 서 있는 시간들이 참 길다.

오후 두 세시간 학원에 나가 아직 바둑을 사랑하는 아이들과

동심으로 돌아가 본다.

이제 이 달 말 쯤에 학원문을 닫으려 한다.

영어학원을 찾아 부모에 떠밀려 가는 아이들을 보며

놀이터가 한가로운 현실을 피부로 느낀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약 16년쯤 된 것 같다.

어린이들에게 바둑을 가르쳐주며 웃고 화를 참고 달래고

용기도 주었고 그래서 좋은 변화를 눈으로 확인하는 부모들께

감사의 인사도 많이 받았었다.

정말 보람있었던 직업이었다.

나와 함께 하였던 수많은 아이들중에

생각나는 얼굴들을 되새기며

엊그제는 하루종일 울어버렸다.

이제 바둑을 손에서 놓고

뭘 하며 주어지는 나날들을 채워 보내야 할 지

아직 계획이 없다.

그저 상실감 허전함 외로움 그리고 우울해져서

마음에서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내 딸과 아들도 공부하느라 멀리 떠났고

내 삶의 절반을 차지했던 학원생 아이들까지

이제 못보게 되었다.

그래서 요즘 통 아무것도 하기 싫어

먼 산만 바라보았다.

어제 밤 딸과 아들이 보고 싶어 며칠만에

같은 내용으로 동시에 문자를 보냈다.

그러자 딸이 즉시 보내준 답문에

\"단체 문자는 사양하겠음!!\"

이라고 써져 있어 그걸 읽고 큰소리로 웃음을 터트렸다.

정말 오랜만에 크게 웃어 본 웃음이었다.



그래 용기를 내야겠다.

내가 할 일이 있겠지.

찾아야겠다.

고목도 싹을 틔우는 것처럼 내게도 인생의 싹이

내 안에 숨을 쉬고 있으리라고 자신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