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이야기 3
남편이 출근하는 걸 보고 까무룩 잠이 들었다가 깼더니 아침 8시다.
“앗! 채우야 채우야. 얼른 일어나. 어린이집 다람쥐차 올 시간이야”
아이는 눈을 ‘꿈찔꿈찔’하더니 다시 잔다.
아침 잠 많은 다섯 살 아들 녀석은 아침마다 잠꼬대처럼 눈도 뜨지 않은 채
어린이집에 안 가겠다고 외친다.
“유티원(유치원) 안 갈 거예영! 8시 넘은다 그래두 나 자야돼영”
아이는 눈을 더 꼭 감고 꼼짝도 안한다.
“엄마가 어린이집 다녀오면 자전거 태워줄게, 응?”
자전거 타는 걸 무척 좋아하는 녀석은 귀가 솔깃했는지 눈을 슬몃슬몃 뜬다.
“지금 태워주세요. 그르먼 유티원 갈 거니까요. 나 지금 자졍거 탈래요. 자졍거 탈래요”
마지못해, 태워주겠다고 했더니 언제 졸렸냐는 듯 신이 나서 눈이 반짝거린다.
“네! 나 세수 잘하니까 세수하그 치카치카도 하그 자졍거 타그 유티원 갈게요”
7월 중순의 하늘은 비가 온다 했다,
안 온다 했다… 며칠을 그런다.
오늘도 하늘이 꾸물꾸물 하다.
구름은 이불처럼 두껍게 떠 있고 언뜻언뜻 해도 비친다.
하늘은 맑지 않아도 아이는 맑은 표정으로 자전거보관소로 가서 엄마 자전거를 찾아낸다.
그리고는 익숙한 동작으로 자전거 뒷자리에 혼자 올라가 앉는다.
“엄마! 비행기처럼 슈앙슈앙 달려요. 더 빨리요”
돌을 갓 지났던 15개월 무렵부터 아이를 자전거 뒷자리에 태우고 부평 어디든 다녔으니,
다섯 살 아들은 자전거광(狂)이 다 되었다.
자전거를 탈 때마다 비행기처럼 달리라는 주문은 잊지 않는다.
아이 표현대로 “엄마, 바람이가 내 머리카락을 자꾸만 가져갈라 그래요” 이런 즐거움을 알아버렸으니, 진짜 비행기를 타면 자전거를 타는 신나는 기분을 느끼지 못해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아들이 다니는 어린이집은 산곡3동, 산곡여중학교 근처 주택가다.
우리 가족이 살고 있는 청천2동 대우아파트에서는 좀 멀지만,
산곡동 롯데마트(부평점)에서 금호이수마운트밸리와 무지개, 한신휴 아파트까지 직선으로 달리면
쉽게 갈 수 있다.
이젠 익숙해진 롯데마트까지 쉼 없이 달리고 금호이수마운트밸리를 따라 새로 단장한 깨끗한 길은
장애물이 없어서 기분 좋은 길이다.
아침에 자전거로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는 건 처음이라서 마음이 바쁘지만,
무지개아파트의 ‘풀밭 너머 아침’이라는 산책로를 힐끔 쳐다볼 여유는 있다.
순간, 신나게 달리는데 4층 규모의 건물을 짓는 공사장이 길을 막는다.
넓은 인도 위에 벽돌과 대리석, 모래와 흙, 굴착기까지 올라와 앉아 있다.
마을버스 정류장 앞이라 사람들도 멀찌감치 서서 버스를 기다린다.
할 수 없이 자전거에서 내려 차도로 자전거를 끌고 가야한다.
15Kg의 아이를 태워 무거운 자전거의 바퀴가 인도 턱을 내려가다가 바닥에 깔린 모래에 미끄러질까 봐 힘을 꽉 주고 손잡이를 잡았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아이와 함께 넘어진 경험이 있어서 더욱 ‘살살살살’ 천천히 자전거를 끌었지만 바퀴는 자꾸 휘청거린다.
아이도 위험한 걸 알아서 “엄마, 무서워. 엄마, 무서워” 하며 겁을 낸다.
차도에서 큰 버스들이 곁을 지날 때마다 얼마나 아찔한지, 아슬아슬하게 공사장을 빠져나와
다시 인도로 올라가려면 인도 턱 위로 자전거를 올려야 한다.
겨우 공사장을 빠져나와 한신휴아파트 옆, 프리쌍뜨아파트 쪽 작은 길로 들어섰더니
이번엔 마을버스가 부르릉 달려온다. 얼른 인도로 올라가려고 봤더니,
인도 중간 중간에 전봇대가 심어져 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인도로 올라왔다.
전봇대 몇 개를 겨우 피해서 가다보니 이번엔 자동차 두 대가 인도 위에 올라와 앉아 있다.
대체 어디로 지나가야 하지?
엄마가 자꾸만 자전거를 멈추니까, 아이가 눈치를 본다.
“내가 말 안 들어서 자전거가 안 가요? 엄마 화 나서요?”
“아니야, 채우야. 길이 나빠서 자전거가 힘들대”
“길 가는데 나빠요? 미웁게 해요? 혼나야겠네”
휴, 이럴 때 인도와 차도 사이에 자전거도로가 따로 구분돼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인도에 전봇대는 물론 좀 더 가다보면 차들도 여러대 주차되어있어요.ㅠㅠ |
부평구에서 2000년부터 ‘푸른 부평 자전거 도시’를 외치길래
‘드디어 자전거 타기 좋은 환경이 되겠구나” 하며 기대에 부풀어 매년 부영공원에서 개최했던
‘자전거 대행진’에도 기쁜 마음으로 참가했더니만, 9년 동안 뭐가 달라졌는지 모르겠다.
부평구청역에서 철마터널까지 도로를 넓히고 인도를 새로 깔 때, 부평구 최초로 자전거도로도 생기지 않을까 싶어서 불편을 무릅쓰고 열심히 지나다녔는데, 여전히 차도와 인도만 만들고 있을 뿐이다.
도대체 언제 ‘푸른 부평 자전거 도시’가 될까?
아침부터 지친 표정으로 유치원에 도착한 엄마와 아들.
30분밖에 달리지 않았는데 산악자전거로 모험이라도 하고 온 기분이다.
자전거 태워준다고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아들인데 이런 ‘길’이라면,
이제는 아침에 아이를 태워다 주기 싫다는 엄마답지 못한 생각도 든다.
집으로 돌아가는 자전거는 가볍지만 아이를 신나게 못 태워준 내 마음은 무겁다.
기운이 빠진 채 집으로 가는데 꾸물거리던 하늘에서 빗방울이 약하게 토독토독 떨어진다.
본격적으로 장맛비가 쏟아지면 당분간 자전거는 못 타겠네.
또 비 쫄딱 맞고 서 있을 가여운 자전거들.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