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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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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쟁반에 청포도 먹던날에


BY 감초아씨 2008-07-12


 

청 포 도
                      이 육 사

내 고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 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靑袍(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을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은쟁반에 청포도 먹던날에~

미국 이민 와서 살림을 장만할 때 
큰맘먹고 은쟁반을 한 개 샀었죠 
그럴듯하게 써먹지 못하고 있었던 차에 
처음으로 알게된 가족을 집으로 초대 했답니다 

그 집 막내가 우리 딸아이 친구이기에
나이 비슷한 엄마끼리도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었구
모두들 바쁜 만큼 
간단한 식사 대접이 서로에게 부담이 없으니 
우리는 곧잘 냉면이나 국수 등을 나눠먹곤 했는데 

그날 난 만두를 빚어 떡국을 대접했었고 
후식으로 청포도를 내 놓으며 
모시수건은 아니지만 
그야말로 은쟁반에 하이얀 수건을 깔아 
내 멋스러움을 한껏 과시하려고 있는 폼 다 잡았습죠 

언젯적부터 꼭 해보고 싶었는데 
처음으로 은쟁반에 청포도를 먹어 보노라는 얘기도 하며 
내가 그다지 가식적인 사람이 아님도 강조함시롱~ 

그 집 남편으로 말할 것 같으면 
집안의 어려운 어른 같으신 분이기에 
우리는 \'당숙 어른\'이라 불렀답니다  
정성 담긴 식사도, 
여고 적부터 그리던 멋진 후식도, 
즐거운 담소도 끝나고 손님들이 가시는데 
난 친절히 문밖에 나가 공손하게 안녕히 가시라고 
고개 숙여 인사했지요  

그런데 아뿔싸~~~`!! 
아래를 내려다 본 순간 
자주색 와코루 파자마가 눈에 보이는고야요  
난 그 자리에서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고 말았지요 

시상에 그 어려운 당숙님을 
내내 파자마바람으로 모시었으니 
뻗쳐오르던 내 보람 우습게 무너졌나니...

그 후로 만나면 
내가 무안할까봐 그랬는지 당숙 부인의 대형 사건들이 
줄줄이 나오는데 얼마나 배꼽 쥐며 웃었는지 몰라요  

\"그녀가 만삭의 몸으로 손님 앞에서 술상을 들다가 \'뽕\'~~\"  

\"첫 아이를 서툰 솜씨로 업고 나들이 하다가 
우연히 여고동창 부부를 만나 
인사하는데 속곳이 다 흘러내려 있었다\" 

\"남편 대학동기 모임이 있는 연회석상에서 
음료수인줄 알고 마신 칵테일에 졸도하여 앰브란스에 실려 가는데 
중간에 깨어났지만 차마 눈을 뜰 수가 없어 응급실까지 갔다는 등...\"
 
만나기만 하면 재담 좋은 그녀 입에서 
끊임없는 얘기가 쏟아져 나오니 
청포도 멋들어지게 먹던 날의 내 실수는 
은근 슬쩍 덮어졌답니다 .

이글은 아컴 데뷰시절(?) 올렸던 글인데 
청포도 사진이 너무도 시원 먹음직하기에
더위 식히시라 올려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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