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순간이 다아 꽃봉오리인 것을 -
-정 현종 -
나는 가끔 후회한다
그때 그 일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그때 그 사람이, 그때 그 물건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더 열심히 파고 들고
더 열심히 말을 걸고
더 열심히 귀 기울이고
더 열심히 사랑할 걸...
반벙어리처럼, 귀머거리처럼
보내지는 않았는가 우두커니처럼...
더 열심히 그 순간을 사랑할 것을...
모든 순간이 다아 꽃봉오리인 것을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꽃봉오리인 것을!
들꽃 언덕에서 - 유 한지 - 들꽃언덕에서 알았다. 값비싼 화초는 사람이 키우고 값없는 들꽃은 하나님이 키우시는 것을 그래서 들꽃 향기는 하늘의 향기인 것을 그래서 하늘의 눈금과 땅의 눈금은 언제나 다르고 달라야 한다는 것도 들꽃 언덕에서 알았다. |
흔들리며 피는 꽃 - 도 종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
봄꽃을 위한 론도 - 김 선광- 꽃에게 어떤 아픔이 있는 것 같다. 아무래도 적지 않은 아픔이 있어서 저리 눈부신 기쁨으로 함께 피어 나는가. 꽃에게 어떤 기쁨이 있는 것 같다. 아무래도 적지 않은 기쁨이 있어서 저리 눈부신 아픔으로 함께 지는가. |
가시나무도 꽃을 피운다 - 정 지완 - 내가 나를 받아들인 자리에서 열매가 열린다. 수만 개의 창을 빳빳이 세우는 나의 하루 최초에 나를 만든 당신의 목적을 몰라 내가 나를 찌르려 할 때 꽃 핀다 눈동자만하게 내 가시를 헤집고 날아오는 이의 몸집만하게 꽃 핀다 힘겹게 힘겹게 그리고, 꽃 진 자리에 불록볼록 배짱 좋게 튀어나오는 노란 열매들 나를 다스려낸 자리, 나는 향기로 안을 수 있다 |
꽃으로 잎으로 - 유 안진 - 그래도 세상은 살 만한 곳이며 뭐니뭐니 해도 사랑은 아름답다고 돌아온 꽃들 낯 붉히며 소근소근 잎새들도 까닥까닥 맞장구 치는 봄날 속눈썹 끄트머리 아지랑이 얼굴이며 귓바퀴에 들리는 듯 그리운 목소리며 아직도 아직도 사랑합니다. 꽃지면 잎이 돋듯 사랑진 그 자리에 우정을 키우며 이 세상 한 울타리 안에 이 하늘 한 지붕 밑에 먼 듯 가까운 듯 꽃으로 잎으로 우리는 결국 함께 살고 있습니다. |
제비꽃 곁에서 - 김 선광- 나의 사랑은 들꽃과 같았으면 좋겠다. 자주자주 새로운 아침과 저녁을 맞이하면서 곱게 지는 법을 아는 풀꽃이었으면 좋겠다. 긴 사랑의 끝이 오히려 남루할 때가 있나니 키 낮은 풀꽃 뒤에 숨길 수 없는 큰 몸을 하고 파란 입술의 제비꽃아. 나는 얼마를 더 부끄러워하면 되겠느냐. 내 탐욕의 발목을 주저앉히는 바람이 일어 깊이 허리 눕히는 풀잎 곁에서 내 쓰러졌다가 허심의 몸으로 일어서야겠다. |
풀꽃들의 행복 . 커다란 잎사귀가 팔을 벌려 안기운 플라타나스 가로수 아래 풀꽃들의 흩날림은 더욱 더 푸르렀다. 크로버 꽃들 속에 행운 지닌 웃음 시계 꽃 같은 행복한 몸짓. 구름무게 지나간 흔적 어딘가 세상의 힘겨움을 다 씻어간 풀꽃 웃음들은 행복한 얼굴로 빛 푸른 하늘만큼 산소를 뿌려 놓았다. |
꽃 - 정 호승 - 마음속에 박힌 못을 뽑아 그 자리에 꽃을 심는다 마음속에 박힌 말뚝을 뽑아 그 자리에 꽃을 심는다 꽃이 인간의 눈물이라면 인간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꽃이 인간의 꿈이라면 인간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