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서 바라본 도시의 아침
그 사내가 이렇게 외쳤다.
\"오늘은 좋은날\"
\"오늘은 좋은날이 될 것이다\"
\"오늘은 반드시 좋은날이 될거다\"
간격을 둔 세 번의 외침에 고개를 살짝 돌려 그를 훔쳐 보았다.
30대로 보이는 곱상한 얼굴의 젊은 남자가 두 팔 벌려 바다를 향해 소리 지른다.
스스로의 외침에 빠져들 모양이다.
200m 산 정상, 해송 사이로 해는 벌써 떠 오르고 은빛물결 출렁이는 바다가 확 트이는 기가 막힌
지점에서 하루의 시작을 다짐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5월 아침이다.
5시 10분 기상, 몸이 말을 듣지 않지만 부스스 깨어나 준비를 한다.
늘상 집을 나설때 쯤이면 \'오늘은 쉴까?\' \'아니야 움직여야지\' 이렇게 몸과 마음이 옥신각신
줄다리기를 한다. 산책로 입구 도착할 무렵 땀방울이 송송 맺히면서 내 몸의 사이클이
힘차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이름모를 새들의 노랫소리가 아침을 열어주고 있었다.
참 좋은 만남이다.
이 아침 아니 아침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이른 시각, 숲속에 들어서면 마주치는 키 작은 야생화에서
부터 새소리 바람소리와 자연의 순수향에 이끌려 1시간 넘는 \'참 좋은 만남\'이 줄줄이 이어진다.
내게 부여되는 행복감에 더 이상의 부러움은 지금 이 시간 아무 것도 없다.
해 뜨기 전의 고요와 그 분위기가 너무나 좋다. 짊어진 삶의 무게가 아무리 무겁다 할지라도 이런
발걸음으로 잠시나마 작은 위안과 행복감을 스스로 만들어 나간다. 호락호락하지 않는 삶에 질질
끌려가면서도 초록이 주는 즐거움에 내 표정은 그리 어둡지만 않나보다.
엊그제 우연히 동행하게 된 산악회원 한 분이 \'참 편안해 보여요. 전혀 고생이라고는 해 보지 않
은....\' 이런 말을 건냈다. 나름 힘들다고 지쳐있곤 하지만 비교되지 않을만큼 힘든 삶을 사는 이들
에게 어찌보면 나는 배부른 투정이라 말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시련은 비록
아니지만 말이다. 외관상 어두운 표정을 지을 것 까지야 있을까 싶어 늘 웃는 모습으로 일관하곤 한다.
시련과 함께 세월이 씌워주는 겉모습은 고스란히 껴안아야 할 내 몫이다.
춘 3월 흰색과 연보랏빛 노루귀가 키작은 야생화의 첫 문을 두드리더니 바통을 이어받아 지금은
각시붓꽃과 솜방망이 조개나물 은대난초 그리고 물푸레나무와 구슬댕댕이가 앞다퉈 꽃을 피우고 있다.
말없이 자리를 내어주며 다음 해를 기약하는 예쁜 것들, 이제 꽃 지고 초록으로 남아 가을 말미까지
산속을 색칠할 것이다.
송림사이 버슨분홍빛 철쭉이 커다란 꽃들을 뚝뚝 떨어트리고 남아 있는 꽃잎만이 오가는 이들을
기웃거린다. 저들끼리 때론 외면하면서도 똘똘 뭉쳐 사월을 드리웠던 시간들, 비바람에 흔들려
상처입혔던 날들도 모두 잊어버리고 늘 이렇게 다음을 기약한다. 먹칠로 망쳐버린 그림 한 장도
다시 그리면 되는 것을,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부분에 있어서는 살아가야 할 내 삶의 한 몫임을 감
안하고 껴안고 살아야 할 것이다. 묵묵히 오르는 산길에서의 명상은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
일상의 오욕이 한 번뿐인 삶을 조금씩 갉아먹을 때마다 한쪽으로는 채워 넣으려는 욕구가 일렁인다.
정중동, 동중정 이런 조화로움이 삶을 채워나가는 우리들의 일상인가보다.
푸드덕거리는 소리에 멈칫 놀라 걸음을 멈춘다. 청설모 두 마리가 먹잇감을 사이에 두고 커다란
나무에서 오르락 내리락 쟁탈전을 벌이고 있었다. 약육강식의 생존법이 동물의 세계만 있는 것이
아님을 그 누구도 모르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약자도 큰소리치고 잘 살수 있는 세상이 되면 참 좋겠다.
나무밑둥까지 내려온 청설모 한마리가 먹잇감을 차지하고 두 손으로 열심히 먹고있는 다른 한 마리
를 뚫어지게 올려다보고 있다. 쉽게 포기하지 않고 늘 도전하며 이기려는 승부욕은 자칫 마이너스를
부를 수도 있다. 좋은게 좋은것만 아니듯 포기할건 포기하고 다른 문을 두드리는게 현명한 삶의 한
방법임을 왜 모를까.
걸음을 빨리하여 도착 지점까지 수십 분, 여름을 가장한 봄은 요 며칠 뜨거운 더위를 뿜어냈다.
이제 초록들이 세상에 선뵈며 나타난지 얼마나 되었을까. 벌써 여름이라니, 30도를 웃도는 각 지역
의 날씨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그래서 더욱 이른 시각 찾게되는 산이다. 마침 아무도 없는 정상에
서 심호흡을 하며 다리를 가지런히 모으고 두 팔을 벌린다. 바다와 산내음이 아닌 아침냄새를 느끼려
눈을 감았다. 멀리 보이는 작은 배, 그림같은 정경 속에서 난 우뚝 서 있다. 뒤돌아 보면 먼 발치에서
두타산이 나를 감싸고 나는 바다를 껴안고 있다. 누가 봐도 멋진 그림 아니겠는가.
그래그래 그럼 되는거야, 그렇게 누려보는 작은 행복으로 힘듬을 덜어보는거야
누군들 힘듬이 없을까, 모양과 색만 다를 뿐 모두가 같은 흰 종이 위 그림일 뿐이야...
스스로 주문을 걸어본다.
몇 년 전부터 솔순이 몸에 좋다하여 조금씩 꺾어 황설탕에 재어 엑기스를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봄날 새순이 오르면서 하루가 다르게 쑥쑥 올라오는 솔순, 재작년 담아두었던 엑기스를 친정올케
언니한테 조금 주었더니 너무 좋다 한다. 그래서 매일아침 산에 들를때마다 조금씩 꺾어 보내주마
약속했었다. 꺾을 때마다 그 강한 솔향이 코 끝을 자극시킨다. 끈끈함을 막기 위해 낀 면장갑에
솔순도 들러붙어 봉지 속에 들어가려 않는다. 한 봉지 채울무렵 사나이의 외침에 고개 돌려 바라 본
나의 하루, 저 사나이의 주문처럼 나도 한번 외쳐보자.
그래 오늘은 좋은 날이다.
똑같은 날은 없다. 삶의 기복도 누구에게나 찾아들기 마련이다.
나의 힘듬은 힘듬이 아니다.
살 만한 세상이라 생각되면 그리 살면 그 뿐이다.
\"오늘은 반드시 좋은 날이 될 것이다\"
집 마당에 은방울꽃이 피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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