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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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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 차리기 싫은 여자.


BY 낸시 2008-05-04

\"여보, 얼른 일어나. 밥상 다 차렸으니 나와서 밥 먹어.\"
\"무슨 반찬인데...\"

\"다시마하고 멸치로 국물내서 무우국 끓였어.\"
\"어어~. 당신 그런 것도 할 줄 알아?  와, 맛있겠다. 나 얼른  나갈께.\"

 

요즘 이렇게 호강하는 날이 많다.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행여 큰 일 날까봐 차려진 밥상도 가져다 먹지 않았다는 남편이 나랑 산 지 삼십년이 가까워지니 참 많이 변했다.

 

허니문 베이비를 가졌던 나는 입덫이 심했다.

한 달 만에 몸무게가 52킬로에서 43킬로가 되었다.

그래도 남편은 이불 속에 누워 이렇게 물었다.

\"부엌에 나간 지 두 시간도 더  지났는데 왜 아직도 밥을 안 줘?\"
\"글쎄, 나도 몰라. 이 그릇 들어서 저기 두고 저 그릇 들어서 여기 두고 하고 있어.\"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결혼하면 사랑만 먹고 사는 줄 알았다.

 

집들이도 아이들 백일과 돌잔치도 큰언니가 와서 음식은 해 주고 나는 인사만 하라기에 그렇게 했다.

맞벌이에 연년생 아이들을 키운다는 핑계로 남편은 친구들을 집으로 부르지도 않았다.

직장을 그만 두고 처음 손님을 치르던 날 시장에 간 남편이 물었다.

\"손님을 초대해 놓고 그렇게 넋을 놓고 있으면 어떻게 해?\"

\"나도 몰라. 무엇을 사야하는 지 모르겠어.\"

결국 같이 같던 남편 직장 동료가, 남자였었는데, 이것 저것 사라고 가르쳐주어서 시키는 대로 사가지고 집으로 왔다.

시간이 되고 손님이 오고, 그것도 남편 직장 상사들이 부부동반해서, 음식인지 아닌지 알쏭달쏭한 것을 먹고 돌아갔다.

 

부엌 일이 싫었다.

엄마가 수저를 놓으라고 하면 아버지를 따라 논으로 밭으로 달아났다.

배가 고파도 내 손으로 밥을 차려 먹긴 싫었다.

온 동네를 뒤져 엄마를 찾았다.

\"엄마, 밥 줘.\" 이 말에 모여있던 동네 아줌마들이 와르르 웃었다.

그 시절 시골 동네에서 스무살이 넘은 여자애가 할 소리가 아니었으니까...

엄마를 찾으러 다니기 싫으면 남동생에게 밥 좀 차려 달라고 부탁했다.

늦동이 외아들이라고 떠받들려 자란 남동생이 부엌으로 들어가 밥을 차려다 주었다.

 

미국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던 아들이 물었다.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뭐야. 숙제야.\"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내 손으로 만들지 않은 것이야,\"
아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툭하면 온갖 핑계를 대고 외식하기 좋아하는 엄마다운 대답이라고 생각했던가 보다.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던가... 남편 따라 떠돌며 전업주부로 산 세월이 길어지면서 손님 치르는 일이 그닥 어렵지 않았다.

뒤늦게 이민을 결정하고 무엇을 하고 사나하는 문제에 부딪쳤을 때  식당을 해도 좋다는 생각이 들 만큼 음식하는 일이 만만하게 되었다.

딸은 엄마가 음식하기를 싫어하는 사람임을 잊지 않았던가 보다.

식당 뒤 벽에 낙서를 하였다.

-울 엄마는 음식하는 것이 싫어 식당을 열었답니다.

음식하기가 싫어 외식을 좋아했지요.

그런데 값싸고 조미료가 들어가지 않고 건강한 음식을 파는 식당 찾기가 힘들었대요.

전업 주부 노릇이 지겨워지기도 했구요.

그래서 이렇게 말했답니다.

\"나같은 사람을 위한 식당을 열어야겠다.\" -

우리 식당에 오는 손님들이 나보고 정말이냐고 묻는다.

 

식당하는 사람은 밥을 제대로 먹기가 어렵다.

식사시간에는 장사에 바쁘고 나중에는  배가 고파도 하루 종일 바라 본 음식에 질려 입맛이 없다.

더구나 밥 먹는 일에 열심인 사람이 아니라서 굶는 일이 허다하다.

드디어 남편이 식당 음식이 아닌 홈메이드로 밥상을 차려 놓고 날 유혹하게 된 이유다.

이유야 어떻거나 남편이 차려 준 밥상을 받는 일은 행복하다.

굶을지언정 내 손으로 차려먹기 싫은 여자에겐 더욱 더 행복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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