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결혼식을 마치고 신혼여행 다녀온 애들을 이바지 음식 해서 시댁에 인사
다녀온 후에 첫 휴일.
어리벙벙한 상태에서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한 탓인지
긴장도 덜 풀리고 장모님이나 장인어른이란 호칭도 서투른 젊은 우리 부부가
지난 해 갔던 화개장터를 다시 가 보기로 했다.
섬진강 줄기를 타고 달리는 고속도로 변도 아름다왔고
유채 꽃 길도 강 모래도 부드럽게 우리의 휴일을 축복(?) 해 주었다.
잔잔하고 부드러운 섬진강물은 부드러운 모래와 더불어 편안함을 주었고
강 주변에 심어 둔 유채가 한창 이쁘게 피어서 봄 바람에 작은 몸짓으로
봄을 노래하고 봄을 만끽하게 했다.
아침을 막내 등교시키면서 뜨는둥 마는둥 대충 해결하고 나서서인지
중간 쯤에서 배는 고팠지만 화개장터에서 멋지게 먹자하고 참았다.
상춘객까지 합세한 화개장터는 여전히 붐비고
산나물에 봄 나물까지 가지가지 만물상인데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난 또 봉지봉지 반찬을 사 모았다.
두릅에 햇고사리, 더덕에 둥굴레 볶은 것, 야생 녹차잎과 이름 모를 나물...
양 손에 넘치도록 봉지봉지 사 들도 장을 휘~~둘러보는데
여기 있었네~~~~
봄만 되면 나는 도지는 병이 있어.
남편도 인정하는 고질병.
양 손에 사 들은 반찬을 땅 바닥에 내려놓고
꽃집 앞에 쪼그리고 앉아 야생화며 금낭화 허브까지
십 여개를 골라내서 쪼르르 줄을 세워뒀다.
꽃집 주인한테 계산을 부탁하니
\"좀 많이 사셨네요 .ㅎㅎㅎㅎ
집에 꽃이 많은가 봐요.
꽃이 많으신 분이 꽃도 많이 사 가시더라구요.\"
맞아요.
우리 집에 꽃 무지 많아요 .ㅎㅎㅎ
혼자서 쿡 쿡 웃으면 꽃 값을 계산하는데
야생난의 값이 생각보다 비쌌고
허브 종류도 일반 꽃집보다 평균 1000 원 정도 씩은 비쌌지만
관광지의 이름값이라 생각하고 그냥 지불 했다.
깍자는 소리 없이 돈을 다 지불하니 덤으로 작은 야생화 한 포기를 주신다.
아싸~~~
반찬거리가 이미 양손 가득인데 화분 몇개까지 합세하니
남편의 두 손도 넘친다.ㅎㅎㅎ
그런데 꼬르륵.........
아침도 굶고 점심 때도 제법 지난 배에서 밥 넣으란 신호가 동시에 온다.
보따리 보따리를 주렁주렁 들고 이름도 토속적인 식당으로 들어갔다.
옆 개울이 훤~히 내려다 뵈는 제법 운치있는 식당에서 하동 명물이라고
크게 써 붙인 꽃게장 정식을 주문하고 해물파전도 한장 곁들여 주문.
잠시 후 도착한 꽃게장 정식이란게.....
달랑 꽃게 한마리에 밑반찬은 시장에서 파는 조림반찬 두세가지와
신 김치 한 접시,호박 무침 한 접시와 멸치 볶음이 전부다.
그래도 명물맛은 어떤지 음~~~~
아~~우 짜 , 짜 , 짜다.......
원래 잔장 게장이 짜긴한데 얼마나 달이고 또 달였으면 콩알만큼
작게 젓가락으로 찍어서 밥을 먹어도 혀 끝이 짠 맛 밖에 못 느낀다.
고소하고 달작찌근한 꽃게장 맛을 상상했던게 오산이었다.
파전은 굵은 수입 오징어 다리 몇토막만 파 줄기 사이에 끼어있고
매운 고추 몇조각 , 당근 채 몇 줄기가 끝이다.
관광지 음식점도 요즘은 명예를 걸고 맛깔스럽게 잘 하더니만
이건 아니다 싶었다.
밥 공기의 밥은 가장자리엔 벌써 말랐고
아침에 새로한 밥이 아닌 듯 오래된 밥 특유의 냄새까지 났다.
실망스런 점심을 하고 보따리 보따리를 차에 싣고 집으로 오는 길에
최참판 댁으로 역사기행을 갔다.
멀리서 봐도 꽤 많은 관광객들이 깃발까지 들고 일행을 인솔하며
\"토지\"의 무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입구에 도착하니 입장료를 내란다.
일인당 1000원씩.
당연히 남편이 낼 줄 알고 멀뚱 섰는데
\"나 , 돈 없어~당신 아까 화개장터에서 그 돈 다 썼어?\"
\"그~럼, 반찬 사고 꽃 사고 했는데....\"
우리 둘은 서로 돈이 있겠지 .....하고 입구에 왔는데 어쩔꺼나 어쩔꺼나....
둘이서 지갑을 뒤지고 주머니란 주머니를 다 뒤져도 지폐라곤 없었다.
매표구 입구에서 둘이서 이리저리 옷을 까 뒤집으며 이 잡듯이 하다가
웃음도 나고 어이도 없고 ㅎㅎㅎㅎㅎㅎ
할 수 없이 차로 돌아와서 조수석 앞 서랍으로
뒷좌석으로 돈을 찾아 삼만리를 하는데 아 !!!!있다 있어.
남편이 톨게이트를 통과하면서 시가짹을 꼽는데 던져 둔 동전이 빤짝.
금은 보화를 찾은 기분이었다.
하나 .. 두 울...백원 이백원 아~~싸 오백원 짜리가 두 울.....
이리저리 맞춰보니 3000 원도 넘는다.
입장료 2000원을 내고도 남는 돈으로 우린 갑자기 부자가 된 기분.
당당하게 매표소에 동전 2000원을 주고
\"입장권 두장요~~\"
씩씩하고 보부도 당당하게 최참판 댁으로 올라갔다.
올라가면서 길가에 있는 샘물도 한 바가지씩 받아먹고
낮에 간장게장이 많이 짜긴 짰었나 보다.
평소에 할머니들의 고혈압과 당뇨때문에 음식의 간을 심심하게만 먹다가
밖에서만 먹으면 물을 자주 마시게 된다.
한 사람의 작가로 인해 소설이 나오고 그 소설의 무대가 된 마을과
최참판 댁은 드라마로 관광지로 지역의 솔솔한 수입원이되는 명소로 그듭
나 있었다.
어쩌면 나도 최서희랑 무슨 연관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왜?
나도 성씨가 최가니까....ㅎㅎㅎㅎ
고만고만한 소작인들의 집은 다 엎드린 형국인데
최참판 댁은 정말 마을이 다~내려다뵈는 , 한 눈에 마을의 움직임이
다 보이는 대궐같은 큰 기와집이었다.
여러 채로 나누어진 양반가 중에서도 부잣집의 모양을 위엄있게 갖춘
집이라기보단 어떤 요새같은 느낌이랄지.....
소설을 봐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소설가 박 경리씨의 약력이 프린트된 대형 스크린엔 웃으시는 사람 좋은
얼굴도 환하게 걸려있었다.
안채, 사랑채, 행랑채, 별당, 사당.....
목재와 기와로 선도 우아하게 잘 지어진 집에 높은 마루.
적당한 자리에 멋지게 들어선 각 처소엔 문화재급의 보물처럼 잘 정리된
건물들이 관광객들에게 그 대의 감격을 같이 느끼게 해 주었고
뒷 산에 따로 문학관을 열어서 하동을 , 섬진강을 배경을 쓴 다른 작가들의
작품도 소개하는 영화관 같은 문학관이 있어서 하동을 잘 소개해 주고
있었고, 한창 피기 시작하는 연산홍과 유채 , 진달래가 문학관을 더욱
빛내주고 있었다.
하산해서 내려오다가 하동읍내에서 농협 24 시간 서비스 코너에서 현금을
인출하면서 다시 부자가 된 기분으로 집으로 향했다.
해~~는 져~~서 어두운데.....
찾~~아 오~~는 사람없어....
우리는 해가 져도 찾아 갈 집이 있고
우릴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는 집으로 간다.
도중에 남편이 무지 좋아하는 복 샤브샤브를 먹는데 아......
이건 아니잖아 ....이건 아니잖아.
복 샤브샤브에 야채도 너무없고 (배추 몇 줄기에 새송이 세 조각이 야채의
전부였다. 세상에나 세상에나....)육수는소금공장이고.
곁들이 서비스는 엉망인 곳에서 간판만 보고 들어온 걸 대 후회.
가격만 복 샤브샤브라고 엄청 비싸고......
차라리 자갈치시장 뒷골목의 4500원 짜리 고등어정식 보다 훨씬 못하다.
가끔 쉬는 날에 자갈치 시장엘 가면 회도 먹고 오지만 뒷골목의 고등어정식
을 못 잊어서 자주 먹고 온다.
싱싱한 고등어를 아침일찍부터 간해 뒀다가 즉석에서 철판에 구워 금방
버무린 겉절이 김치랑 된장뚝배기 , 무 생채 , 자갈치 젓갈 , 기타 밑반찬
두어가지랑 주는데 얼마나 푸짐하고 맛있는지 모른다.
값비싼 한정식 집보다 더 인간적이고 좋은 것은 뭐든지 더 많이 달라고
해도 즉각 대령해 주고 구수한 숭늉도 한 바가지 갖다 놓는다.
남편은 어릴 때 내가 먹든 영덕게를 실컷 사 주는게 소원인 사람이다.
내가 하도 맛있어 하고 좋아하는 영덕게를 밖에 나가기만 하면
사 주겠다고 하고 난 말리고.......
벌써 얼마나 많은 날을 이 사건 때문에 삐지고 달래고.......
나는 말리고 남편은 또야? 하고 삐지고.
밖에서 영덕게를 먹으면 비싸도 너무 비싸.
아예 돈을 수표로 들고 가야하니 어떻게 실컷 먹고 오겠냐고.....
가끔 친정에 가면 엄마는 영덕게로 된장찌개를 해 주신다.
고향이 경주라 감포와 영덕이 가까운 거리여서 어릴 때 싱싱한 게 찌개와
삶은 게를 많이 먹으며 자라서 그 맛을 잊지 못하고 늘 그리워 했더니
생일만 되면 영덕에 가잔다.
어린 날엔 감기가 걸려도 편두선이 부어서 열이나도 영덕게만 먹으면
모든 병이 다 나을 정도로 난 게를 좋아했다.
신혼 때는 내가 친정에 가면 큰 오빠가 게를 한 아름 사 오시기도 했다.
생일이 겨울이라 맛도 있을 철 이지만 그긴 벌써 관광지가 되어 값이 너무
올라있고 우리 가족이 다 먹으려면 아이구야.....
그래도 내가 워낙에 좋아하다보니 서너번 영덕엘 갔다오긴 했다.
몇해 전 신정 때와 평일에.
산지에서 바로 잡아 삶아 먹는 게 맛이란 입에서 살살 녹아요 녹아...
참지 뭐, 내가 좀 참고 나중에 진짜 부담 없을 때 쯤 한 번 먹자고.
시어머님의 사촌 언니가 영덕에 계셔서 가끔씩 삶은 게를 냉동시켜서 보내
주신다.
그러면 다시 채반에 얹어서 한 김을 올려서 먹으면
명색이 영덕게라 얼마나 달고 향긋하고 맛있는지...
며칠 전에도 커다란 아이스박스로 한~가득 왔다며 우리에게도
큰 걸로 몇 마리 보내 주셔서 둘째만 빼고 실컷 먹었네~~~
쉬는 날이면 주로 찜질방에서 그야말로 휴식을 즐기는 걸 원칙으로 하는
우리가 하동에서 진짜 가난해져서 당황했던 일.
대책없이 뭘 사들고 계산없이 지냈던 일.
웃음이 나는 일이고 좋은 추억이 되겠지.
그 때 산 야생화는 잔잔한 비를 맞으며 싱싱하게 잘 자라고 있다.
허브는 향을 , 꽃은 자잘한 작은 꽃을 피우며 추억을 공유한다.
이렇게 쉬는 날에 5일 장에서 사 모은 꽃화분들이 장날 사 모은 것들과 합하
면 크고 작은 화분들이 얼추 200 여개 쯤?
다 살아있었다면 엄청나겠지만 중간에 관리소홀 내지는 생태를 잘
몰라서 물을 너무 많이 주거나 덜 줘서 죽여버리고
그 중에서 강한 것으로만 남아 있는데도 작은 수량은 아니다.
봄 부터 가을 까지는 너무 행복하고 늦 가을부터는 고민이 슬 ~슬...
저 많은 화분들을 어디에다 간수 하냐?
그래서 겨울만 되면 앞 베란다로 거실로 2층 우리집 올라 오는 계단으로
온통 화분들의 진열장이 되어야만 한다.
가벼운 꽃 화분은 덜 한데 돌 확이나 항아리 큰 것들은 물을 다 퍼 내고
돌은 밖에 그대로 , 항아리는 수련 뿌리를 보호하기 위해
보온이 되는 베란다에 넣을라치면 무겁기가 장난아니다.
해마다 겨울이면 복잡한 베란다.
그래도 군말 없이 아내의 꽃잔치를 잘 이해해 주는 고마운 남편.
강원도에서 큰 딸이 공부하고 있을 때
메일이나 미니홈피에 방명록을 적으면서 늘 꽃소식을 먼저 적었었는데
이번에 딸이 결혼을 하면서 그랬었다.
\"엄마 , 나도 우리 베란다에 꽃 키울래요.
엄마가 오늘은 무슨 꽃이 피었구나
오늘은 무슨 꽃이 피려는구나
어떤 색, 어떤 모양으로 피었구나
하고 적은 편지에 미소를 짓곤했어요.\"
그랬구나......
엄마는 엄마가 좋아서 꽃자랑을 했는데 딸은 객지생활에서
엄마의 정원을 떠 올리고 엄마의 향기를 느끼고 있었구나.
마침 딸의 아파트 앞 공터에 꽃을 파는 트럭이 늘 주차해 있다면서
집이 정리되면 허브랑 작은 꽃들이 피는 화분을 사겠단다.
가까우면 엄마가 골라서 사 줄텐데.........
넓은 옥상 내 정원에도 볕이 잘 드는 남향베란다에도
석부작에서 부터 크고 작은 난화분,야생화 , 주물럭 화분에 심긴 자잘한
꽃들. 홍수가 끝나고 지난 산에서 힘들여 구해온 오래된 고목의 뿌리에
풍란이나 아이비를 심어 전혀 다른 느낌의 나무로 변신한 장식까지
오늘도 그 꽃들의 향연에서 힘든 낮 동안의 피로를 다 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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