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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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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채죽 이야기


BY 낸시 2008-03-21

샤론이 말했다.

\"치과에서 사랑니 빼고 나면 단단한 것은 못 먹잖아요. 그런 사람을 위한 음식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며칠 전에 단골 손님 중의 하나가 무엇이든 무른 음식을 찾던 생각이 났다.

그도 그 날 사랑니를 뺐다고 하였다.

나야 사랑니가 뿌리조차 없는 사람이라 하고 충치하나 없긴 하지만 좋은 생각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럼 한번 만들어 보자.\"

우리 가게엔 채식하는 사람이 많이 모이니까 기왕이면 채식주의자도 먹을 수 있는 것으로.

식당이니까 커다란 남비가 있다.

쌀 한말 정도는 넉끈이 밥을 해 낼 정도의 크기 남비가 여러개다.

큰 남비를 불에 올리고 양배추는 큼직하게 4토막을 내어 넣었다.

양파는 반으로 뚝 자르고 껍질을 벗겨 넣었다.

당근은 씻어서 머리, 꼬리만 자르고 껍질 채 통으로 넣었다.

마늘도 넉넉히 넣고 샐러리는 실이 있으니 조금 잘게 잘라서 넣고 물을 부어 푹 삶았다.

손으로 주물러 죽처럼 될 정도로 서너시간 푹 삶았다.

단호박은 단단해서 자르기 힘드니까 따로 삶았다.

젓가락으로 찔러보아 푹 들어가는 것을 보니 그만 꺼내도 좋을 것 같아 불을 끄고 물에서 건져 식혔다.

식은 다음 넷으로 자르고 씨를 빼내고 껍질은 영양가가 높다니 그냥 두고 손으로 주물러 솥에 같이 넣고 끓였다.

팔다 남은 현미밥은 녹두콩을 넣고 다시 푹 삶았다.

같이 삶으면 바닥에 눌러 붙을까봐 물은 넉넉히 넣고 따로 삶았다.

현미가 죽처럼 퍼진 다음 다른 야채와 같이 섞고 소금을 넣고 다시 한소큼 끓였다.

단골 손님들에게 먼저 맛을 보이니 맛있단다.

그 다음엔 이름을 뭐라고 지을까...

야채죽이라고 이름을 지으면 미국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뚱 할테고 뭐라 해야 하나...

샤론이 자원봉사를 하는 치과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데리고 왔다.

의사들도 있었다.

그 중의 하나가 그랬단다.

우리 가게가 작고 예쁘니까 동화 속의 이름을 따면 어떠냐고.

그래서 우리집 야채죽 이름은 three bear\'s porriage가 되었다.

누구나 알고 있는 동화 골디락과 쓰리 베어에 나오는 죽 이다.

그 다음 어떻게 그럴 듯한 설명으로 사람들을 유인해서 맛을 보게 하는가...

상상력은 풍부하지만 나사가 하나 빠진 듯해서 가게 안에서 일을 시키가 어려운 노총각이 있다.

우리 가게에서 일을 하다 나한테 말대꾸를 하다 쫓겨났다.

넉살이 좋아 쫓겨난 다음에도 가게를 찾아왔다.

미안한 마음도 있고, 그 마음씨가 선량한 것도 알고 해서 올 때마다 공짜로 음식을 주었다.

그에게 부탁했다.

그럴 듯한 설명을 만들어 보라고...

\'너무 뜨겁지도 차지도 않고...적당합니다.

녹두콩과 단호박, 양파, 양배추,샐러리, 그리고 신선한 마늘과 현미를 넣었습니다.

오랫동안 사람과 배고픈 동물들에게 사랑 받았지요.\'

그가 만들어 낸 설명이다.

이렇게 탄생한 우리 가게 야채죽 색깔이 참 곱다.

노란 호박이 망울망울 보이고, 빨간 당근도 멍울멍물 보이고, 양파와 양배추 그리고 마늘은 밝은 빛 배경을 만들어 내고 현미도 풀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제법 모양을 더한다.

이런 날 카메라로 한장 찍어 올리지 못하는 무식이 한스럽다.

맛있기도 하지만 참 예쁜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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