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방앗간에서 쌀을 갖다줬다.
밥을 했다.
먹어보니 우리쌀이 아니다.
남편은 또 바꿔쳤다고 이걸 어떻게 먹냐고 역정을 낸다.
햅쌀이 아닌 묵은 쌀을.
난 그래도 밥을 한다.
우리가 아니면 누가 이 밥을 먹을까 생각한다. 심각하게..
2.
내 차를 또 누가 박았다.
이 번이 세 번째다.
그런데 차범퍼는 너덜너덜하기만 하지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은 한 번 유심히 보더니.
니 또 어디서 차 빠졌었냐?
헤헤...후진하다 전봇대에 쾅! 했어...
어휴..그 전봇대가 더 비싸다구?
근디 그 면허는 푼수냐? 어째 후진을 그렇게 못하냐?
그래..난 푼수면허증이 운전면허다. 히히..
3.
우체국에 갔다.
하필 말일날 번호표를 들고 앉아서 보니 삼십명은 넘게 대기하고 있었다.
한 할머니가 큰 박스를 질질 끌고 들어오신다.
택배를 보낼려니 너무 크다고 화물로 부치란다.
집에서 써 온 주소를 다시 쓰란다.
아마 아들네집에 이 것 저 것 고루 고루 싸서 보낸 나물이며. 곳감이며..뭐 그런게 줄줄이
다른 상자에 옮긴다.
그러고 보니 전화번호를 적으란다.
모르는 디..
\"그럼 안 되는 데유..\"
내 옆으로 오시더니 당신 치마를 제치고. 속바지를 뒤지더니 손수건에 싼 손전화를 꺼내시는 데.
나를 보시더니 전화를 주시면서 해 보란다.
빙그레 웃으며 통화키를 누르니 나의 손자하고 이름이 뜬다.
\" 야..니네 전화번호가 뭐냐?\" 목소리도 우렁차시다.
우체국이 갑자기 소란하다.
뭐라구..야야 여그 아저씨한테 불러줘라..가만히 보니 가는귀를 잡수셨다.
그렇게 보낸 화물택배를 부치고 다시 나에게 오시더니
\" 새댁은 어디서 살어? 내가 신세를 지면 갚아야 제!\"
헤헤..괜찮아유..뭘 그런 거 같고..
나가셔서 난 가신 줄 알았더니 붕어빵 한 봉지를 다시 들고 오신다.
우체국에서 붕어빵을 먹고 돈 찾아 오는 데
내가 지금 뭘 하러 여길 왔는 지 한 참후 생각났다.
말일인데..세금내러 간 건디...
4.
총각김치가 진짜 맛있게 되었는 디..이게 넘 많어서..니 지금 어디냐? 김치 가져가라..
아휴..언니는 무신 김치를 그렇게 많이 담은 겨? 주체를 못 혀? 나 언제갈까?
원체 살림백치에 날라리주부라는 거 울 동네 언니들은 나를 그렇게 알고 산다.
나도 그런 게 편하고.
가면 청국장을 띄워서 냉동실에 얼린 것 몇 덩이하고. 잘 아는 사람이 이쁜 옷을 몇 벌 줬는 디
적다고 천상 니 옷이라고 한 보따리 주고. 거기다가 된장찌게를 시래기를 넣고 오래 오래 끓여
밥 두공기를 먹어서 배가 내가 봐도 한 임신 한 것 같다고 헤헤 웃으니..이거 졸리다.
뜨듯한 아랫목이 아직 언니네는 연탄아궁이가 있는 안방에서 퍼질나게 잤더니 꼭 어렸을 때 지낸 겨울나기로
돌아온 듯하다. 차에 김치며 옷이며 마른반찬통에 실었는 데도 언니는 내내 대문앞에서 잘 가라고 손 흔들어 주는 걸 보고
나도 마주하듯이 손을 흔들고..
집에 돌아오니.울 남편 총각김치 맛있다고 누가 준 겨?
히히..내가 담은 거라고 거짓말해도 안 믿을거고..그래도 좋다. 오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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