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찔했던 순간들
일주일간의 휴가를 마치고 돌아왔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늘 같이 휴가를 보냈는데 이제는 서로의 일과 학업이 달라서
시간을 맞추기가 어렵다.
남들 다 가는 피서는 못가고 늦 가을에 아쉬움이 남은 단풍산을 실컷 보는 영광(?)을 누렸다.
전라도 내장산으로 속리산으로 지리산으로 ....
부근에 있는 큰 산은 거의 다 둘러보는 부지런을 떨었다.
물론 도보는 아니고 자동차로 가는데 까지 가고 나머지는 걷는 형식으로 수박 겉핥기.
한창 이쁜 단풍색은 바래서 있었지만 그래도 찾아간 보람은 있어 빨갛고 노오란 단풍들은
늦깍이 단풍놀이객들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얼마나 사람들이 구경에 열심인지 가는 곳 마다 사람들의 물결에 휩쓸여서 떠 다닌 기분이다.
벌교 꼬막축제는 소문 듣고 기대를 잔뜩하고 물어물어 내비게이션에 의존해서 갔더니
생각보다 참꼬막 가격이 비쌌고 맛도 좀 짠 것 같아 조금 실망했다.
축제마당에는 어느 축제나 다 있는 좌판 노점상들이 더 많고 노래자랑을 하는 마당에는
한사람이 일분도 채 못 부르고\" 땡,\"\" 딩동이\" 결정나는 날치기 노래자랑이고.
먹거리 마당에는 한판 지나간 빈 꼬막 껍질과 먹다 남은 수육 조각에 파리가 앉았다 날랐다
절편조각도 몇점 보이고...
점심으로 꼬막정식을 시켰는데 갓 삶은 꼬막이 어찌 짜든지....
말로만 듣고 궁금해 하다가 막상 와 보니 큰 기쁨이 못 되었고.
순천만의 갈대축제도 철이 조금 지나서 한창 이쁜 모습에서 막 시들어 가는 모습 뿐.
어마어마한 인파에 떠 밀려서 산책로를 걸었었다.
그래도 그 긴 산책로는 무척 인상적이었다.
낮에 그것도 조금 이른 시기에 봤더라면 무척이나 환상적이었을 것 같다.
남해바다에서의 낚시는 정말 좋았다.
배를 타고 바다 복판으로 가서 낚시를 위해 지은 집에서 몇시간씩 낚시를 하는데
유속이 바른 남해는 육질이 쫄깃쫄깃한 어종이 많아 회 맛이 끝내줘요.
갓 잡은 고기로 회를 준비하고 광어와 우럭도 같이 횟거리로 장만해서 저녁을 먹었는데
내륙의 시장에서 먹는 회랑은 비교가 되지 않는 진짜 회 였다.
화개장터!
조영남씨의 노래가 대 히트를 치면서 유명해진 화개장터는 이제는 아랫지방의
명물이 되어 관광객들이 북적대는 일반 상설시장이 되어 있었다.
촌 아짐씨가 그것도 모르고 며칠에 한번씩 장이 서느냐고 물었더니\" 항시 섭니다\" 한다
국화 말린것도 사고 동이감도 한접사고(105개나 받아왔다) 찐쌀도 좀 사고,마른 표고버섯도
큰 봉지로 하나 사고 뭐 올망졸망 많이도 샀다.
이 구석 저 구석 고개를 빼고 돌아다니는 나를 보고 남편은
\"아주 생기가 돌아요,돌아. 살판 난 모양이야?\" 하고 웃으면서도 연신 디카의 셔터를 누른다.
삼천포어시장에서는 또 어떻고?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온통 찬거리가 널려 있어서 신이 나서 이것 저것을 사 모은다.
며칠 비워둔 나의 빈 자리를 맛나는 반찬으로 채우려고 말린생선, 젖은생선, 굴, 여수 돌산갓.....
이리저리 돌고 돌며 반찬거리를 양손 가득 봉지봉지 사 들고 섰는데 내가 봐도 웃긴다.
다른 것은 하나도 안 사고 온통 찬거리 뿐이니....
직업이 이런 곳에서도 들통이 나니.
아~~아참.
제목이랑 너무 멀리 갔다.
지난번에 모텔 풍경을 잠깐만 얘기했는데 이번에는 진짜다.
부산 송도 물침대 모텔을 올라갔는데 복도에도 붉은등을 켠 성인용품판매대가 있었고
방에도 벌겋게 불을 밝히고 들어 앉았다.
만약에 아이들과 같이 왔더라면 방은 안 들어가면 몰랐다 치더라도 복도에 있는 것은?
생전 처음 보는 희안한 모양의 기구들이 붉은 등 아래에서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무슨
무기처럼 떡 버티고 서 있다.
어떤 물건을 어디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아 볼 생각도 없이 외면을 하고 방에 들어가니
세상에 방 키를 꼽자마자 그 자판기의 벌건 불이 먼저 들어오니.....
대여섯가지나 되는 요상한 기구들이 방 한곳을 점령하고 날 좀 보소를 외쳐대니.
남편도 생전 처음보는 기구에 웃음을 참지 못하고 나는 아예 혐오스러워서 타올로 벌건
불을 가려 버렸다.
그기까지는 또 그렇고....
순천의 프라다라는 명품의 모텔이름은 이름만 명품이고,
아예 1층 안내실 입구에 가면극에 쓰이는 가면들이 맑은 유리진열장에 주ㅡ욱 들어있었다.
어떤 초등학생 둘이서 신기한 듯 진열장을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구경하고 서른 이쪽저쪽
쯤 되어 보이는 청년이
\"얘들 보기가 좀 민망스럽네요잉\"
남도사투리로 고백한다.
도대체 그 가면은 어디다 쓰는 물건인고?
한참전에 주간동아에 대서특필 되었던 그런 불륜의 현장에서 파트너의 얼굴을
가리는데 쓰이는 물건이 바로 저것이란 말인가?
숙소를 잘못 정했다라는 우울함 때문에 그 밤이 정녕코 편치를 못했다.
시골 아줌마는 모랐더라면 더 좋았을 너무 많은 것을 보고야 말았다.
그래서 밖에서 자게 될 때는 가격이 조금 부담스러워도 팬션을 선호하는 편인데 닷세를
자면서 이틀을 팬션에 머물렀고 사흘은 어쩔 수 없이 모텔에 잤는데 울적했다.
남해의 팬션은 비수기라서 한산하고 바다가 바로 방에서 슬리퍼만 신으면 산책도 가능해서
떠 오르는 아침해의 따스한 빛으로 잠이 깬듯하다.
무안의 비행장 팬션도 복잡한 유원지를 벗어나서 조용하고 정말 휴식이 필요한 사람의 숙소라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는데....
앞으로는 미리 남편을 올려 보내서 사전 답사를 시키고 숙소를 정해야 할 것 같다.
거의 모든 숙소에 성인채널이 잡혀서 언제 한번은아이들이 조금 어렸을 때
\"이 집에는 티브이 시청료가 30분에 만원이래~~~.그러니까 숙박비보다 훠~얼~씬 비싸대\"
이렇게 엄포를 내리니 순진한 아이들은 (맏이가 중 3쯤?) 아무도 티브이를 안킨다.ㅎㅎㅎㅎ
이제는 엄마아빠의 거짓말을 눈치 챘으리라.
좌우지간에 이번 일주일간의 휴가 기간중에 경험한 사건들은 몰라도 살아가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을 일들 일진데 알고나니 영 찝찝하다.
.
.
.
아~그리고 망초님!
시골이 부러우시면 언제든지 놀러 오세요.
거하게는 못해 드려도 시골밥상은 차려 드릴께요.
큰 항아리의 된장 푹 퍼내 와서 호박순으로 된장국 끓이고
고등어 자반 두어마리 짭짤하게 땡초 넣고 자작하게 찌지고
뒷밭에서 상추 뜯어 설렁설렁 씻고
갓 만든 두부에는 삼겹살에 신김치넣고 더글더글 볶아서 곁들이고
늙은 호박 쓱쓱 긁어 노릇노릇 호박전 부쳐 소박해도 소화 잘 되는 밥상 차려 드릴께요.
같이 오고픈 친구분 들이랑 꼭 한번 오세요.
언제든지요.
시골에서 올려 보내는 초대장입니다.
아컴의 님들도 오고프면 누구라도 좋아요.
노오란 은행잎에 띄우는 우표없는 초대장 입니다.
예약하고 오셔야 합니다.
선착순이고요.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