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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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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로그 엄마와 디지털 딸


BY 그대향기 2007-10-22

야자시간에 둘째의 높은 음성이 전화선을 타고 울린다.

얘는 그냥 조용조용 얘기하는 법을 모르는지 수화기 너머에는 기차라도 굴러 가는지

온통 꽥꽥이 부대가 한 소대는 있는 것 같다.

\"엄~마!\"

수화기를 귀에서 멀리 떨어지게 하고 서야 제대로 또박또박 들리는 딸의 목소리.

아직은 지에미 귀 잡술 나이도 아니건만 꼭 고함을 질러대며 얘기하는 둘째.

목소리가 아주 통통 튀다 못해 산에서 큰 바윗덩이가 급속한 급경사를 내리 달리는 소리가

난다.

말의 속도도 고속철도보다 훨씬 빠를 것 같다.

크고 빠르고 온통 수선스럽고 혼을 빼 놓을 듯이 한꺼번에 모든 말을 와르르 다 쏟아낸다.

며칠전에 2주만에 기숙사에서 나와 집에서 하룻밤 자고 주일에 기숙사로 들어 가면서 교복 자켓을 두고 갔다고 학교로 택배 부쳐달라기에 옷 옆에다 단감도 몇개 넣고 포도즙도

몇봉지 넣고 엄마 얼굴이 크게 나온 사진도 틀에 넣어서 같이 보내면서 편지를 몇자 적어서

같이 택배로 보냈다.

기숙사에서 제일 그리운게 과일과 야채, 쇠고기 불고기라 하기에 기숙사에서 나오는 날에는

푸줏간에서 쇠고기 사다가 양념에 재워 놓았다가 후라이팬에서 굽기도 하고 야외에서

숯불에 구워 주기도 하는데 얘는 고기를 몇 인분은 혼자서 해 치우는 고기 마니아.

삼겹살도 혼자서 족히 1kg은 넘게 먹어 치우는 대 식간데 허리는 날씬한게 엄마가 약오를

정도라 고기를 많이 먹어도 그냥 둔다.

아직은 다이어트 할 시간이 아니다.

수능까지는 체력이 뒷받침 되어야 하기에 자꾸 먹어라 먹어라를 노래처럼 하니까 딸은

자기를 포기했냐고 섭섭하단다.

 

아무튼 택배로 간 딸의 옷도 중요했지만 그기에 적어서 보낸 편지를 보고 같은 반 친구들이

울었다고 딸은 재잘조잘 한참을 떠든다.

엄마가 너무 보고싶다고 울고 자기네 엄마는 편지도 한자 안 보낸다고 섭섭해서 울고...

큰딸도 고등학교 때 기숙사에서 학교를 다녀서 며칠만에 집에 올수 있었기에 나는 가끔

학교로 편지를 보내곤 했다.

집에서 얼굴보면서 얘기 하는거랑 학교에서 자기 이름으로 오는 편지로 엄마랑 소통하는거랑은 느낌이 다를 듯 해서 이따금씩 학교로 편지를 보내곤 했다.

나는 휴대폰이 없다.

아니 엄밀하게는 있지만 사용을 안해서 아들 손으로 넘어갔다.

도통 주머니에 넣고 다니기도 거추장스럽고 목에 달고 다니자니 목이 자꾸만 앞으로 엎어지는 느낌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앞치마를 늘 하는 주방장은 휴대폰이 젖을까 조심스러워서

아예 방에 두고 다니다 보니 중3 아들이 필요하다기에 얼른 줘 버렸다.

나는 문자도 보낼 줄 모른다.

아무리 봐도 조그만 휴대폰의 문자판이 외워지지 않고 복잡해서 아예 외울 노력도 하지 않았다.

남편은 그런 나를 골동품이라며 박물관에 데려다 줘야 한단다.

아이들은 뻑하면 아빠 휴대폰에 띠리릭 하고 문자를 보낸다.

\"아빠! 등록금 보내주세요\"

\"아빠! 원룸 생활비 보내주세요\"

\"아빠!오늘 학원 차 놓쳤어요, 데리러 오세요\"

\"아빠! 멋진 아빠,  용돈이 떨어졌어요\"

\"아빠! 결혼 기념일에 축하드려요, 사랑해요, 알라뷰~~~\"

\"아빠!생신 추카추카, 엄마랑 좋은데서 맛있는 저녁 드세요\"......

띠리릭띠리릭 엄지 손가락은 손톱을 길러서 보기 흉한데 문자판을 누르려면 깍으면 안된단다.

아이들은 휴대폰을 능수능란 요란하게 사용하지만 나는 편지를 고수한다.

훨씬 인간적인 느낌이고 기계에 둔한 내게는 편지가 매력있다.

요즘도 연말이면 우체국에서 연하장을 수십통사서 일일이 삐뚤빼뚤 악필을 그린다.

나는 왜 이리도 똑 바로 내리 긋는 직선이 잘 안 되는지..

마음이 곧질 못해서 인지 항상 직선이 안 이쁘다.

친정 엄마는 군에 간 오빠의 편지에 답장 적어라 하시곤 둥글판 옆에서 지켜보고 계시다가

휘휘휙 내리 갈겨대는 내 필체를 보시면서

\"미친년 널 뛰듯이 칠락팔락  하지 말고 좀 찬찬히 곱게 적어라\"

잔소리에 호통까지 동반하셔도 여전히 사방팔방 휘갈겨 적는 악필.

정자로 적으나 초특급으로 적으나 매한가지 필체는 어쩔수가 없어.

악필 임에도 불구하고 편지 적기를 고수 하는 것은 종이에 적는것이 단순한 글씨가 아니고

엄마가 그 시간에 아이와 함께 한다는 마음을 주고 싶음이다.

바빠서 아이들을 기숙학교에 둘 다 보내 놓고 자주 만나지 못해서 안타깝고 편지를 받아보면서 글을 적는 엄마의 모습도 상상하기를 바랐고 늘 너희와 함께 한다라는 느낌을 주고픔이다.

막내도 어쩌면 기숙학교에 가야 할 것 같은데 아마 막내에게도 편지를 보낼 것이다.

더 많이 보낼 것 같은데 막내는 워낙에 말 수가 적고 불만이 적은 아이라 자주자주 챙겨야

문제를 얘기 할 것 같다.

초등 4학년 때 부터 방학이면 1개월씩 충청도에서 서당공부를 할 때도 틈 나는 시간에 아이에게 편지를 보냈고 아들은 답장을 곧잘 보내오곤 했다.

휴대폰이 디지털이면 편지는 아나로그적 표현이겠지만 퇴화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적응하기에 편하고 큰 불편이 없어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때로는 불편도 하다.

공중전화 부스가 많이 없어져 버려서 급하게 연락 할 때는 난감하기는하다.

컴퓨터도 최근에 배웠다.

집에 컴퓨터가 업무용 2대,가족용 3대가 있어도 관심없이 지내다가 딸이 강원도에 있는 관계로 홈페이지에 하루 일들을 주고받기 위해서  물어물어 1주일 강습 받고 혼자서 독수리타법으로 타다닥!!!

지금도 극히 느릿느릿한 속도로 그림을 그리듯이 자판을 훑고 메꾸기를 한다.

동창회 카페에도 혼자 들락거린다고 식구들이 놀려댄다.

거북이가 정상을 넘 본다나 어쨌다나?

 

앞으로도 여전히 아나로그로 남을지라도 아무 지장이 없을거다.

나 하나쯤은 추억 속의 아련함을 만끽하며 느림보 걸음이지만 목적지는 잃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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