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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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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다 해야 할지, 창피하다 해야 할지...


BY 일상 속에서 2007-10-15

 한 달 전 쯤 인가, 그동안 딸년은 도둑년이란 개념을 몸소 실천하던

내가 천만분의 1도 안되는 이자를 갚는다는 심정으로

엄마에게 용돈으로 백만원을 통장으로 보내 드린 적이 있었다.

“딸이 일을 하니까, 좋긴 좋네.”

하시며 알려주신 계좌는 다름 아닌 내 명의.

의외였다. 나로썬 진즉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그 계좌를 불러 주실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우연찮게 나는 벌써부터 엄마의 비자금에 대해서 알아버릴

계기가 있었다.

언젠가 농협통장으로 인터넷뱅킹을 신청한 적이 있었는데

인증서를 받고 통장 확인을 하는 중,

내 이름이 2개나 뜨는 게 아닌지...

내가 입금 시킨 돈은 몇 만원이 고작이었는데

동명이인(?)은 제법 많은 금액의 돈이 비축되어 있었다.


‘이상하다... 이렇게 인터넷뱅킹이 허술하단 말이야? 어떻게

남의 계좌가 뜰 수 있는 거지? 거기다 내 성이 아무리 흔한 성이 아니라지만

우리나라에 달랑 내 이름 ‘석자’와 같은 사람이 둘 밖에 없단

말이야?...‘


그날 나는 괜히 남의 것을 훔쳐본 것 같은 찜찜한

마음이 되어 얼른 컴퓨터를 종료했던 것 같다.

필시 일시적인 전산 착오가 생겼을 거라는 마음으로....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다시 인터넷 뱅킹을 로그인 했다.

그런데 또 다시 동명이인의 계좌가 함께 뜨는 것이었다.

그때서야 문제의 심각성이 느껴졌다.

농협으로 연락을 해줘야 한다는 양심의 아우성 앞에서

동명이인의 거래 지점처가 어디인지 확인을

했다. 그리고 곧, 동명이인자가 다름 아닌 나였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지점 조화결과 확인된 것이 결혼 전 내 본적지였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18년 전 직장생활을 할 때 첫 월급이란 것을

받아서 드렸더니 며칠 지나지 않아 내 통장을 개설했다던 엄마의 말씀...


시집이란 것을 와 놓고도 결혼 전과 변함없이

힘들 때마다 엄마에게 손을 벌려도 턱하니 잘도 내놓으시던

분이 언젠가부터 어디서 꿨네, 이제는 이것이 마지막이다, 등등

이유를 들어 나를 죄스럽게 만드셨다. 그때...엄마가 충분히

그럴만도하다고 생각했다. 가져다 쓴 돈이 얼만데...

그런데 이런 비자금이 또 있었단 말이야?

왠지 모를 서운함이 썰물처럼 밀려들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까?

‘역지사지’(요즘 이 사자성어가 내 뇌리에 자주 등장한다.)라고

매일 ‘돈’ 없어!!!를 연발하는 내게 자식들이 필요한 것에 대한

목록들을 줄줄이 읊어 대는 모습이

어릴 적 처마 끝에 살고 있던 제비새끼가 어미 새에게 먹일

달라고 입을 쫙쫙 벌리고 있는 것과 비슷했다.

새끼들 먹이려고 종일토록 날개 짓을 해대며 제 배는 곯는지도

모르는 어미제비의 모습이 내 엄마같고 나와 같고 우리나라

주부들의 모습과 어쩌면 그리도 똑같은 것 같은지...

 

내 엄마도 살아야 하는데, 연세는 들어가시고 자식들 점점

제 앞가림한다고 효는 점점 뒤로 생각하면서,

딸년이라고 하나 있는 것이 이기적으로 제 생각만 하느라

여적지 엄마만 의존했던 그간에 나.

새삼 어찌나 부끄럽던지... 나는 비자금에 대해서

잊기로 했다. 아니...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아무리 내가 금전적으로

힘이 들더라도... 훗날 내 새끼들이 제 엄마와 똑같은 불효를

저지르면 어쩌나, 하는 마음으로...

<‘고려장’의 지게 이야기>가 남의 얘기만은 아니지 싶다.

내가 하는 행동들을 내 새끼들이 보고 배워 똑같이 되풀이 할 것이란

것을 난 왜 깨닫지 못했을까?


자식을 키워봐야 부모의 마음을 안다더니...

어쨌든 그런 죄송한 마음이 쌓여 분수에서 벗어난 큰 돈(?)을

용돈이란 명목으로 드렸던 건데

엄마는 용돈을 받은지 며칠 지나지 않아서

내 선물을 준비해 놓으셨단다.

내가 준 돈으로 금 한 냥의 목걸이를 해놓으셨다나...

그것을 준비해 놓은 엄마의 목소리는 내게

용돈을 받았을 때 보다 더 들떠 있었다.

받을 때보다 줄 때의 마음이 더 행복한 것이 부모마음이란

것을 나 역시 이미 알게 되었건만...

그 돈을 보내 드리고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었는데...


다시 내 마음의 무게가 묵직해졌다.

받는 것에 대해서 예전처럼 뛸 듯이 기뻐하지 못하고

오히려 왜 그랬느냐고 따져물으니

힘들게 번 딸의 돈을 가지고 있기에 엄마도 편치 않으셨단다.

아무도 모르게 준비한 거라 보내지도 못한다며

벌써부터 언제 가지러 올 거냐고 들떠 물으시는 내 엄마...

그럴수록 죄송한 나...

나는 이제서야 정말 어른이 되어가는 가보다


지난 금요일이었다.

점심시간 쯤, 핸드폰에 엄마의 발신자 번호가 떴다.

점심 먹었느냐는 질문으로 시작한 말씀이

시간 되는대로 등본과 신분증을 우편으로 보내라는 생뚱맞은

숙제를 제시하는 것으로 마무리 지으셨다.

그것도 조금은 다급함이 묻어있는 어투로.


그것들이 왜 필요하냐고 물으니 목걸이 값을 지불하려고

출금하려니 현금카드 오류가 3번이 나셨단다.

엄마의 입장에서 보면 잘못하다간 비자금이 들통 날 판이니

몸이 달 수 밖에.

알았다는 답변을 드리고 우선은 엄마가 원하는 등본을 떼어 놓았다.

그런데 3번의 오류가 난 통장이

본인 없이 위임자(?)를 통해서 등본과 신분증만으로 오류해제가 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돈 내역에 대해서 들통 나게 생긴 엄마의 심정도 이해하겠지만

모른척하고 지낸 나 역시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해결방법을 찾기 위해서 나는 농협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곤 엄마 통장에 대해서 전후사정을 얘기한 후, 오류해제를 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서 조심스레 물었다.

처음에는 본인이 와야 한다던 직원이 잠시만 기다리라더니 얼마 후에

알려주는 방법이, 인감증명서와 신분증, 위임장(내 인감이 찍힌)이

있으면 가능하단다.


그날 엄마 덕에 나는 인감도장이란 것을 만들게 되었다.

당일 저녁, 농협에서 말했던 첨부서류를 구비해서

토요일 오전까지 특급으로 붙이기 위해서 나는 새벽부터

바삐 움직여야만 했다.

아들 녀석 사마귀 제거 치료를 하느라 대학병원을 3주에 한번씩

다니는데 토요일은 예약이 몇 개월 후까지 등록되어 있기

때문에 와서 기다려야 한다나?

그 일까지 겹치는 바람에 새벽부터 나는 마음이 급했다.


어쩌면 휴일엔 일이 더 많은지,

겹친 피곤들이 누적되어 굳어버린 듯 머리부터 발끝까지

묵직했다.


어쨌든 토요일에 주워졌던 여러 일들을 모두 처리하고

간밤에 술 취한 남편의 술주정까지 상대하느라 열 좀 받다가

잠이 들었던 탓에 아이들의 아침을 9시가 넘어서 차려줬는데도

몽롱한 상태를 벗어나긴 쉽지 않았다.

일요일인 어제 오후,

엄마에게 연락해서 내가 보낸 서류에 대한 설명과 엄마가

직접 챙겨가야 할 것들에 대해서 설명해 드렸다.


내 말에 모든 일이 해결 된 양 다시 들뜬 목소리의 엄마는

목걸이가 예쁘다고, 딸의 재산을 만들어 주어서 좋다고

아무리 힘들어도 팔면 안 된다는 얘기까지 늘어놓으셨다.

그렇게 시작한 얘기가 사이좋게 15분씩 전화를 주고받는 것으로

끝이 났던 통화.


“엄마, 내가 시외전화 건지 15분 지났거든? 엄마가 전화 해.”

라는 나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후딱 끊고

바로 전화 걸어 주던 엄마 왈,

“했다, 이년아!!!...”


엄마 앞에서 난 늘 철부지이고 싶은데...

이제 그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이렇게

어리광(?)을 부리고 있으니

행복하다고 해야 할지, 창피하다고 해야 할지...

정작 내가 바른 깨달음을 얻은 것인지도 의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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