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까지 겹쳐서 온몸이 철근처럼 묵직했다.
토요일에 비가 오지 않았다면 바삐 돌아다닐 곳이
많았을 텐데,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오전까지 늦잠을 잔 것 같다.
금요일 날은 무슨 정신으로 퇴근하고 병원에 들러서
‘감자탕’까지 끓였는지 모르겠다.
부실한 상에 대한 원망을 차마 들어내 놓고 하지는 못하고
딸아이 흘러가듯 한다는 말이,
“수윤이네 엄마는 반찬을 잘 만드나 봐요. 돈가스도 빨강색, 초록색,
노랑색으로 만들어서 소스로 케찹이 아니던데... 너네는 매일 돈까스만 먹냐고 물어봤더니 아니래요. ‘감자탕’도 먹는다고 그랬어요. 수윤이는 좋겠지요?“...
딸의 말에 가슴이 아파도 꿋꿋이 버티고 있는 제 엄마에게 아들 녀석,
총살(?)당해 죽은 사람 확인사살 하듯 한마디 보탠다.
“수윤이네는 부자잖아. 바보같이 그런 말을 하고 있어...”
.
.
.
딸아이 친구 집이 우리 형편보다 났다는 것은 익히 아는 바지만...굳이 부자에 비유하는 아이들의 마음에 우리 집은 ‘가난뱅이’라고 자리하고 있다는 것인가...
먹는 음식에서 ‘부자’를 언급하는 녀석 말...엄마로써 부끄럽기만 했다.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밥 세끼 먹는 것은 똑같다고 했다.
아무리 엄마가 니들 잘 못 챙겨 먹인다고 하더라도 계란 장조림이라도
먹였고 멸치도 떨어뜨린 적 없어?“
내가 아무리 말한들 아이들에게 의안이 될까, 만은... 주절주절 잠깐 혼자
떠들어댄 것 같다. 열등감이 한껏 달해 있었지 않았을까 싶다.
“엄마...우리 감자탕 먹은 지 오래 됐지요?...”
끈닥진 녀석들...
감자탕이 먹고 싶다는 것을 그런 식으로...
놈들이 어쩌면 모의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에게 밥상머리에 대해 쇼크를 주자고 말이다.
“엄마가 ‘감자탕’ 해줄게.”
몸이 지쳐서 방금 먹은 설거지 해대는 것도 귀찮은 판에 녀석들의 바닥까지
떨어져 있는 콧대를 세워주고 싶은 마음이 무심결에 뱉어낸 말.
“엄마가 감자탕 사주는 것이 아니고 만들어 주신다고 구요? 엄마
만들 줄 아세요? 언제 만들어 주실 건데요?“
허걱...
만들 줄 아세요...? 라니
딸의 말에 두 번 째 죽임을 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제 엄마가 아직 김치도 담글 줄 모르는 사람이라지만 주부 경력 몇 년에
거기다 소주의 안주로 짱인 그 메뉴를 못 만들까...
안 해서 그렇지....
기집애가 엄마로 하여금 오기가 생기게 만들다니...
“아영아, 엄마가 오빠 어릴 적에 한 번 만들어 주신 적이 있어.”
“!!!...”
잔머리가 좋은 건지, 아니면 정말 제 엄마를 형편없는
가정주부로 알고 있는 것인지...
밥상에서 청양고추라도
먹은 양, 화끈화끈 얼굴이 달아오르다 못해서 화까지 나기직전이었다.
“토요일 날 만들어 줄게.”
속마음을 꾹꾹 눌러 참으로 태연한 척 대꾸했다.
녀석들 좋아서 팔닥팔닥 뛰고 난리 부르스+탱고다.
토요일 날은 코피가 터지는 일이 있어도 ‘감자탕’을 만들고 말리라...
다짐을 하고 금요일을 맞았는데,
병원에 들러서 약국엘 들어가니 아픈 사람들이 어째 그리 많은지
내 순서 돌아오려면 한참을 기다려야만 했다.
바로 앞이 시장이니 시간을 그냥 썩히기도 뭣해서 시장을 둘러보다가
정육점을 지나게 되었다.
오후 늦은 시간에 돼지 등뼈를 찾았다.
당연히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엄마로써 최선을 다했다, 라는
꺼리를 만들고 싶어서 물었건만...
없다는 점원 말에 좋아서 돌아서려는데,
“참!!! 낮에 들어 온 뼈있는데, 살이 많이 붙어서 가격이 좀
나갈 겁니다.“
그날...육중한 내 무게를 빼고도
나의 애마(자전거)는 묵직한 돼지 등뼈와 우거지와 깻잎, 들깨가루, 감자...
등등 치렁치렁 양쪽으로 매달고 펑크 나기 직전으로 타이어가 가라
앉은 채 바닥을 기어가야만 했다.
샤워도 못한 몸으로 손만 겨우 씻고 핏물을 급한 대로 한번 끓여서 버리고
‘감자탕’을 앉혔다.
금요일 저녁, 녀석들이 집안으로 들어서며
토요일을 운운하던 제 엄마가 집안 가득 ‘감자탕’ 냄새를
가득 풍기며 주방에 서 있는 모습 보고 잔뜩 기분이 업이 되어
겅중겅중 ‘엄마는 약속을 잘 지킨다’며 호들갑이다.
어쨌든 나는 그렇게 약속보다 하루 앞당겨서 커다란 숙제를 치러 냈다.
덕분에 토요일은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나서도 몇 시간을 더 잤는지.
그나마도 친구에게 전화가 오는 바람에 자리에서 일어나야만 했다.
비가 주적주적 떨어지는데 친구가 은평구에서 왔다.
스케줄이 어떻게 되냐고 묻길래 비가 와서 ‘방콕’이라고 했더니
깜짝 이벤트라도 벌린 양,
갑작스레 사과봉지 한 뭉치 들이밀며 들어선다.
그리고 바닥에 엉덩이가 닿기가 무섭게 크지 않은 가방 속에서 주섬주섬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 보따리처럼, 여름티셔츠 하나, 화장품 샘플 뭉치, 말린 표고버섯, 직접 만들었다는 연꽃 모양의 크리스탈 핸드폰 줄...등을 꺼내 놓았다.
매번 내게 베푸는 것이 많은 친구다.
그럼에도 내 입에서 나온 다는 말이,
“ 더 꺼낼 것 없냐?! ”...
우리는 밖으로 나가지도 않고 7시간 가까이 수다를 떨어댄 것 같다.
우리의 만남은 늘 긴 수다가 이뤄지는데도 아쉬움이 남는다.
삶에 대한 막중한 무게들을 얘기하다가 내 삶의 무게가 무겁네
네 삶의 무게가 무겁네 하다가 사는 삶 자체가 모두 무겁다,
죽는 순간까지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살아야 된다는 것으로 결론을
맺은 철학적인 이야기들...
오늘 출근을 하는데 연세 지극한 등이 굽은 할머니께서 커다란 횡재라도 한양
헌 유모차 두 대를 한꺼번에 이끌며 지나가셨다.
요즘 노인들 지팡이 대신 짐까지 실수 있는 유모차를 선호한다더니
할머니 표정은 새 자가용이라도 장만한 사람의 자랑스러움이
묻어 있었다. 시간만 된다면 댁까지 끌어다 드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할머니를 몇 미터나 지나쳤을까?
이번에는 바짝 몸이 여위신 할아버지 한 분이 자신의 키보다 두 배는 족히
되어 보이는 종이 박스를 잔뜩 싫은 ‘리어카’를 힘겹게 끌고 가셨다.
그 모습이 흡사, 작은 개미 한 마리가 커다란 밥풀을 끌고 가는 모습 같았다.
언덕배기도 아닌데 걷는 걸음걸이가 어찌나 무겁던지...
자전거를 세워놓고 밀어 들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내 밥벌이를 위해서 그냥 스쳐 지나 보낸 그 분들...
내가 지금 아무리 힘겹던 들,
80이 훌쩍 넘으신 듯 보이는 할아버지께서 잔뜩 바람 빠진 타이어에
짐을 실고 가는 것 만 할까?
그 산더미 같은 폐품을 싫어주고 받는 돈으로 끼니나 제대로 때울 수 있을까?
정작 내 미래의 모습은 어떨지...
내 주변은 어떻게 변해있을지...
벅찬 하루도 모자라서 강산이 몇 번 변할 미래가
궁금하다니... 정말 걱정도 팔자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