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아는 분 이사간 집에 다녀왔다. 한참 뜨고 있는 신도시에 입주한 그 분은 벌써 집값이 배가 올랐다고 활짝 웃으셨다. 이제 막 입주를 시작한 그곳은 어마어마한 규모의 각종 시설들이 들어설 전망이란다.
아무것도 모르고 일찍 결혼해서 십칠 년을 살았지만 아직도 내 집 장만을 못한 내게 이런 날은 꼭 좋은 날만은 아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어떻다고 하듯 솔직히 그런 심정이었다. 내가 너무 옹졸하고 소심해서라고 스스로 반성을 하면서 울적한 마음을 애써 감추며 돌아왔다.
가서 스트레스 풀고 오라며 흔쾌히 허락하길래 집안 일 좀 해 놓으려나 했더니, 역시 남편은 잠만 자다 일어난 듯한 분위기다.
아이들은 점심도 대충 라면으로 해결했는지 배고프다고 사가지고 간 빵을 게눈 감추듯 한다. 옷도 못 갈아 입고 저녁 준비를 하자니 울컥 짜증이 솟구친다.
\"에그 헛똑똑이들...\"
친정 아버지가 동생과 나를 두고 가끔 한숨처럼 토해 내던 말씀이 갑자기 생각나서
더욱 속상하다. 저녁 준비를 하는 내내 아파트값이 얼마가 올랐다더라. 애들 점심 좀 챙겨주지 그랬냐. 등 등 잔소리와 푸념을 토해 냈지만 남편은 죄인이요 하고 잠잠하다.
난 어쩔 수 없는 속물인가 보다. 요즘 \'칼잡이 오수정\'이라는 드라마의 오수정이 너무 공감이 가는 걸 보면 더 그렇다. 한 때는 무명 시인이 꿈이었다. 돈 한 푼 없이 숙명처럼 시를 쓰며 사는 무명시인...
그런 내가 이렇게 안달을 하며 살고있다. 아들 녀석이 고등학생이 되면서부터 그 녀석 감시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나 왜 이러냐?\' 하면서도 매일 공부하라고 닥달을 하고...
꿈과 현실은 너무 멀어서 슬프다. 그 둘이 가까이 있다가 결국 꿈이 현실이 되는 사람들은 얼마나 좋을까?
난 내가 스스로 깜짝깜짝 놀랄 만큼 너무 현실적인 사람이 되었다. 꿈을 못 이룬 것보다 더 슬픈 건 이 사실이다. 속물이 되었다는 것.
그래도 여전히 부럽다. 가끔 어제 같은 날이 생기면 난 여전히 속상할 것이다. 뭐든지 다 해 주겠노라고 일곱 살 어린 나를 온갖 감언이설로 꼬드기던 남편에게 너무 화가 난다.
내 친구에 의하면
\"너 정말 여린 문학 소녀였는데... 참 단단해졌구나.\"
좋은 말일까? 나쁜 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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