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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된장+고추장...


BY 일상 속에서 2007-07-23

 

토요일 새벽녘에 남편의 늦은 귀가 때문에 잠이 깨어버렸다.

12시가 조금 넘은 시간.

아영이와 안방에서 자고 있던 나는 남편의 술 냄새가

싫어서 아들의 방으로 살짝 건너갔다.

한번 깬 잠이 쉽게 올 것 같지 않았다.

머리맡에 놓여있는 <불자수첩>을 들었다.

그리고 <금강경> 부분을 펴서 읽어 내려갔다.

도통 뭔 말들인지, 뜻도 모르는 어려운 말들을

읽어 내려가니 수면제가 따로 필요 없이,

스믈스믈 잠이 몰려들었다.

누군가의 말처럼 내게도 어려운 책은 수면제와 같은

역할을 하나보다.

서서히 눈꺼풀이 무거워지려 할 때였다.

“마담, 마담...이루와봐...@$%%$$@@&*(*(...화이팅...”

하고, 안방에서 남편의 술 취한 잠꼬대 소리가 들려왔다.


뭐시라고라...

마담...?

파이팅...?


어떻게 해서 들려던 잠이었는데...잠 한숨 자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는데 말이지...

정신이 바짝 드는 순간...잠은 아주 천리 밖으로 도망을

쳐버린 뒤였다.


요즘, 집안 꼬라지가 어떤 상황인데...

밥상 위에 풍경은 또 어떻고,

애들 교육비 때문에 내가 자존심 몽땅 구겨버리고

사회전선으로 뛰어들었구만... 뭐가 어째?

마담...?

요 며칠 일한다고 잔뜩 움츠렸던 어깨에 힘을 팍팍

주고 댕기더니...

일한 댓가는 아직 따르지도 않은 상황인데 얼마나 떼돈을

번다고 웃기지도 않는 행동들 하고...

그 잘난 일이 얼마나 있을지 나로서는 앞이 깜깜해서 뵈지를 않는구만

이 인간이 정신이 있는 건지 상실한 건지...


부부라지만 개인 프라이버시를 침해하고 싶지 않아서

좀 체로 남편의 지갑을 뒤진 적이 없었는데...

나는 거실 옷걸이에 걸려있는 남편의 바지 뒤춤에서 지갑을 꺼냈다.

만 원짜리 지폐 몇 장과 천 원짜리 지폐 몇 장 말고 틈틈이

구겨져 있는 영수증들이 보였다.

sbs노래방 36,000원(mbc 나 kbs노래방이 알면 얼마나 섭섭할지, 한곳만

다닌 영수증이 몇 장이나 나왔다.)

거기다 장어 집, 호프집...

자다말고 새벽에 혈압이 무지막지하게 상승하는 순간.

참자, 참자...새벽녘에 혈압이 올라서 119에 실려 가는 진풍경만은

만들지 말아야지.

참으로 희한한 술버릇이지 술자리에서

있던 일을 고스란히 제 입으로 뱉어내고 있으니

나는 남편이 말하지 않아도 전날 같이 마신 술 상대가 누구였는지

간간히 알아맞히는 능력(?)으로 남편을 깜짝 놀래키곤 한다.

그런 술버릇을 고맙게 생각해야 하는 건지, 원...


하긴 나날이 발전하는 남편의 술버릇은

이제 tv에서만 봤던 종류의 것들도 종종 있다.

예로, 며칠 전에는 꼭지가 돌게 술을 마신 남편이

장롱 문을 열고 시원한 볼일을 봐 놓은 바람에

잔뜩 젖은 겨울 이불이랑 작은 아이 겨울 옷가지들을 빠느라고

장마철에 잘 마르지도 않는 빨래들을 세탁기로

세 번이나 돌려야 하는 큰일을 치러야만했다.

점점 데리고(?) 살아야 할지 의문이 드는 인간이다.


혈압이 올라 속이 뒤집어져있는 마누라의 심정도 모르고

남편은 침대 위에서 아주 편안한 자세로 누워서

이제 꿈에서 마담과 오붓하니 안주라도 나눠먹고 있는지,

입을 오물거리기까지 해다.

퍽!!!

고요한 새벽을 깨우는 소리는 내가 남편의 궁둥이를

사정없이, 소도 때려잡을 만큼이나 강력한 나의 주먹이

부딪히는 소리였다.


“헉!!! 왜... 왜 그래?!!”

‘경기’라도 일으킬 모양새로 놀란 남편의 눈이

토끼 눈처럼 동그래졌다.

“헉? 왜 그래?! 나랑도 하지 않는 파이팅을 마담이랑 하냐?

잘나가는 사장님은 마담끼고 술 처마시나 봅니다. 내가

그랬지? 괜찮은 여자분 계시면 그냥 그 분이랑 사시라고,

어차피 애들에게 무관심하고 무능함의 극치를 달리는

댁과 살고픈 마음, 애 저녁에 달아났다고 그냥 훨훨 괜찮은

여자분 찾아 가시라고 했지?“

“이 사람이 무슨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어?! 자다말고!”

어라? 기죽지 않는 당당한 남편의 목소리, 죽고 잡아서

환장하지 않고는 그렇게 겁을 상실할 수가 없지 않나?

술 취해서 뵈는게 없었는지...

나는 자고 있는 이웃을 생각해서 목소리도 낮게 얘기했구만

오히려 큰소리다.


“뭐? 자다말고 내가 잠꼬대 하는 것 같어? 아주 녹음을 해줄까?”

“그래. 해봐. 난 아주 결백해. 하긴, 당신 같은 성질에 아주 뒷조사를

해도 벌써 했을껄?“

“뒷조사 할 돈 있으면 인간아, 변호사를 사서 이혼수속 밟겠다.

이제 보니까 구린게 아주 많은가봐.“

“맘대로 해봐. 나는 아주 결백하니까.”

“입 닥치시죠. 아주 무식하게 나가는 것 보고 싶지 않으면...

날 밝거든 진실도 밝히자고.“


어쨌든 잠을 자고 아침을 맞았다.

늦잠을 자는 바람에 아침 8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새벽에 있던 일이 떠올랐다. 갑자기 남편을 상대로 진실을

밝히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다. 상대조차 하기 싫었다.

간만에 애들 데리고 자전거를 타고 하이킹이나 갈까하는 마음에

자고 있는 남편은 나두고 아이들만 깨워서 아침 밥을 먹였다.

그리고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부스스 일어난 남편이 침대에 걸터앉아있는 내게로 오더니

와락 끌어안곤 입술을 들이대려는 것이 아닌지...


반사적으로 나가는 나의 손바닥은 남편의 얼굴을 맞고 있었다.

키스하려는 남편과 그것을 제지하려는 내 모습을

아이들이 우습다고 곁에서 깔깔대며 바라보고 있었다.

속도 없는 녀석들...


“아빈 엄마, 사랑해.”

“사랑이 아니라 오랑도 싫다. ‘마담 이리와, 파이팅’ 할 수 있는

사이면 얼마나 가까운 사이냐? 애새끼들 먹여 살리기도

부담스러워하는 인간이 이제 노래방까지 먹여 살리느라 또 얼마나

힘이 들겠어?“

“이 사람이... 내가 노래라면 얼마나 싫어하는 줄 알면서, 난 노래방에

간 적이 없어. 아주 오래전이라면 모르지만...“

“7월 20일이 아주 오래전 일이냐? 거짓말을 입에 달고 사는구나.”


남자는 나이를 먹어도 애들 같다는 말이 새삼스레 떠올랐다.

뻔한 것도 발뺌을 해대고 증거를 내놓아야 꼬랑지를 내리니

말이다.

내가 남편의 지갑을 들고 와서 영수증들을 꺼내 놓으니,

“이 사람이 이제 지갑까지 뒤져?” 란다.

“못 뒤질게 뭐야? 이렇게 증거를 찾지 않으면 끝까지 오리발일걸.

내가 그래도 참으며 살았던 것이 부부로써 지켜야 할 도리만큼은

지킬 거란 믿음 때문이었는데, 이젠 아니다. 정말 아니지.

마담에, 노래방까지... 카드 긁어서 노래 부를 때, 몇 날 며칠

김치찌개 끓이고 또 끓여서 김치가 죽이 되도록 먹고 있는 애들이

눈에 아른거리지 않디? 지지궁상 떨며 살고 있는 마누라 얼굴을 안 떠오르고?“

“떠오르지...”

“으~응, 떠올라. 떠올라서, 속상한 바람에 술 한 잔 목구멍으로 더 잘 넘어가고

한풀이 한다고 그 잘난 노래 목청껏 불러재꼈겠지. 그치?“


새벽녘에 참아 눌렀던 목소리를 한껏 힘을 실어 질러됐다.


“아빠, 마담이 뭐야?”

궁금한 것 못 참는 아영이가 끼어들며 물었다.

“마당! 너희들 뛰어 노는 마당 있잖아.”

“아빠는 마당이라 파이팅해?”


끔찍하게 예뻐하는 딸내미의 질문에 남편이 내게 눈을 흘겼다.

그리곤,

“이 사람이 애들이 있는데서 별소리를 다해. 남편의 권의가 있지.”

“권위? 아이들 앞에서 떳떳하고 싶으면 행동거지를 똑바로 해.”


마누라와 말해서 본전 한번 찾은 적 없는 남편이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호프집 아줌마를 부르는 호칭이 애매모호해서 ‘마담’이라고

부른다나? 남들은 ‘이모’, ‘언니’, ‘아줌마’ 잘도 부르지만

자신은 그렇게 부르기 싫어서 ‘마담’이라 부른단다.


나라를 잘못 타고 태어나서 고생하는 남편인가?

‘파리’에서만 태어났어도 ‘마담’이니 ‘마드모아젤’ 등등

우아하게 뜻이 통할 단어들...

결혼한 유부녀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마담’이라 부린다는 그 나라가 아닌,

다방 여주인이나 술집 여주인에게나 붙일 수 있는 대한민국에서

그 호칭을 술 취해서 망발한 남편의 목숨을 부지시켜줘야하나 말아야하나...


마누라의 바가지에 잔뜩 반성하는 얼굴로 큰 놈 2만원, 작은 아이 2천5백원을

쥐어주고 점심때 맛난 것 사주라며 밖으로 나가는 남편의 뒷모습도 나는

바라보지 않았다.


15년이면 살만큼 살은 건지...

질투와 다른...뭔가...배신감?

뭐라 표현하기도 애매하다.

남자는 밖에 나가면 내 남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라는 누군가의

말, 그만큼 밖에서 남편이 뭐를 하던 신경 쓰지 말라는 말이

있었지만, 그럴 수 있는 여자가 얼마나 될까.

나도 술이나 진탕 마시고 외간남자 이름이나 불러줘야지만

우리 남편 분, 내 기분을 이해할라나?

첫 월급타면 몽땅 애들 교육비에 보태려고 했는데 호스트바나 갈까?

머리에 총 맞지 않고서는...

절대 나는 그러지 못할 것 같다.

젠장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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