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국에서 온 문화상품권으로 요즘 뜻하지 않은 호사를 누렸다.
패스트푸드점, 팬시점, 문구점, 서점으로 돌며
값비싼 것들로의 소비는 아니지만 나름 아이들과 문화(?)를 즐긴 며칠이다.
언젠가 왔었던 상품권은 필요할 때 유용하게 쓰자며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 이상의 것은 절대로 눈여겨보지 못하게 했었다. 그렇게 아끼며 쓰고 남은 만원자리 10장중 8장이 갖가지 패물, 아이들의 코 묻은 돈과 함께 도둑님의 수고(?)로 홀딱 사라져 버린 날, 나는 아끼다 ‘똥’ 된다는 말을 여지없이 실감한 탓일까, 백화점 상품권이나 문화 상품권이 생겼다고 꼭꼭 쥐고 있지를 못한다.
이번에 온 상품권으로는 가까이 사는 조카들 둘에게 한 장씩, 친구의 아이들 둘에게 한 장씩 주고 남은 6장으로 펑펑(?) 쓰자며 아이들을 데리고 밖으로 돌았다.
우습다. 한편으로는...
6만원, 그것 정말 쓸 것 없는 돈인데 우리는 이틀의 연휴동안 돌아다니며 펑펑 쓴 것이 고작해야 3만원이었다. 아이쇼핑만 실컷 했음에도 불구하고 낭비를 한 듯하다...
패스트푸드점에서 할인 쿠폰과 함께 상품권을 사용했다. 만원자리 상품권 1장에 몇 백 원만을 보테니 햄버거세트와 치킨 몇 조각으로 한상 가득했다.
그 많은 것이 몇 백 원으로 산 것 같은 착각까지 일었다.
다음 코스로 팬시점엘 갔는데 아이들은 엄마가 모처럼 멍석을 깔아줬는데도 우물쭈물 한참을 돌아다니더니 들고 온 것이 고작... 아들은 샤프심 2개, 딸은 900원짜리 보드 판이 전부였다.
그동안 갖고 싶어 하던 인형들이며 특이하게 생긴 샤프 연필들은 뒤로하고서. 필요한 것 더 찾아보라는 제 엄마의 성화에 아빈이 한다는 말이,
“엄마, 왜 그러세요? 필요한 것만 사고 아꼈다가 다음에 또 필요할 때 쓰면 되잖아요. 그치...아영아?” 라나.
옆에 있던 아영이의 표정이 복잡 미묘했다. 억울함 + 아쉬움 + 못마땅함 + 체념 가득한 표정이었지만 제 오빠와 시선을 고정한 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거렸다.
녀석이 아무래도 구석으로 몰고 가서는 설득과 협박(?)을 고루고루 버무렸나보다. 그렇지 않고는 고집스런 제 동생을 그렇게 고분하게 만들 수 없지 아마...
3번째로 들른 곳이 서점이었다.
아들놈은 내가 돈 못써서 환장 병 걸린 사람처럼 보였나보다. 제 엄마의 행동이 여간 못마땅한 것이 아닌 듯 했지만 그래도 크게 인심 쓰는 척 군말 없이 따라 들어와서는 이 책, 저 책 들러보고 다녔다. 누가 자식이고 엄마인지 구분하기 힘들 판이다. 이걸 주객이 전도 됐다고 해야 하나.
다른 이들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는 서점의 책 냄새가 참 좋다.
책 냄새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나무가 우거진 숲 속에 들어 온 듯 상쾌함마저 든다.
모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한쪽에 서서 여러 책들을 훑어보았다. 내가 머문 곳은 20%세일 코너.
뭔 놈의 책들이 그리도 장르를 막론하고 다양하게 많은지...
책 제목대로라면 누구나 날씬해지고, 똑똑해 지고, 행복해 질 수 있을 것이다.
뭐든지 해결해줄 것 같은 무수히 많은 책들 앞에서 나는 잠시 조소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내 마음의 빗장이 닫혀 버린 것이 아닐까 하는 씁쓸한 마음도 들었다. 아니면 마음이 강인해 진 것일까?... 모르겠다.
누군가는 행복을 갈구하며 ‘행복해지는 비법’ 이 담긴 책을,
남들 앞에서 당당하고 싶다며 ‘말 잘하는 법’을,
날씬해지고 싶다는 간절함 앞에서 ‘날씬해지는 법’...등을 무수히 많은 종류의 책 속에서 모래밭에 떨어트린 동전이라도 찾아내듯 새심하고 신중하게 찾아다닐 텐데... 하긴 나도 전에 점점 세상 좁은지 모르고 불어나는 뱃살이 걱정스러워 ‘날씬해지는 100가지 비결’이라는 책을 사서 열심히 일주일간 보며 실천한 적이 있었지 아마...
내 마음이 무뎌진 것은 사실인 것 같다.
마음이 힘겨울 때마다 들쳐보던 일타스님의 ‘자기를 돌아보는 마음’이 이제는 눈과 마음으로 와 닿지 않으니 말이다.
내가 보고 싶은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볼 만한 책을 찾았다. 그러다가 눈에 뛴 것이 ‘마시멜로 이야기’였다.
-당신의 ‘오늘’을 특별한 ‘내일’로 만드는 지혜-
제목 아래 쓰여 있는 문구가 마음에 들어서 사 들고 온 것 같다.
그리고 잠 못 들던 그날 밤, 스탠드를 켜놓고 책장을 펼쳤다.
-강 위를 떠내려 오는 나뭇잎 위에 개구리 세 마리가 있었다.
뜨거운 태양아래서 힘겹게 버티던 개구리들 중 한 마리가 참지 못하고 한 마디 했다.
“나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이제 나는 강물로 뛰어 들 테야.”
나머지 개구리 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나뭇잎 위에 개구리는 몇 마리가 남아있을까요?-
작가의 말과 본문 사이에 낑겨(?)있던 내용이다.
나는 작가의 질문에 “한 마리도 남지 않았다. 너무 더운 나머지 모두가 함께 뛰어 들었을 테니까.” 라고 생각했는데, 작가의 말은,
‘3마리 모두 남았다.’ 였다.
결심만 했을 뿐, 실천을 하지 못했다나...어쨌다나...
사람들의 심리를 우화로 표현 한 듯하다.
나부터도 실천에 옮기지 못한 결심들이 부지기수다.
결심하고 실패하고 또 다시 결심하고 실패를 반복하다가 어느 순간 서서히 결심조차 귀찮아서 포기 할 때가 있다.
작가는 그런 심리를 빗된 듯, ‘결심하고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 결심조차 하지 않는 것 보다 났다.’라고 했다.
문장 하나하나가 비수가 되어 내 마음에 박히는 것 같았다.
‘인내’를 ‘마시멜로’로 비유한 내용...
내일의 성공은 오늘 어떤 준비를 했느냐에 따라 결정 된다...등등...
나는 늘 더 많은 마시멜로를 기다리지 못하고 눈앞에 있는 것만 먹어치우느라 바빴다. 그리곤 양에 차지 않아서 짜증내곤 했다.
그래서 발전을 못하는 걸까?
세상을 바라보는 견해도 점점 작아진다.
위축되고 쳐지고...
오랜만에 책을 읽으며 자극을 받은 것 같다.
자극을 받았으면 발전을 해야 할 텐데...
내일의 성공을 위해서 오늘 어떤 준비를 해야 할 지...그 조차도 정리를 하지 못했다.
요즘 나는 내가 너무도 답답하다.
‘마시멜로 이야기\'를 달달 외우면 내게 필요한 지혜와 인내심이 무릇무릇 샘 솟을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