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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고야에서 온 편지


BY 개망초꽃 2007-04-25

 

엄마, 잘 지냈어? 4월도 벌써 반이 지나고 있어. 시간 빠르다.

여긴 요즘 벚꽃이 정말 한창이야. 어딜 가든 벚꽃 잎이 눈가루처럼 날려.

자전거 타고 달리면 바람과 함께 벚꽃 잎이 얼굴을 살짝 건드리고 달아나.

언제 봄이 오나~ 투덜투덜 댔었는데, 어느 샌가 봄이네.

참! 자전거 샀어. 제일 싼 걸로…….우리나라 돈으로 8만원 정도.

여긴 교통비가 너무 비싸(2400원). 아무래도 뭔가 사려면 도요타까지 가야 되는데

교통비가 부담스러워서 자전거가 날듯해 싼 걸로 샀어.

오르막길이 많아서 힘들지만, 기아가 없거든. 기분은 좋아.

한국은 어때? 지금쯤 호수공원엔 봄 냄새가 물가로 물씬 나겠네, 가고 싶다…….

꽃순이랑 상록이랑 엄마랑…….


나고야는 저번 편지에도 썼지만 그럭저럭 살만해.

주변이 논밭이긴 해도 아주 시골은 아니고, 역에서(도요타) 버스로 20분이니까.

요즘은 날씨가 좋아서(아침저녁은 춥지만) 자전거 타는 게 너무 좋아.

난 자~~알 지내고 있으니까 걱정 말고.

EMS(국제항공택배) 보낸 거 잘 받았어. 근데 가격이 상자별로 따로인 거 같은데, 몰랐네.

돈 많이 든 거 같은데……. 미안해…….

미역은 잘 받았어, 고마워. 어그저께  끓여서 3일 동안 먹었는데 맛있었어.

내가 끓였지만 잘 끓인 것 같애, ㅎㅎ.

같이 사는 룸메이트랑은 별 탈 없이 잘 지내고 있어.

다만 더 친해지고 그런 거 없이 평이하게~~(좋고 나쁘고도 없이…….)

근데 걔랑 나랑 식성이 좀 달라서 따로 해 먹고 있는데,

그것 때문에 문제가 되거나 하는 건 아직 없어.


공항에서 엄마가 예쁘다고 했던 애 기억나? 빨간 코트의 여자.ㅎㅎ

지영이라고 하는데 요즘 걔랑 죽이 맞아서 잘 지내고 있어.

좋아하는 거나, 하고 싶은 거나 그런 게 많이 비슷해서.

오늘도 자전거 타고 장보러 갔다가 고등어가 너무 싸서 둘이 같이 사서 같이 구어 먹었어.

(한 마리에 1900원짜리 50%해서 950원을 둘이 반씩 나눠 샀어)

다른 얘들은 자전거 안 샀는데, 지영이랑 나랑만 자전거 사서 타고 다니는 거야.

학교 갈 때도 타고 가고, 자전거 도로가 잘 뚫린 일산에선 안타다가 여기 와서 타게 되네.

버섯이랑 감자사서 구워먹고 졸여 먹고. 계란 사서 점심 도시락 싸 가고.

버섯 감자 계란, 감자 버섯 계란, 계란 버섯 감자만 번갈아 먹고 있어.

과일도 비싸서 바나나만 먹거든, 원숭이가 될 지경이야.ㅎㅎ

다른 애들은 이렇다 저렇다 불만인데(기숙사 내부나 위치나 등등)

난 기숙사도 좋고, 초호화. 엄마 딸의 놀라운 적응력이랄까? ㅎㅎ

온돌이 없는 거 빼고(부엌 한 켠에 스팀 장치가 있어) 일본 생활이 나름 재미있어.


얼마 전에 교토에 갔다 왔는데, 교토가 일본의 옛 수도라서 인지

내가 살고 있는 나고야에 비해 정말 일본이구나, 하는 게 확 다가와.

벚꽃이 말 그대로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어.

엄마랑 상록이랑 같이 오면 좋을 텐데…….싶더라고.

좋은 경험이었어. 사진도 많이 찍고, 아직은 인터넷이 안 돼서 홈피에 올리지 못했어.


학교도 다니기 시작했어. 개강한지 일주일.

첫 수업 들었는데, 물론 벅차고 힘들어.

완전 일본어로만 수업을 듣는데 반은 들리고, 반은 못 알아들어.

일주일에 무려 11과목이야. (보통 7~8과목이면 많은 건데)

역사, 여성학, 문학, 언어사, 미술, 동해문화 등등…….

한국에선 죽어라 일본어 그 자체만 배웠는데 여긴 그게 아니니까 좀 힘들어.

난 일본문학이나 언어 그 자체를 배우고 싶은데, 선택도 거의 못하고 의무적으로 해야 해.

강의를 전부 일본어로 들으니까 지금은 어리바리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괜찮을 거야.  

한 학기 정도 들으면 들린다니까, 그때까지 열심히 귀를 열어 둘 거야.

빨리 일본어가 익숙해졌으면 좋겠다, 그럼 수업 듣는 게 재미있을 텐데…….

학교는 작지만(일본은 원래 대학이 별로 안 크데) 시설도 괜찮고 아담해.

학교 이름이 오우카 인데, 사쿠라. 즉, 벚꽃이라는 뜻.

그래서인지 학교 온 사방이 버, 버, 버, 벚꽃이야.

한국의 봄이 연둣빛이라면 일본의 봄은 연분홍빛이야



엄마~~나 핸드폰 샀어. 안 살 생각이었는데, 생활하는데 생각보다 연락처가 필요해서...

일본은 뭘 하나 해도 절차가 많고 복잡하고 그래.

생각보다 일본이 아날로그야.

우리나라 사람들이 워낙 성격이 급해서 인지, 일처리가 빠르잖아.

어느 정도 선이면 눈 감아 주는 것도 많고.

근데 여긴 뭘 해도 세월아~~내월아~~ 니들이 급하지, 나는 안 급하단다~~

따지는 것도 많고, 한 가지 일처리 하는데 속이 터져!(나 한국사람이잖오)

폰은 공짜 폰으로 샀어.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다른 얘들은 좀 더 예쁜 거 산다고 돈 내고 샀어)

기본료는 한국 돈으로 7~8천원이고, 같은 회사끼리 문자. 전화가 공짜니까,

절약! 또 절약하며 살게.

나는 여기 나와서 잘 지내는데 반대로 엄마랑 상록이는 나 땜에 힘든 거 아닌지 걱정이야.

아픈데는 없고? 상록이도 꽃순이도?

나 혼자 잘나서 일본 온 거 아니라는 거 잘 알아.

엄마, 삼촌, 할머니 없었음 엄두도 못 냈을 거야.

다들 도움 받아서 온 것이니 만큼, 남들보다 더 많이 얻어 갈게.

상록이가 걱정이야, 친구가 상록이 편지 쓴 거 보더니 왜 이렇게 점잖냐고 하던데 ㅎㅎ

여기 있으니까 집 생각이 많이 난다.

그래도 여기 있는 딴 애들보다 훨씬 잘 지내니까, 엄마도 잘 지내, 아프지 말고.


2007년 잎새달 14일

일본의 봄을 맘껏 느끼고 있는 엄마 딸.

 

* 이번에 교토 가서 일정 중에 하나가 이 손수건 만드는 거였어.

일본 전통체험 같은 거. 공판화 식으로 한건데, 엄마 생각하며 만든 거야.

아! 그리고 또 하나는 ‘엔무스비‘ 라고 하는 건데, 연을 이어주는 거래.

가지고 있으면 좋은 인연이 생긴데.

엄마에게 좋은 인연이 생기길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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