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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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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이 없는 제자며느리라서....


BY 정자 2007-03-23

에비가 없으면 후레자식이라 했고.

남편이 없으면 과부라고 한다.

 

나는 분명히 남편도 있고. 시어머니는 있는데.

한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아버지다.

 

아버지가 없이 살아선가 뭐든지 엄마는 니는 그런 말 듣지 않아야한다고

누누히 당부를 받았건만.

어디 그게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결혼하기까지는  그런데로 체면은 유지하고 살았는데

결혼하고 시댁에 가니 시부모가 다 계시니 일단  넉넉한 부모그늘이 있어 좋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삼개월도 못 간 유효기간 지난 착각이었고 오해였다.

 

시어머니는 전천후 남편은 하늘이요,

아들은 전부 다 내거요.

며느리들은 애견보다도 더욱 자리가 옹색한 그늘을 주었다.

 

그렇다고 결혼을 물리지는 못하겠고

이미 신혼여행때 생긴 아이는 지울수는 없는 노릇이고.

사태를 지켜보다가 그때 그 때 대응을 해야 하는 게릴라 큰 며느리가 나였다.

 

결혼하기 전에 나는 반드시 남편에게 밥을 해서 바쳐야 한다는 법은 배우지 못했다.

친정에서는 남동생들이 다 밥을 해먹고 다니는 것을 생활한 터라

시집에는 맨 남자들이고 여자는 오직 시어머니인데.

 

뭘 할 줄 모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별로 잘못한 것도 아닌데, 울 시어머니는 그런것도  안배우고 뭘 믿고 시집왔냐는 등

별로 인권신장에 도움이 되지 않을 말씀들이 줄줄히 나오셨다.

 

그러니 난 대답을 했다.

그러니 어머님이 하시지요....

제가 옆에서 배우겠습니다. 했더니 애가 시에미를 부려먹을려고 한다고

남편에게 고자질 하는 거다.

 

남편은 등에 업은 시어머니가  있으니 기세등등이고

그러다가 삼년은 어떻게 살게 되고 지내다보니

결국 남편의 월급의 전부를 가져가버리는 시어머니를 보고 한 마디 했다.

 

어머니... 남편 부인이세요?

 

세상에 세상에 어떻게 그런 말 할 수 있냐며 

애비없이 살아서 그런 막말을 하냐고 나를 뒤로 밀어 제끼더니

당장 나가란다. 그래서 말 없이 아이들 둘 데리고 쫒겨난 것이다.

 

물론 다른 가족들은 눈뜬 봉사처럼 당연한 방관을 하였고.

나도 별다른 고견과 참견을 원하지 않았다.

다만 한가지 고까운 것이 있었다면

왜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시어머니가 나에게 그런 말을 하여도 한 마디 말도 못하게 했는냐다. 그 때 울기도 많이 울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황당한 사건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어디에서

살지 전혀 모르는 일이다.

 

현재는 역전이 되어도 한 참 진행중이다.

어머니에게 올인하던 월급은 농사를 지어 한달에 한번이 아닌 일년에 한 번이니

수시로 줄수는 없는 형편이고.

 

막말로 아버지없이 막 살다보니 뵈는 게 없는 큰 며느리가 되었다.

나에게 법칙이 생겼다.

남편에게 나랑  이혼 할때까지 살려면

시댁에 일절 제사나 생일 때 드는 비용에 대한 상의 없으면

나는 그 행사에 안 와도 되는 거로 접수한다.

 

후후...남편은 처음엔 그 말이 무슨 말인 줄 몰랐다.

그러니까 시댁에서 제사나 잔치나 애경사엔 큰며느리와 상의를 하면 가는거고.

말이 없이 연락도 안오면 안 가도 되는 뜻이었다.

 

문제는 이혼 할 때까지인데.

지금은 이말이 애들 욕하는 것보다 더 흔하다.

어차피 죽어서 사별이나, 진즉에 성격 안 맞으면 이혼이 대수인데.

둘 중에 그래도 말은 사별보다 이혼이 조금 덜 험악하다.

 

남편은 처음엔 헷갈렸나.

달력을 보고 내 얼굴을 보면서 내일이 제사인데....

난 그 소리에 대답을 한다.

이상하네..아직도 어머니는 큰 며느리 보자고 연락이 없는데.

 

 

뭐? 그래서 안간다고?

그럼 부르지도 않는데  제사장보라고 돈도 안 줬는데,

내가 어디가서 효도한다고 마트 털러가?

 

남편은 자기가 준단다.

됐어..당신돈은 내 돈이야.

우리 살림에 보태써도 부족한 돈인데. 한달 생활비을 몽땅  하루제사에다 주면

어머님이 잘햇다고 할 까 봐?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말대꾸한다고 더럭 성질을 낸다.

아쉬운 사람이 샘판다고 당신이 가서 직접 제사장을 보던지. 아니면 어머니에게 전화드려야지. 큰 아들 며느리 데려가요. 말아요. 하고.

 

또 그런 말한다고 우락부락  성질을 내었다.

그렇다고 기죽을 나도 아니고.

 

그렇게 한 몇년을 보내니 울 시어머니 나를 보잔다.

어라! 제사도 아니고 생일도 멀었는디...

 

그래서 만났다.

그동안 우리 시집엔 좋은일은 단 두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손자가 많이 태어난 것.

그리고 재산이 많이늘엇다는것.

 

그러나 나쁜일은  네가지나 생겼다.

나말고 며느리들이 모두 다 이혼을 했다.

거기에 충격을 받으셨는지 시아버지는 작년에 암수술을 하셨고,

어머니는 막내며느리가 두고 간  남매를 키운다.

 

어쨋거나 지금은 나도 애가 셋이다.

막내가 조카인데. 큰 엄마이니 당분간 키워달란다.

그 말씀하시려고 나를 보자고 하신거다.

 

상의를 했으니 나도 대답을 해야 되겠고.

웃어른이리면 부모 다음 큰 며느리인데.

더군다나 손자 셋을 다 키우기가 벅찬 칠십을 바라보시니.

 

내가 안 본 사이에 많이 늙으셨다.

힘없이 한마디 하신다.

너라도 있으니 다행이다.

 

에휴~~~~

진즉에 잘 가르치시지.

 

스승이 없어서 못 배운 며느리가 그 속을 어떻게 짐작을 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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