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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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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머물지라도...(7)


BY 개망초꽃 2007-02-21

 

짧은 명절이었지만

춘천에도 다녀오고

산에도 갔다 왔습니다.

산 길가엔 새싹이 파랗게 올라와 가슴이 울컥거렸습니다.

전 꽃 한 송이에도 봄 날 풀 한 포기에도 가슴 한쪽이 울컥 입니다.

나이 들어가면서 짙어지고 진해지는 감수성 때문에

내가 나를 봐도 철딱서니 없는 사춘기 같습니다.


춘천에는 외할머니가 계십니다.

올 해 아흔여섯 되셨습니다.

거동이 힘들어 작년부터 집안에서 꼼짝을 못하십니다.

곧 돌아가실 것 같다는 외삼촌 연락에,

배내똥을 누셨고 잠만 주무시고 가래가 끓어 숨쉬기조차 힘들어하신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태어나 처음 누는 똥이 배내똥이고

마지막으로 배내똥을 누시고 돌아가신다고 합니다.

마지막을 예고하고 온 식구가 춘천으로 출동을 했습니다.

그러나 외할머니는 식탁에서 밥도 잘 드셨고

나도 알아보시고 손을 꼭 잡고 놓아주시질 않으셨습니다.

다시 살아나신 겁니다.

기적 같은 일이지요.

살면서 기적 같은 일은 그리 흔하지 않는데 말입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 영원히 같이 있고 싶은 마음도

그 영원함이 이기적인 마음으로 돌변해 뒤돌아 갈 때도 거짓말 같은 사실이듯이

사람 목숨도 때론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나 봅니다.

외할머니 손을 꼭 잡고 눈을 마주치고 몇 마디 말을 나누는 것 외엔

제가 해 줄 것이 없었습니다.

인생사가 이리 허무하고 부질없고 빈 몸으로 왔다 빈 몸으로 가는 건데…….

한 쪽 가슴이 울컥 이네요.


구정 다음날 북한산에 올랐습니다.

봄 날 산행처럼 포근하고 햇살이 온 산 가득 번지고 있었습니다.

소나무는 봄물이 들어 초록빛으로 흔들리고 있더군요.

햇살이 좋고 바람이 덜 부는 곳에 새싹이 파릇거렸어요.

낙엽을 치워주고 어루만져주고 눈을 마주하고 한참 얘기도 나눴습니다.

또 한 쪽 가슴이 울컥거렸습니다.

그리고 쓸쓸하고 허전했습니다.

같이 봐 줄 내 인연은 어디서 얼만큼 바쁜지…….


다시 출근을 했습니다.

현관문을 여니 밖은 잔뜩 찌푸리고 있습니다.

우산을 가지고 가야하나 잠시 망설이다가 그냥 나왔습니다.

12층까지 올라오는 승강기는 힘겨운 듯 숨을 헐떡이고 있습니다.

저는 맨 꼭대기에 삽니다.

오래된 아파트와 같이 나이가 먹을 만큼 먹은 승강기는 외할머니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문을 열어 줄 때도 목을 흔들고

문을 닫을 때는 온 몸이 흔들거립니다.

그래도 여기 사는 사람들은 다리품을 아끼며 어김없이 출근을 하고

볼일을 보려고 승강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도서관의 승강기는 말하는 승강기입니다,.

문이 닫힙니다, 문이 열립니다, 를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반복하고 있습니다.

목이 아프겠지만 그것도 이 곳에 살고 있는 승강기의 몫이겠지요.


다시 시작하는 진짜 새 해가 되었습니다.

올 해에는 어떤 일들이 기쁨으로 내게 일어나고

어떤 사연을 껴안고 잠을 이룰 것인지…….

생각지도 않은 일을 할 수도 있고

기대하지도 않는 좋은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릅니다.

인생사가 그렇듯 말입니다.

하늘이 흐려있으니 온 거리가 흐려있습니다.

감정도 전염되듯이 웃고 있으면 웃을 일이 생기고,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돌려 버리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겠지요.

또 다시 가슴 한 쪽이 울컥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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