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짝사랑에 이골이 난 여자다. 나이 서른에야 겨우 남편을 만나 연애란 걸 해 보았으니 그 전의 경험이라곤 온통 짝사랑뿐일 수밖에 없다. 초등학교 때 짝꿍을 시작으로 사춘기 때는 주로 오빠 친구들, 이십대 때는 스치는 모든 남자들이 그 대상일 만큼 나는 줄기차게 짝사랑을 했다. 거기다 혼자서도 극장에 갈 만큼 영화를 좋아한 내가 보는 영화마다 배우들한테 홀린 것까지 다 합치면 나처럼 마음이 헤픈 여자도 없을 것이다.
오죽 못났으면 내리 짝사랑만 했을까 하고 흉 볼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부끄럽지 않다. 짝사랑이라고 해서 손해만 보는 장사는 아니기 때문이다. 가만히 돌이켜 보면 사랑에 빠져 있을 때 나는 가장 살맛이 났던 것 같다. 물론 본질적으로 짝사랑의 허무와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하지만 메마른 감정으로 지내는 것보다는 펄펄 끓는 가슴앓이라도 하는 편이 낫다는 게 내 생각이다. 또 늘 상대적으로 따라오기 마련인 열등감이나 초라한 기분을 극복하려고 노력하게 되는 것도 큰 이득이다.
그러던 내가 짝사랑과 연을 끊게 된 것은 결혼하면서부터다. 남자에 대한 관심은 남편 한 사람으로 깨끗하게 교통정리가 되고, 남는 에너지는 몽땅 아이들한테 쏟게 된 것이다. 그런데 아줌마가 된 지금도 잊히지 않는 한 사람이 있다. 바로 초등학교 때 짝꿍이다. 그 애와는 5학년 6학년 때 연거푸 짝이 되었다. 2년 연속 한 반에다 짝까지 되었으니 나는 그게 보통 인연이 아니라고 믿었다. 하지만 좋아한다는 말 한 마디 못하다가 졸업이 임박해서야 용기를 내 편지를 쓰게 되었다. 그런데 그걸 먼저 읽어본 친구가 편지를 북북 찢어버리며 괜히 망신당하지 말라고 하는 바람에 결국 고백도 못한 채 졸업을 해야 했다.
졸업하고 얼굴을 안 보면 다 끝날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아이에 대한 끈질긴 그리움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그 감정은 너무나 선명하고 애틋해서 다른 사람을 사랑할 때조차도 그 애를 지울 수 없게 만들었다. 그 많은 짝사랑의 기억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건만 그 아이 얼굴과 이름만은 아직도 또렷하다. 심지어는 그 애 앞에만 서면 철렁 내려앉았던 심장의 느낌까지 생생하다. 고만한 또래의 남자애들과 별다를 게 없는 평범한 아이였을 뿐인데 지금까지도 날 설레게 하는 이유가 도대체 뭘까? 그건 아마도 처음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보잘것없던 한 여자아이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 느낀 연애감정이기에 이토록 각별할 수밖에 없다는 게 정답인 것 같다.
요즘 보면 옛날 친구들을 찾는 게 한창 유행이다. 하지만 나는 굳이 그 애를 만나고 싶지는 않다. 짝사랑답게 끝까지 혼자 간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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