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휴스턴이라고 하는 아이가
해피 뉴 이어 파티에 초대 했어.’
‘휴스톤?’
나는 모르는 이름이다.
‘옆동네 사는 아이인데 전에 이동네 살았었어.
그래서 이 동네 애들이 많이 알아.’
‘그런데 너는 도대체 그아이를 어떻게 알아?’
‘운동 시합이나 그럴때 항상 만났었고
우리는 인터넷으로 연락을 주고 받았었어.’
‘그래도 그렇지 안되겠다.’
‘왜? ‘
‘몰라, 이따가 아빠 오면 이야기 하자.
그러나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라.’
이곳에서는 해피 뉴 이어 파티라고 12월 31일이면
한국에서도 젊은이들이 종각등 그 지역의 번화가에서
새해를 맞이 하는 종소리를 들으면서 자축을 하듯이
뉴욕같은곳에서는
젊은이들이 맨하튼 같은곳에서 모이기도 하지만
이런 시골 동네에서는
친구들 집에서 모여 파티를 하기도 한다.
둘째는 작년에도 친구 내이든의 집에서
새해를 맞이 한 것을 오밤중에 데려 왔는데...
그집이야 학교선생님보다 더 믿을수 있는 집이니까
아무 문제가 없지만....
이거 원~~ 다른 동네라니,
그것도 나는 모르는 아이의 집이라니...
안되지!!!
암~ 안되고 말고...
며칠동안 우리 내외는 아이와 밀고 당기는 씨름을 하였다.
엄마, 아빠가 사랑하는 아들을 아무데나 보낼 수는 없다.
친구들을 우리집으로 불러서 파티를 해라
아니면 만약에 내이든이 같이 간다면 보내 주마 했다.
그러나 내이든은 초대를 안 받았고
우리 아이만 그쪽 동네 아이들 몇명과 함께 초대 받았단다.
아이구 이렇게 답답할 수가 있나?
이제 사춘기의 아이들은 친구가 굉장히 큰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친구따라 강남간다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은 아니다.
그 아이들이 어떤지
또 그 부모가 아이들 노는 것을 어떻게 관리 하는지를 알아야 하는데...
그러나 아이와 계속 씨름을 하던 중에
‘이 집 식구들도 성당에 다녀.’
‘그래?’
‘엄마, 샘 알지?’
‘엉’
‘휴스톤은 샘하고 같은 가톨릭 스쿨에 다녔었어.
그러다가 운동을 잘하는 휴스톤은
운동을 하기 위해서 공립학교로 전학을 한거야.
휴스톤을 보면 엄마가 좋아 할거야.
그리고 이 동네에 휴스톤의 형하고 친구도 있는데
그 집이 상당히 좋다고 해.’
샘이라고 하면 그 엄마가 꼭 수녀님처럼 반듯하고
아이에게 엄격한 사람이다.
우리 둘째가 첫영성체를 받을 때는
초대를 안했음에도 불구하고
샘은 우리 아이에게 선물까지 갖고 와서 축하 해 주었고
외할아버지와 함께 산다.
외할아버지도 전형적인 미국의 농부로서 굉장히 정직한 사람이다.
종교기관에서 운영하는 작은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대부분 아주 순하고 착하다.
또 부모들 또한 신앙심이 없다면
등록금을 내면서 규모도 작은 학교에
아이를 보내지 않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 마음은 움직였다.
저녁에 퇴근한 남편에게 그런 설명을 하면서
‘여보 우리 한번 믿고 보냅시다.’라고 말하였다.
그런면에서 우리부부는 서로의 의견을 잘 따라 준다.
‘좋아, 그대신 얘야,
너 말야 만약 그 동네 아이들이 너를 놀리거나
그 아이들이 나쁜짓을 한다거나